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일 토요일 오후 아내와 함께 재래시장으로 장보기를 나가면서 길가에 피어있을 봄꽃이라도 찍어 볼 생각으로 조그만 디카를 호주머니에 넣고 출발했다.

 

대형할인점 때문에 재래시장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내가 살고 있는 길동은 재래시장 활기가 대형할인점보다 좋다. 시장에서는 농산물을 가격대 별로 잘 포장하여 깔끔하고 가격 정찰제가 이뤄지기 때문에 오후시간에는 장을 보러 나온 주부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시장은 주택가 골목길을 10여분 걸어가야 도착 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거리에 피어있는 봄꽃도 구경하며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는데, 멀리서 선거 유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늘 듣던 선거유세소리와 사뭇 다른 열기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시장가는 길과는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향해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보, 가만히 있어도 귀가 따갑도록 듣는 선거유세인데 그냥 갑시다.”

“아냐 뭔가 틀려. 열기가 느껴지잖아? 들어봐! 저렇게 진지한 유세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아 아마도 유세장에 엄청난 인파라도 모였나봐. 조금만 보고 갑시다.”

 

아내는 늘 들리는 게 유세소리라며 그냥 가자고 했지만, 잔뜩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유세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과거 70년대 선거유세는 학교운동장에서 합동유세를 했는데 국회의원 선거에도 많은 청중이 몰려들었었다. 유세열기도 뜨거워 출마한 후보자는 목청껏 열변을 토해내곤 했었다.

 

골목길 너머 멀리서 들려오는 국회의원 후보자의 목소리는 힘 있게 자신의 공약을 설명했으며, 현장열기에 도취된 듯 상대 후보를 비난하는 소리와 여기에 호응하는 박수 소리까지 들려왔다.

 

골목길을 돌아서자 멀리 유세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유세차량은 놀이터를 향해 있었고 건물에 가려진 놀이터에 있을 시민들은 눈으로 확인이 안 됐다. 그러나 넘치는 현장의 열기와 연설자의 흥으로 짐작컨대 동내 노인 분들과 주민이 많이 나와 연설을 듣고 있을 것 같았다.

 

“여보! 오랜만에 유세다운 유세 한번 봅시다.”

 

나는 기대에 가득 찬 말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빠르게 걸어가는 만큼 유세차량이 가까워졌다. 유세차량 위에는 연설자와 세 명의 보조연설자가 연설하는 소리에 맞춰 박수를 유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유세차량 앞 놀이터에 있는 관중을 찾아보고 나도 모르게 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하... 아이고. 하하하...”

 

나도 모르게 터진 웃음과 커다란 제스처는 일순간 열기 띠었던 유세장에 본의 아니게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후보자의 연설에 맞춰 박수를 치기도 하며 환호성을 지른 관중들은 놀랍게도 서 너 명의 동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연설자의 연설에 맞춰 환호와 박수를 열심히 보내다가 갑자기 들리는 큰 웃음소리에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열심히 연설 중이던 후보자도 잠시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선거놀이의 재미에 흠뻑 빠져있던 아이들의 즐거움을 깨었고, 유세를 들어주는 사람 없어 출근길이면 큰 길에서 춤이나 추었던 후보자는 오랜만에 호응하는 시민들을 만나 한창 열기 넘치는 연설다운 연설을 하고 있는데 나의 웃음소리가 그만 흥을 깨고 만 것이다.

 

나의 웃음으로 유세는 끝나버렸지만, 아이들에게는 오늘 후보자연설이 재미있는 놀이판 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텔레비전 뉴스시간에 봤던 대로 후보자의 연설에 정확히 맞춰 박수칠 때 박수치고 환호를 보내야 할 때는 적확한 타이밍으로 큰소리로 손을 흔들며 환호성을 보냈다. 그런 관중 앞에서 폼 나게 연설한 국회의원 후보자는 ‘무반응유권자’로부터 받았을 ‘연설스트레스’를 오랜만에 풀고 가는 듯 흡족한 미소를 남기고 성급히 골목길로 사라졌다. 

 

서둘러 떠나는 선거차량과 아쉬운 듯 그 뒤를 뛰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정책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고만고만한 정당들. 공약은 찾아 볼 수 없는 이상한 선거가 된 것이 국회의원후보자의 연설을 귀담아듣는 유권자를 없게 만든 것 같다. 유권자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한 잘못이 오늘, 내가 보게 된 ‘골목길 선거놀이’의 해프닝으로 나타난 것 아닌가 생각되었다.


태그:#선거, #유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상에 아름다운 사연도 많고 어렵고 힘든 이웃도 참, 많습니다. 아름다운 사연과 아푼 어려운 이웃의 사연을 가감없이 전하고파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