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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토요일(4월 5일) 오후, 화사한 혜화역. 한성대 방향으로 걸어가면 나오는 혜화동 성당 건너편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겨울부터 지금까지 100일이 넘게 재능교육 노조의 천막농성이 이어지던 가운데 사측의 폭력이 발생하여 이에 항의하는 규탄집회. 이랜드노조 등 다른 사업장 조합원들의 모습도 보인다.

 

만나야 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최현숙 후보님 계세요?" "지금은 안 계시고 나중에 대학로 유세 때 오실 거예요."

 

거기 조금 더 있다가 대학로 쪽으로 다시 내려간다. 볼 것 많고 할 것 많은 문화지구 대학로를 돌아다니던 중에 만난 선거선전벽보가 붙은 담벼락.

 

'확실한 능력' 1번 손학규 후보(통합민주당), '종로의 자존심 힘있는 큰일꾼' 2번 박진 후보(한나라당),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잘 하겠습니다' 3번 정인봉 후보(자유선진당)를 지나 6번으로 건너 오면 시야로 들어오는 '종로여, 진보와 연애하라!'

 

한국 최초의 커밍아웃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 진보신당 최현숙. 1987~2000 천주교정의구현연합 비전향장기수가족후원회 대표, 새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 창립 및 활동, 2000~2005 민주노동당 2기 여성위원장, 2006~2007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장, 2008년 진보신당 창당발기인이자 부대변인.

 

대학로에 뜬 무지개

 

노래소리가 들린다. 대학로 쪽으로 이동한 최현숙의 홍보차량. 이채로운 차림과 화장을 한 최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유세를 시작했다. 여장남자, 남장여자, 가수와 기타리스트,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고 있다. 삼삼오오 구경꾼들이 몰려 든다. 

 

노래와 춤이 끝나자 한 사람씩 나와 마이크를 잡고 지지의 말을 한다. 먹을 것을 싸 들고 부천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는 최 후보의 선거운동에 "지역구를 넘어서는 상상력"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부적절하게 입법된 차별금지법안에 대해 화가 많이 났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며 정치참여와 경험을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한다.

 

작년인 2007년 10월 초 법무부는 헌법 및 국제 인권규범의 이념을 실현하고 전반적인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공고하면서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지향, 학력(學歷), 사회적 신분"을 차별금지대상으로 열거, 예시하였다. 

 

그 후 실제로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안에는 공고 시에 있었던 '성적지향'을 비롯하여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 7개 항목이 삭제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여성과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차별금지법의 올바른 제정을 원하는 네티즌들과 시민들이 공동행동을 조직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현숙은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하여 다양한 가족구성의 권리를 확보하는 동반자법 제정, 청년실업자와 고령자 등 사회약자들을 보살피는 사회연대제 실시, 문화예술인 실업급여 도입, 마을버스 공영화 도입 등을 공약으로 삼고 있다. 또한 최근 그녀는 다른 비혼 진보신당 국회의원 후보들과 함께 후보의 배우자에게 후보의 명함을 돌릴 권한을 허용하는 현행 선거법 조항이 비혼자 차별이므로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했다.

 

"대한민국이여 커밍아웃하라"

 

수많은 행인들이 오가며 유세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다른 일정을 마친 최현숙이 드디어 도착했다. 종일 밥도 못 먹은 채 그제야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래며 유세 준비를 하는 최현숙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방금 다녀오셨다는 종로구 후보 합동방송연설회는 어떠셨습니까.

"다른 후보들이 추구하는 정치와 제가 추구하는 정치는 근본적으로 다르니까요. '종로의 진정한 주인이신 여러분 스스로 정치를 시작하십시오. 그 옆에 저 최현숙이 서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는데요. 제가 한 말이지만 저 스스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 지방선거에 출마한 적 있으시다면서요?

"2003년 보궐선거 때 금천구 독산1동에서 출마했습니다. 당시 금천주민연대라고 금천구 지역운동을 했고 함께 활동하던 주민들의 뜻을 모아 출마한 것입니다."

