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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빗줄기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하늘이 회색빛이니, 마음까지도 함께 내려앉아버렸다. 집사람은 성화다. 빨리 투표하러 가자고 재촉하고 있었다.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면 이렇게 미적거리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늘이 그러하니, 자꾸만 머뭇거리고 있었다.

 

  “투표하러 가야지요.”

 

  떠밀리다시피 하여 외출 준비를 하고 투표장으로 향하였다. 날씨 탓인지 투표하는 사람들이 많지 앉았다. 어슬렁거리면서 가서 기다릴 필요도 없이 곧바로 투표를 할 수 있었다. 투표를 마친 집사람은 책임감을 벗어버렸다는 듯이, 홀가분한 표정이다. 심드렁한 내 마음과는 상대적이다.

 

  “우리 나들이 갑시다.”

  “어디로?”

 

  뜨악한 표정으로 되묻는 나의 표정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 아내가 밉지만은 않다. 포기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면 곧바로 집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사람의 호들갑에 내키지 않는 마음에 자극이 될 수 있었다. 집사람이 이끄는 대로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

 

  “개나리가 참으로 예쁘다.”

 

  언제 저렇게 활짝 피어났을까? 도심은 꽃 세상이었다. 노란 개나리는 말할 것도 없고 벚꽃과 목련 등 수많은 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왜 몰랐을까? 무엇이 그리도 바빠서 화엄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도 알지 못하였을까? 어리석은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활짝 피어 있는 꽃조차 보지 못하였다니, 답답한 일이었다.

 

  노랗게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면서 생각해본다. 무엇 때문에 바쁠까? 무엇을 얻기 위하여 그렇게 동분서주하는 것일까? 줄을 잇고 있는 수많은 의문들에 갇혀버리게 된다. 죽으면 소중한 것은 모두 다 거품이 된다. 그 것을 알면서도 소유하기 위하여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가를 확인하게 된다.

 

  ‘꽃이 피는 소리를 들어보았습니까?’

  ‘연록의 새순이 자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봄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4월의 노래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노란 개나리꽃이 묻고 있었다. 가슴에 울리고 있었다. 꽃들이 묻고 있는 소리는 은은하면서도 감미롭다. 격앙된 목소리도 아니요, 뭔가를 강요하는 요구도 아니다. 간절하게 원해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꽃은 잘 알고 있었다. 눈을 감고 마음으로 들어야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개나리꽃 아래에서 눈을 감았다. 꽃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재잘거리면서 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하다. 중요한 말은 없다. 아니 듣지 않는다고 하여 손해볼 일도 아니다. 들어도 그만, 듣지 않아도 그만인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꽃들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 얼마만인가? 이렇게 편안하고 안락하였던 기분이.”

 

  꽃들의 이야기에 젖어 있노라니, 시나브로 흥겨워지는 것이었다. 분주한 일상도 뒤로 밀려나고 급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의 흥겨움이 좋은 뿐이었다. 무엇을 원하지도 않고 무엇을 바라지도 않으니, 그 것으로 족한 것이다. 욕심이 사라지고 나니, 그렇게 홀가분해질 수가 없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조차도 마음을 가라앉게 하지 못한다. 아니 그런 사실조차도 기분을 즐겁게 해준다.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던 조금 전의 상황하고는 정반대다. 그 것이 바로 봄의 축복이 아닐까? 봄은 그렇게 그 자리에서 축하하고 있는데, 단지 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꽃은 피어 있으면 환한 그대로 좋고, 비가 내리면 그 것대로 좋지 않은가?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비가 내리는데, 말간 햇살을 바라면 마음만 우울해질 뿐이다. 구름이 내려앉아 있을 때에는 구름을 즐기면 되고, 연록의 새순이 손짓하면 그 것만을 찬양하면 될 일이다. 개나리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귓가에 감미로운 봄의 소리가 들려온다.<春城>

 


태그:#개나리, #유혹, #마음, #공명,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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