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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천 동구 창영동에 삽니다. 제 선거구는 ‘인천 중·동구,옹진군’입니다. 지역마다 공약과 정책은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큰 틀에서는 다른 지역과 엇비슷한 대목이 있으리라 봅니다. 또한 정책과 공약을 뽑는 마음과 매무새도 비슷비슷하리라 봅니다. (글쓴이 말)

 

 

일요일(4월 6일) 아침에 선거공보물이 집에 옵니다. 오늘은 4월 7일, 앞으로 국회의원 선거는 사흘 앞입니다. 선거유세 자동차는 큰소리로 노래를 틀며 골목길을 누빕니다. 후보자 공약이나 정책은, 일찌감치 후보자 인터넷방이나 블로그에 들어가서 모두 알아보았습니다. 이참에 다시 한번 훑습니다.

 

1.한광원(통합민주당)

 

 - 사회적 기업 유치로

    어르신ㆍ여성ㆍ장애우 일자리 창출

 - 외국어고 및 특수목적고 유치

 - 전문학원 거리 조성

 - 공공도서관 건립 및 지하보도

   복합문화공간 설치

 - 연안부두와 화수부두에

   해안관광벨트 조성

 - 인천 내항 재개발

 - 구도심 재개발 사업

다섯 후보가 내놓은 공약과 정책을 물끄러미 보다가, 문득문득, 네 후보가 내놓는 공약이 크고작게만 다를 뿐 거의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더 이상 낙후된 곳으로 방치할 수 없습니다. 중구, 동구, 옹진군은 인천에서도 제일 낙후되어 있습니다.(박상은)”라는 말을 보고는 기겁을 합니다. 네 후보(한광원,박상은,서기석,이세영)는 한결같이 ‘중·동구 옛 도심권 재개발’이 굵직한 공약에 들어갑니다. 무소속 이세영 후보는 “중구·동구 도심권을 일류 주거타운으로 개발”하겠다고 말하는데, ‘일류 주거타운’이란 어떤 곳인가요. 사람들한테 첫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살기 좋은 집은 어떤 집일까요.

 

 어젯밤, 1:5000 길그림책을 펼치고 제가 사는 동네를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닐 수 없는 곳이 제법 많기에 길그림책을 보는데, 제가 사는 인천 동구에서 퍽 넓은 곳이 공장터입니다. 만석동 바닷가 쪽에 있던 유리공장 하나는 어디론가 옮겨갔으나, 뭍 안쪽으로 또다른 유리공장이 버젓이 있습니다. ㅇ가구를 비롯해 이름난 가구회사 큰 공장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그래서 원목 실은 짐차가 많이 드나들었군요), 제철소 화학공장 비료공장 방직공장 제강소 들이 줄줄이 잇닿아 있습니다.

 

이 공장은 오른쪽으로는 주안공단으로, 아래쪽으로는 남동공단으로 이어집니다. 남동공단 공장은 안산으로 이어지고 주안공단 공장은 구로공단으로 이어집니다. 위쪽으로는 서구 가좌동 공단으로 이어지는데, 인천에 공장이 많기는 많다고 알고 있었으나, 길그림책을 보면서 사람 삶터보다 공장터가 훨씬 넓은 자리에 차지하고 있음을 보고는 입이 쩍 벌어집니다. 이런 땅에 ‘일류 주거타운’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짓는다 한들, 얼마나 사람들이 살기 좋다고 하면서 찾아올 수 있을까 싶습니다.

 

 

2.박상은(한나라당)

 

 - 외국어고 및 자사고 유치

 - 학교 화장실ㆍ도서관ㆍ과학관ㆍ

   생활관 현대화

 - 소년소녀 가장돕기 후원제도 마련

 - 경인선 운행시간 연장 추진

 - 구ㆍ군별 문화체육복지센터 건립

 - 구도심 및 인천역 재개발

 - 동서 지하철 건설

 - 월미산 문화관광벨트 조성

두 후보(한광원, 박상은)는 인천에 외국어고나 자사고 같은 특수목적고를 끌어들이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이 두 후보한테 대학교 정책은 있는가? 없습니다. 인천 중·동구에 ‘인천 명문’이라고 하던 고등학교를 일찌감치 연수동으로 옮겨보낸 이제 와서 특수목적고를 세운다고 한다면, 어느 땅에 지을 터이며, 어떤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학교로 지을 생각일까 궁금합니다. 학교 세울 땅은 따로 없는데, 옛 도심지를 재개발하면서 골목집을 허물고 난 자리에 새 학교를 지을 생각인지, 영종도 공항 옆에 지을 생각인지.

 

통합민주당 한광원 후보는 “열악한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전문학원가 조성”을 공약으로 넣습니다. 인천 중·동구 교육터전이 ‘열악하다’면 왜 ‘열악한가’를 얼마나 헤아렸는지 묻고 싶습니다. ‘열악하다’는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전문학원을 노량진과 같은 학원거리로 꾸미면 아이들 학력이 높아지거나 교육터전이 나아질까요.

