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술주정꾼 윤회마저 재목으로 만든 사람. 그는 다름 아닌 세종 이도였다.
그렇다. 그의 이름은 이도. 우리가 아는 세종 곧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지난 2천년을 훌쩍 뛰어 넘고도 남을 흔적을 세상에 남긴 '대왕 세종'이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까.
'백성을 이롭게 하기 위한 바른 소리' 곧 훈민정음을 만든 장본인이자 갓 태어난 조선에 튼튼한 정신적 토대를 만들어 준 그가 우리 앞에 마주 앉는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눈높이를 유지할 수 있을까.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이 질문에 '대왕 세종' 곧 이도가 먼저 온 몸으로 답해 주었다. <대왕 세종>은 바로, 때에 따라 기꺼이 눈높이를 상대에 맞춰주고 또 필요하면 언제든 자세를 낮추어 세상을 듣고자 했던 '대왕' 이도의 인간미 넘치는 지도력 이야기이다.
술주정뱅이 윤회, 세종과 함께 역사에 남다<대왕 세종> '대왕 세종'과 집현전 학사 10인 |
이도와 최만리 양약고구(良藥苦口) 이도와 윤 회 극기복례(克己復禮) 이도와 김 문 명경지수(明鏡止水) 이도와 강희안 적재적소(適材適所) 이도와 박팽년 발분망식(發憤忘食) 이도와 정인지 약롱중물(藥籠中物) 이도와 하위지 군자표변(君子豹變) 이도와 이 개 타산지석(他山之石) 이도와 신숙주 애인여기(愛人如基) 이도와 변계량 도천지수(盜泉之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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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가 세종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니 그 술주정뱅이가 이도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재능과 이상이 흔들리는 날갯짓 한번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상상은 자유라지만, 분명 윤회는 세종 이도를 만나 날갯짓 한번 제대로 하고 기쁜 맘으로 삶을 접었다. 세종 18년 3월 12일, 윤회가 57세 되던 때에 말이다.
그리고 윤회 그는, 세종과 조선에게 바치는 마지막 선물과도 같은 <통감훈의>를 남기고 사라졌다. 물론 세종의 손길이 닿은 결과였다.
중풍으로 말년을 보냈던 윤회는 생전에 세종에게서 받은 마지막 임무로 역사해설서 <통감훈의> 집필을 주관했다. 마지막까지 윤회를 재목으로 사용했던 세종 이도 그리고 그를 마음 속 깊이 사모하며 그에게 마지막 보답이라도 하듯 '작품' 하나를 남기고 갔던 윤회. 그걸 우정이라고 해야할지 사랑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윤회는 세종을 만나기 전 이미 이도에게 흠뻑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아는 윤회는 결코 술에만 빠져 살던 사람이 아니다.
'대왕 세종'에게서 세상을 품고 세상과 소통할 줄 알던 '낮은 사람' 이도를 보았던 이가 오직 윤회 뿐이었을까. 아니다. 철저하고 엄격한 유학자로서 세종에게 '안티'같은 존재였던 최만리도 세종에게서 따뜻한 사람 이도를 보았다. 집현전에서 밤새 책을 보며 일을 하다 그대로 책상 머리에서 잠이 들었을 때 세종이 덮어 준 사랑을 입었던 신숙주도 인간미 넘치는 사람 이도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 나도 세종 이도를 느끼고 있다.
지은이 백기복은 '대왕 세종'에게서 2가지를 발견한다. 따뜻한 사람 이도와 존경 받는 지도자 세종이었다. 그리고 지은이는 세종 이도에게서 전자시대인 21세기에도 어울리고 또 필요할 '마음경영법'을 찾아냈다.
"대왕 세종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군주다. 내면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면 그것이 제어되지 않은 행동으로 나타나 수많은 인재들과 함께 이루어낸 업적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을 것이다. 인재활용의 귀재, 세종 이도가 선택한 것은 600여 년을 앞서 행한 '마음경영법'이다." (이 책 서문에서)세종 이도, 사람을 품어 세상을 얻은 사람 |
<대왕 세종>에서 알아두어야 할 주의사항
1. 인용문은 <조선왕조실록>, <연려실기술>에서 인용했으며, 다만 읽기 쉽게 풀어 썼다. 그 외 인용문은 본문에서 출처를 밝혔다.
3. 본문 중 세종과 집현전 학사의 일화는 재미와 이해를 돕기 위한 극적 장치며, 역사소설 형식을 빌어 재구성했다.
4. 두 번째 이야기 '이도와 윤회' 편에서 윤회가 세종의 명으로 술에 대한 교지를 썼다는 일화는 극적 구성을 위해 사실과 소설적 상상을 더하여 재구성했다. - '일러두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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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게는 최고 '안티'였을 최만리 이야기에 지은이는 '양약고구'라는 말을 붙여주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그 말을 세종이 기꺼이 받아들여 재목을 재목답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술주정뱅이 윤회 이야기에 지은이는 '극기복례'라는 말을 붙여주기도 했다. '욕망과 감정을 절제해 이겨내고 예를 따른다'는 말인데, 윤회의 재능과 지혜를 아끼던 세종이 그를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던 마음 자세를 엿보게 한다.
어찌 보면, 머리는 좋은데 속 썩이는 일등 자식같은 윤회가 세종 이도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밤새 집현전 불을 밝힌 채 글을 읽다 책상 앞에서 그대로 잠들었을 때 세종 이도에게서 갖옷-비단 옷 위에 짐승 가죽을 덧붙인 털옷-이 아닌 사랑을 선물 받았던 신숙주. 지은이는 그의 이야기에 '애인여기'라는 말을 달아주었다. '남을 자기 몸처럼 아낀다'는 뜻인데, 다양한 사람을 품어 넓고 깊은 세상을 낳았던 세종 이도의 마음을 잘 드러내주는 말이다.
집현전 학자 10명과 나눈 그림같은 이야기를 담은 <대왕 세종>은 사는 기쁨과 일하는 가치가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보게 해준다. 또한, 책 끝에 놓인, 세종과 '그의 아이들' 10인에 관하여 덧붙인 글은 이 책을 한번 더 생각케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왕과 신하로서 만나기 전에, 내 옆에 늘 있는 친구와 친구로 그리고 살가운 스승과 제자로서 신하들을 정성껏 대했던 세종 이도. 그를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해 주려는 듯이 지은이는 각 이야기마다 '이도와 ○○○'라는 제목을 달아주며 '대왕' 세종이 아닌 사람 이도를 소개해 주었다.
그랬기에, 역사소설 형식을 빌어 세종과 집현적 학사들 이야기를 펼친 이 책을 마치 실제 실록을 보듯 보았다. 공식 기록인 실록에서마저 인간미 넘치는 세종 이도를 볼 수 있으니 더더욱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세종 이도는 '절대지존'이 되기 오래 전부터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사람, 바로 평범하고도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을 그저 자기계발 서적쯤으로만 보기에는 세종 이도의 삶이 참으로 넓다.
덧붙이는 글 | <대왕 세종> 백기복 지음. credo, 2007.
다양한 사람을 품에 안아서 풍성하고 깊이 있는 세상을 만든 사람 세종 이도. <대왕 세종>을 통해 그의 인간적 면모와 지도자적 자질을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