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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4월 4일치 A2면 기사.
 조선일보 4월 4일치 A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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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미국을 주적이라 가르쳤다"(<동아일보> 4월 5일 사설)
"육사생도들까지 오염시킨 좌파 선전선동"(<조선일보> 4월 5일치 사설)

한 예비역 전직 육사교장이 실시한 것으로 알려진 설문조사가 일부 신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김충배(61) 한국국방연구원장이 4년 전인 2004년 1월에 벌인 육사 신입생 의식조사 결과가 그것이다.

<조선> 등 보도를 보면 '우리의 주적은 누구냐'는 물음에 34%가 미국을 꼽았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이라는 답은 33%였다고 한다.

육사 신입생이 미국을 주적이라 했다고?

이를 두고 일부 보수신문은 사설에서 "친북 반미 교육의 무서운 결과"(<동아일보>)라거나  "전교조가 어린 학생들을 그 불더미에 밀어 넣었다"(<조선일보>)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5일치 사설에서 "정권과 TV, 전교조가 국법을 수호해야 할 사람들까지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한 발 더 나아가 "친북 반미 교육의 무서운 결과"라고 몰아붙이면서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 대북인식의 왜곡이 사회 전 분야에서 확산된 탓이다. 햇볕정책이란 환상에 빠져 학교인들 무사할 리가 없었을 법하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이들 신문은 이 같은 '불온한' 사상을 고치기 위해 김 원장이 만든 "대안 역사교과서를 군에 배포하지 못하게 막은 게 국방장관이었다"고 지목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국방부까지 색깔을 덧씌우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한 편의 설문이 한참 뒤늦게 전교조와 참여정부를 겨누는 화살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런 일부 신문의 주장을 뒷받침한 유력 증거인 설문조사 결과가 실체도 분명하지 않는 등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공개된 것으로 8일 확인됐다.

석연치 않은 설문 내용, 그 실체는...

김충배 한국국방연구원장.
 김충배 한국국방연구원장.
ⓒ 한국국방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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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결과를 알려준 김 원장도 설문지를 갖고 있지 않은 데다 기사를 처음 쓴 <조선일보> 기자도 설문지를 보지 못한 채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한 물증 없이 김 원장의 발언에만 의존한 것이다.

더구나 정작 발언 당사자인 김 원장 스스로 "보도가 잘못됐다"고 밝히고 나서 주목된다. 그는 7일 "총선이 있으니까 나를 정치적인 것과 연결시킨 의심이 든다"면서 "일부 내용은 명백히 잘못 보도됐다. 언론중재위에 회부할 생각도 해봤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2004년 진행된 설문지와 설문 결과를 갖고 있지 않으며, 다만 전역 뒤인 2005년에 육사로 전화를 걸어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는 문항에 대해서만 응답 수치를 받아 적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4월 4일치에 처음 기사를 쓴 유아무개 기자도 "설문지는 직접 보지 못했고 김 원장의 얘기를 듣고 기사를 썼다"고 밝혀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는 문항 내용 자체도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원장은 "'앞으로 우리의 주적이 누가 될 것인가'라고 물었는지,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고 물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미래의 주적을 물었을 경우 일부 신문 주장의 근거 자체가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육사 홍보실 관계자는 "문항 내용은 기밀사항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기사와 사설에서 주장한 "입대 장병 의식조사 결과 75%가 반미감정을 표출하고 있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장병은 36%였다"는 내용 또한 정확한 문항에 근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김 원장은 "입대 장병 의식조사 결과 5개 항목을 <조선일보> 기자에게 알려주었지만, 자세한 질문 내용은 국방부 내부 자료이기 때문에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고 말했다.

"윤 장관 보도 명확히 잘못 나갔다"

이날 김 원장이 '잘못된 보도'로 지목한 대목은 '윤광웅 전 국방부장관이 (김 원장이 만든) 대안교과서를 배포하지 못하게 했다'는 보도 내용. 김 원장은 "나는 <조선일보> 기자를 만나 윤 장관 얘기를 거론한 적도 없다"면서 "당시 기자가 윤 장관이 배포 금지를 지시했느냐고 묻기에 분명히 '모른다'고 답했는데 기사가 잘못 나갔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대안 교과서가 발간된 2005년 이전 해인 2004년 11월에 전역했다.

이에 대해 이 기사를 쓴 유아무개 기자는 전화통화에서 "분명히 김 원장이 윤광웅 전 장관 얘기를 했고, 기사대로 국방부장관에게 대안교과서에 대해 보고했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교조에서 발행하는 인터넷 <교육희망>(news.eduhope.net) 인터뷰 기사를 추가 취재하여 새로 작성한 것입니다.



태그:#김충배, #주적,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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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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