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동안 국무위원들이 선거중립을 지키면서 국정을 수행하느라 수고 많으시다."

 

이명박 대통령이 총선을 하루 앞둔 8일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 선거가 끝까지 잘 치러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한 뒤 "부정선거에 대해선 엄격하고 신속한 제어가 필요하고, 특히 (상대후보를) 음해한다거나 금권선거를 하는 곳은 엄히 다스려 한국 선거문화를 바꾸는 데 적극적으로 정부가 나서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최근 논란이 되고있는 '관권선거'에 대해선 회의 내내 한 마디 언급이 없었다. 오히려 한승수 총리는 국무위원들에게 "그동안 (총선 때문에) 현장방문을 자제했는데, 총선이 끝나면 현장방문을 재개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평가대로 새 정부 국무위원들이 선거중립을 지키며 현장 방문을 자제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특히 이 대통령 스스로 이미 관권선거 논란의 한 가운데 서 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선거중립' 평가는 허울좋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중립 훼손 의심받을 일 해선 안 된다"고 해놓고

 

이명박 대통령은 4·9총선 후보등록 첫날인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가 선거중립을 훼손한다고 의심받을 만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며 "이번 선거에서 철저한 중립 입장을 취해주길 바란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 공명한 선거가 되도록 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단순히 '선거중립을 훼손하는 행위'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훼손한다고 의심받을 만한 일'에 대해서까지 금지시킨 것이다. 그는 이어 "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해선 사전·사후에 철저한 예방과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미 업무보고를 통해 잇달아 터져나온 이 대통령의 '돌발 행보'는 "사실상 총선 지원 활동"이라는 야당의 반발을 사고 있었다.

 

"강원도 내각" "군산은 제2의 고향" 등 이 대통령의 잇따른 '립 서비스'에 이어 구미공단 확장, 새만금 간척지 연내 개발, 광양항 활성화 등 지역 현안의 조속한 해결을 공개적으로 주문한 것은 야당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지난 달 20일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 뒤 전용 헬기로 귀경하다 갑자기 항로를 바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출마한 지역구인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 들른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대통령 뿐만이 아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등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1일 사이 초접전 지역인 인천을 방문, "신항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며 예산 지원을 약속했다.

 

'관권선거'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4일로 예정된 국정원 업무보고를 비롯해 감사원,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를 총선 뒤로 연기했다. "최근 몇 개 행사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하고 정치 쟁점화 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었다.

 

'신중한 처신' 주문하고 자신은 이재오 지역구 돌발 방문

 

중앙선관위도 뒤늦게 정부 측에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 준수를 요청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일부 장·차관들의 인천 방문은 문제삼으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총선 지원 활동"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업무보고 등의 일정을 총선 뒤로 미룬다는 발표가 있은 지 이틀만에 이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인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의 지역구인 은평구 뉴타운 개발지를 전격 방문했다. 전날 밤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누가봐도 관권선거 의혹을 살 만한 행보를 이 대통령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때마침 이날 청와대 최모 행정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를 비난하고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행정관들을 모아놓고 "행정관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구를 만나 얘기하는 것은 모두 대통령의 뜻으로 비친다"며 '신중한 처신'을 주문한 지 하루 만이다.

 

이번에도 중앙선관위는 이 대통령의 은평구 방문에 대해 "선거법 위반으로 보기 힘들다"고 결론 지었고, 이명박 정부 장·차관들의 '선거개입' 행보는 더욱 노골화됐다.

 

국토해양부가 총선을 이틀 앞두고 수도권 교통대책을 갑자기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이미 지난 인수위 시절에 발표했고, 시급히 알릴 필요가 없는 내용들이었다. 국토부는 기자들이 '총선용이 아니냐'고 지적할 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답변자료까지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도 초박빙 경합지역인 경기 안산 단원구 지역을 방문했다가 통합민주당 등 야당 후보들한테서 격렬한 항의를 받고 철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일정 없다'던 청와대, AI 피해지역 방문... 은평구는?

 

은평 뉴타운 방문으로 총선 개입 논란이 더욱 확산되자, 이번에도 청와대는 외부 행사 일정을 대부분 취소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청와대 각 수석실에서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한국국제전시장)에서 개최된 국제공작기계전시회, 경기 수원의 홍명보 어린이 축구교실, 경기 안산의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주민센터' 등의 방문을 이 대통령에게 제안했는데, 최종 결정 과정에서 가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정치적 시비의 대상이 된다는 자체가 청와대로서는 황당한 느낌"이라거나, "대통령이 무서워서 밖에 나가겠느냐"는 볼멘소리를 해대며 언론플레이에 열중했다. 야당의 '생트집' 때문에 대통령이 국정을 볼 수가 없다는 식으로 매도한 것이다.

 

청와대가 선거 막판에 와서야 외부 일정을 줄이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여전히 모든 눈과 귀는 총선 상황에 쏠려있다. 행정관 등 청와대 직원 상당수가 한나라당 당직자나 여당 현역의원 보좌진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총선 결과에 따라 향후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측은 7일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지역인 전북 김제를 방문할 지 여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대부분의 참모들은 '가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일부에선 방미·방일 준비 등 비공식 일정이 많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 결국 이 대통령은 하루가 지난 8일 오전 피해지역 중 한 곳인 전북 정읍을 방문했다.

 

자신의 '오른팔'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지역구는 주변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단박에 방문을 결정한 이 대통령이 정작 농민들의 피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지역 방문을 멈칫거린 것을 국민들은 어떻게 판단 할까?

 

'절대적 안정 과반 의석'을 향해 치밀하게 전개된 이명박 대통령의 '좌충우돌' 총선 기행이 이번 총선 결과에 어느정도 효과를 가져올 지 주목된다.


태그:#이명박 대통령, #4.9총선, #관권선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