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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지면 국수가 먹고 싶습니다. 그런데 국수는 라면처럼 즉석에서 끓여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일부러 국수집을 찾아 나옵니다.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은 먹는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다이어트 혹은 웰빙 때문에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절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사실 칼로리가 너무 높은 음식은 운동량이 부족한 정신 노동자에게는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자주 찾는 우리 동네 잔치 국수집은 해운대 재래시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야 합니다. 
 
물론 좁은 골목 안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상가 뒷편에 있는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 형성된 떡집, 식혜집, 순대집 등과 마주 보고 있습니다. 물론 간판은 없습니다. 그냥 '잔치국수집'입니다. 항상 손님이 많아서 붐비는데, 이상하게 이날(3월 31일)에는 손님이 없었습니다.
 
국수의 진맛은 국물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아주머니 국수는 기장 멸치와 새우, 다시마, 양파, 통마늘 등을 넣어서 푹 달인 국물이라 정말 맛이 있습니다. 또 국수는 바로 삶아야 제맛이 납니다. 아주머니는 미리 국수를 삶아 놓는 게 아니라 손님이 오면 바로 삶아 내기 때문에 면발이 쫄깃쫄깃합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해운대 동네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누가 와도 거울 마주하면서 한줄로 앉아 국수를 먹습니다. 혼자 와도 부담이 없지만, 둘, 셋, 다섯 사람이 오면 좋습니다. 서로 몸을 밀착시키면서 먹으니 금세 친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수를 먹고 나면 배가 부릅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이 당면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 먹고 싶어져 또 당면을 시킵니다. 사실 국수보다 당면 맛이 더 좋습니다. 당면은 다이어트 음식으로 좋다고 합니다. 감자 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밀가루 음식보다는 소화도 잘 됩니다. 
 
국수 그릇도 당면 그릇도 크고 넉넉합니다. 국물은 더 달라고 하면 더 줍니다. 더러는 말만 잘하면 국수 사리 하나를 공짜로 얻어 먹기도 합니다.
 
국수와 당면 두 그릇을 모두 먹고 나서 거울을 보니 얼굴에 살이 금방 통통하게 오른 듯합니다. 그리고 <우동 한 그릇>이라는 일본 동화가 생각납니다. 일본은 우동을 많이 먹지만 우리는 옛부터 담백한 국수를 먹었습니다. '잔치국수'라는 음식도 있듯이요.
 
특히 시의 소재로 국수가 많이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를 좋아합니다. 얼마나 국수를 많이 먹어야 이런 시를 지을 수 있을까요. 언제나 편안한 이웃처럼 반겨주는 따뜻한 국물 같은 아주머니의 미소와 넉넉한 잔치국수와 당면 한 그릇. 배가 부르니 잠도 솔솔 오고 푸근해집니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덧붙이는 글 | 우리 동네 맛집 응모글


태그:#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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