 

그해 2003년에 최현숙은 잡지 <인물과 사상>이 선정한 한국 여성정치를 이끄는 5인 안에 뽑혔다. 당시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이었던 그녀가 다음 해인 2004년에 총선이 예정되어 있는데도 지방의회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한 것은 작은 화제가 되었다. 행정학을 공부하면서 금천구에 대한 논문 6편을 쓰고, 주민들과 함께 구 의정감시활동을 하며 지역에서 풀뿌리정치를 하던 그녀였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최현숙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출마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 후보님 홈페이지에 이렇게 되어 있더군요.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과연 나의 삶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로 고민하다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당시 노회찬 사무총장에게 죽을 병이 걸렸다는 말을 남기고 훌쩍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출마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때는 국회의원 되는 게 정말 싫었어요. 노회찬 총장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최현숙은 '커밍아웃'하고 성소수자운동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번 제18대 총선에서 그녀는 "한국 최초의 커밍아웃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임을 천명하며 마침내 출마했다. 진보신당 공동대표 심상정 의원은 최현숙의 결정을 지지하면서 아래와 같이 썼다.

 

"나는 그를 커밍아웃 하기 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난 뒤의 최현숙을 훨씬 좋아하게 되었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거추장스러웠던 껍데기를 벗고 나니 최현숙은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처럼 보였다. 

 

최현숙은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말하지만 그의 곁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든다. 가부장제에 맞서 여성주의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만 있는 게 아니라고 외치는 성소수자들이, 인권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가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진보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최현숙과 소통하고 싶어한다.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신나게 놀면서 사는 최현숙이 나는 부럽다. 

 

종로 한복판에서 ‘최초의 성소수자 총선후보’로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할 최현숙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벌써 행복하다."

 

- 인도에서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작은 아이(최현숙은 두 아이의 엄마이다)와 갔어요. 인도에는 축제가 많은데 그때는 칼라(color) 축제가 있었지요. 관광지를 다니기보다는, 버스 타고 종점 가서 내려서 둘러 보고, 다른 버스 타고 또 다른 종점 가 보고, 그런 식으로 다녔어요."

 

- 천주교 신자신데 이 근처 혜화동 성당은 자주 가십니까?

"네, 거기서 주일학교 교사도 했지요. 이번 선거운동 중에도 거기 가서 명함 돌렸고요."

 

-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신자 분들도 많이 계실 텐데요. 어떠셨어요?

"그렇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과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다르니까요. 저는 그들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아요. 저에게는 신앙이란 규범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랑에 근거해서 사회운동을 한 거였어요. 차별 받는 사람,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현숙, 열렬하구나!"

 

"최현숙 후보님, 사랑합니다!" 앞에서 선거운동원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외쳤다. 이제 그녀의 차례. 연단에 오른 최현숙은 자신을 "이혼 여성, 레즈비언 여성, 갱년기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커밍아웃을 하고 선거에 나와서 혹시 테러라도 당하지 않을까 염려했다는 그녀는 선거란 "변혁의 시작이자 소수자들의 축제"이고, 소위 대한민국 정치 일번지인 종로구에 출마한 자신이 다른 후보들과 하고 있는 경쟁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 본인은 격려와 지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미 이긴 싸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이 선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나답게 살고 싶은 행복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저는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와 다른 후보들의 차이는, 무엇을 걸고 싸우는가 입니다. 아, 살기 힘들다, 라는 말의 의미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살기 힘든 사람의 진심을 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연설이 끝나자 최현숙은 연단으로부터 내려와 환호하는 인파 속으로 섞였다. 다시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가 시작되었다. 1970년대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최초의 커밍아웃 동성애자 시의원이 암살되었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동성애혐오에 항거하기 위한 동성애자 퍼레이드에서 무지개 깃발이 사용되면서 무지개가 동성애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개인들이 찬란한 무지개처럼 한데 어우러져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손잡고 노래하는 그들은 이미 많이 행복해 보였다.

 

오늘 종로 하늘에 무지개 뜬 걸 보면

왠일인지 그 사람 만날 것 같아

누구보다 내 마음 잘 아는 단 한 사람

왠일인지 그 사람 만날 것 같아

든든한 희망의 약속 지켜갈 사람

거짓없이 사는 인생 함께 즐길 그 사람

우리의 희망 약속

최현숙 희망의 약속을 합니다

흐린 저 하늘 뒤에 무지개처럼 빛나는 우리의 꿈

최현숙 희망의 약속을 합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손잡은 세상 함께 만들어요

 

(최현숙 선거본부 로고송, <희망약속>)

 

덧붙이는 글 | 공숙영 기자는 인터뷰전문웹진 퍼슨웹 (www.personweb.com)의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대학원에서 '국제법과 인권'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최현숙#진보신당#제18대 총선#종로구#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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