 

학교를 둘러싸고 온갖 중화학공장이 몰려 있는 인천 중·동구입니다. 중화학공장이 몰려 있다 보니까, 초등학교 앞으로도 컨테이터 짐차를 비롯한 수십 톤짜리 큰 짐차가 쉴새없이 지나다닙니다. 중화학공장이 많다 보니, 학생뿐 아니라 여느 주민들 몸도 많이 나쁩니다.

 

6.문성진(진보신당)

 

 - 중ㆍ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

 - 생태ㆍ환경ㆍ문화유산을 지키는

   가운데 도시 개발

 - 공장 밀집한 중ㆍ동구 지역 주민

   정기건강검진 실시

 - 옹진군 주민과 공항 노동자한테

   공항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입법화

 - 인천 지역 비정규직 실태 조사 및

   처우개선

 - 중ㆍ동구 주요기업체 이익을

   지역장학기금으로 조성

문화회관 또는 체육회관을 짓겠다고 하는 후보가 둘(서기석, 박상은)입니다. 평화통일가정당 서기석 후보는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하여 녹지공간을 확보 및 체육문화회관 건립을 추진하겠습니다”하고 말합니다. 한나라당 박상은 후보는 “시립 복합 체육센터 건립”과 “복합(장애인) 복지관 건립”을 말합니다.

 

두 후보한테는 인천 중구 동인천동에 있는 ‘학생문화복지센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옛 축현초등학교를 헐고 다른 구로 옮기면서 지은 학생문화복지센터인데, 역사 깊은 초등학교 건물을 헐고 옮기면서 동네 상권이 싹 가라앉고 동네 분위기가 많이 어두워지기도 했지만(건물을 잘못 짓고, 조명이 너무 어두워지고, 마당은 없이 대리석 계단을 높직이 올려세워서 접근성이 떨어지게 하다 보니까), 정작 이 학생문화복지센터를 즐겨야 할 학생들은 저녁 열 시나 열한 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면서 대학입시에 목이 매입니다. 학생이 쓰라고 만든 시설이지만, 학생들은 이 시설을 찾아올 겨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학부모라도 쓰면 좋을 터이나, 학부모가 찾아가서 쓸 만한 풀그림이 없습니다. 동구에도 청소년복지회관이 한 곳 있는데, 이곳 형편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있는 좋은 시설을 제대로 쓰는 정책과 움직임, 그리고 지금 있는 좋은 시설을 주민들이 좀더 살가이 느끼도록 손질을 하고 마을 문화를 가꾸려는 대안이 없이, 또다른 시설을 목돈 들여서 짓는 일이 지역 경제와 문화에 어떻게 이바지를 할는지요.

 

 

7.서기석(평화통일가정당)

 

 - 사랑의 부부학교, 행복가정 꾸미기

    교육센터 건립

 - 퇴직 교육공무원한테 훈장으로

    임명하여 학습미진 아동 교육

 - 환경ㆍ공해문제 연구소 설립

 - 구 도심권 재개발

 - 체육문화회관 건립

 - 원어민을 통한 외국어 체험교육 실시

 - 해양생태공원 조성

 - 한중 해저터널을 중구로 유치

인천 중·동구는 바다를 끼고 있습니다. 그러하다 보니, 항구와 바다 관광 이야기를 공약에 제법 넣어 줍니다. 그렇지만, 관광개발이라고 할 때, 누가 무엇을 보려고 어디에서 왜 찾아오는가를 먼저 헤아리지 않는 관광개발이 될 때에는, 돈은 돈대로 쏟아붓고 애써 찾아오는 사람도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돌아가게 됩니다. 무소속 이세영 후보는 “세계 수준의 차이나타운 완성”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세영 후보님은 알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인천에 일찍이 중국인거리(차이나타운)가 있었지만, 이들은 여태까지 투표권을 한 번도 누려 본 적이 없음을. 그리고 지금 중국인거리는 오래도록 터잡고 살아온 이들이 가꾸어 온 터전이 아니라, 엉성하게 돈으로 발라세운 자장면집밖에 없음을.

 

<발칙한 한국학>(이끌리오,2002)을 쓴 스콧 버거슨씨는 인천 중국인거리를 다녀간 뒤, “나는 한국 정부가 관심 있는 것은 관광객이나 모으고 해외의 화교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지, 정말로 올바른 일을 수행하는 것, 가령 한국에서 나고 자란 화교들에게 충분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 따위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이 정부 주도의 가식적인 전시장이 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세계의 위대한 차이나타운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스스로 발전해 왔지, 무능한 관료주의에 의해 한순간 마술처럼 출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154쪽)”하고 이야기합니다.

 

생각해 보면, 중국인거리뿐 아니라, 인천 중·동구를 ‘재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네 후보님들은 “재건축 문제, 주거환경 개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입니다(한나라당 박상은 후보)” 같은 말만 되뇌어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시골 문화뿐 아니라 도시 문화도 스스로 크는 문화이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딱 하고 떨어지는 문화가 아닙니다. 불타 사라진 남대문이 안타깝다면,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우리 삶과 함께했던 문화터전이기에 안타깝습니다. 돈으로 세운 건축물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안타까울 일이 없습니다.

