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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 책 표지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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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저 세상에 갔더니 살아온 생을 기준으로 심사, 분류를 한다. '자신의 인생을 납득하고 있'을 만큼 훌륭하게 살아온 사람은 '강습 면제'를 받고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곧바로 극락행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다.

그렇다고해서 나머지 사람들의 극락왕생이 특별히 까다로운 것은 아니다. 다행이다. 각자의 죄질에 따라 강습, 재강습, 복합강습을 받고나서 '반성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역시 극락행이다.

예외가 있다면 자신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거나 '이대로 죽을 수 없는 정당한 사정'이 있다고 신청을 하면 재심사를 받고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은 7일. 죽어 장례를 치른 후 저 세상으로 간 것이니 그 시간을 빼면 남아있는 시간은 고작 사흘이다.

여기 세 사람이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며 돌아왔다. 백화점 여성복 담당 과장으로 일하다 돌연사한 46세의 쓰바키야마, 다른 사람으로 오인돼 살해당한 야쿠자 다케다,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 유타.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니고 이 세상으로 잠시 돌아온 이들은 얽히고 설켜 돌아가고, 그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알고 있었거나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것들이 사실은 전혀 아니었음을, 아니 어떤 것은 정반대였음을 하나 둘씩 깨닫게 된다.

저 세상으로의 복귀 시간 엄수, 신분 노출 금지, 복수 엄금이라는 3대 원칙을 지키기에는 그들 앞에 완전히 까발려진 사실들이 너무 엄청나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그들은 그동안 살아온 온 힘을 짜내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소설 속에 나오는 노년에 잠깐 눈을 돌려보자. 쓰바키야마의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계신다. 그러니 사람들은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알릴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와 손자 요스케(쓰바키야마의 아들) 사이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

할아버지는 일본의 노인 세대가 겪어온 신산한, 그러나 폐허에서 일어나려고 이를 악물고 살아온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전쟁, 가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노력, 절약, 가족 사랑에 앞서는 나라에 대한 충성심, 거기다가 지난 세대 특유의 원리원칙주의까지.

아내와 아들에게는 '사랑한다'고 단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남편, 아버지는 뒤늦게 마음 속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용서를 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을 떠나서까지도 미련으로 남은 아픈 사연들의 실타래를 푸는 일에 발벗고 나선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차렸다. 노년의 지혜나 경험, 밝은 심안(心眼) 같은 것이었을 지도.

사실 이 세상과 저 세상으로 갈라지고 나면 이곳의 일은 남은 자의 몫이 분명함에도, 살아 그 일을 걱정하는 우리는 언제나 근심스럽다. 목숨의 이어짐과 떠남이 내 영역이 아니니 받아들임만이 진실인 것을 언제나 몸부림치고 발버둥친다.

책은 시종 흥미있게 이어진다. 죽음, 저승, 원망, 한, 슬픔, 노여움, 풀지 못한 의문 같은 것들을 적절하게 버무려 지루하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다. 무거운 주제를 술술 풀어나가는 솜씨가 놀랍다.

이 세상의 변화에 따라 당연히 저 세상의 시스템도 변했다는 설정이 놀랍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럴 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던져준다.

나라면 이 세상의 죄에 상응하는 '강습'을 받고 나서 바로 '반성 버튼'을 누를까, 아니면 미처 다하지 못한 일과 풀지 못한 사연들에 미련이 남아 '재심사'를 요청할까. 그 누가 그 답을 알까. 죽어봐야 알지.

덧붙이는 글 |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2008)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창해(2016)


태그:#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죽음, #노인 , #아사다 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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