 

네 후보님(통합민주당, 한나라당, 평화통일가정당, 무소속)들 눈에는 인천 중·동구가 뒤떨어진 도심지라서 싹 뒤엎고 아파트로 새로 지으면 좋겠다고 보이는지 모릅니다. 지금 땅값은 한 평에 150∼200만 원이지만, 아파트로 올려세우면 한 평에 1500∼2000만원은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생각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지금 한 평에 150∼200만 원짜리 땅에서 고작 열 평짜리 단층 골목집에서 살고 있는 옛 도심지 사람들이지만, 오래도록 이곳에서 뿌리박으면서 지역 문화를 일구어 왔습니다. 개발에 따돌림받아 온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개발바람이 있건 없건 늘 그 자리에서 꼿꼿하게 살아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시금치 한 묶음을 저울에 재지 않고 천 원어치를 담아 주다가 한 손 두 손 더 얹어서 퍼 주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살아온 사람이기도 하고요.

 

8.이세영(무소속)

 

 - 중ㆍ동구 도심권을 일류 주거타운으로

   개발

 - 내항과 부두를 천수종합관광권으로 재개발

 - 옹진군을 해양관광특구로 재개발

 - 세계 수준의 차이나타운 완성

 - 재개발 사업의 조기실현 및 보상불만

   민원 원만 해결

 - 공항통행료 및 주민부담 배삯 대폭감면

 - 종합 어시장 현대화 이전 추진

국회의원 개인 공약묶음을 덮습니다. 맨 뒤쪽에 해적이(약력, 경력)가 적혀 있습니다. 다섯 후보 가운데 두 후보(진보신당 문성진 후보, 평화통일가정당 서기석 후보)는 ‘학력’을 적어 놓지 않습니다. 공약묶음을 다시 펼쳐 개인신상명세를 읽으니, 진보신당 문성진 후보는 ㅅ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마쳤다고 나옵니다. 평화통일가정당 서기석 후보는 고졸검정고시를 보았다고 나옵니다. 다른 세 후보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적어 놓고, 이 가운데 두 후보(한나라당 박상은, 무소속 이세영)는 대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했음도 적어 놓습니다.

 

비례대표에 따른 정당 공약묶음을 펼칩니다. 후보자 이름과 얼굴을 밝히는 모든 정당(통합민주당,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기독당)은 학력을 빠짐없이 적어 놓는데, 경력 가운데 대졸 학력을 가장 앞에 적어 놓습니다. 딱 한 곳 진보신당은 비례대표 후보자 학력을 적지 않습니다.

 

 

정당공약을 살피니, ‘비례대표 후보자 학력’을 빠짐없이 맨 앞에 적었던 모든 정당에서는 사교육비와 대학교 등록금 문제를 공약으로 다룹니다. 그러나 어느 정당에서도 ‘고등학교만 마치는 사람들 교육’ 문제, ‘중학교만 마치는 사람들 교육’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대학생이 많은 우리 나라라고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 숫자도 아주 많습니다. 모든 수험생이 대학교에 갈 수 없는 형편인데, 대학교를 가지 않고 사회에 나오는 아이들한테는 어떤 정책과 대책이 있을까요. 이 아이들한테는 따순 사랑이나 눈길을 안 보내주어도 괜찮은가요.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도 문화 정책과 복지 정책은 없음을 새삼 느낍니다. 평화 정책과 통일 정책 또한 찾아볼 수 없음을 다시금 느낍니다. 인권 문제는, 또 사회차별 문제는 겉핥기로 살짝 이야기할 뿐(이를테면 ‘복지관 건립’ 공약 따위로), 속깊이 걱정하거나 마음쓰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를 가꾸는 문화와 복지에는 눈을 안 두기 때문에, 국회의원 후보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문화와 복지를 안 챙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평화보다는 돈벌이에, 통일보다는 일류대 졸업장에, 사회평등보다는 집값과 땅값에 눈이 돌아가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 문화를 북돋우고 복지를 살찌우며 평화와 통일을 바라면서 조그마한 손길이라도 보태고 있다면, 그러면서 사회차별이 아닌 사회평등으로 걸어가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면, 어느 정당인들 이러한 정책과 공약을 안 내놓겠습니까.

 

서울부터 부산, 그리고 서울부터 인천을 잇는다는 물길을 막아낸다고 하여도, 이 물길을 막는 우리 움직임이 어디로 나아가야 좋을지까지 찬찬히 따지거나 살펴보는 눈매를 우리 스스로 키우지 못하는 동안에는,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도 이번 18대 총선뿐 아니라 네 해 뒤에 치를 열아홉 번째 총선거에서도 비슷비슷 똑같이 우려먹는 공약과 정책만 내놓고 인기몰이 선거가 되풀이되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태그:#17대총선, #인천, #국회의원선거, #공약검증, #정책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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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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