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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렇게 꼼꼼하게 신경 썼을까'

 

화사한 봄꽃이 수놓인 한복을 차려 입은 신부 엄마가 내 친구다. 예식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가을에 딸 결혼을 앞둔 다른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진달래 등 바깥 풍경에 눈을 두고 있을 때였다. 알록달록 예쁜 떡과 과자를 옆옆이 담고 과일이며 음료까지 담은 종이 가방을 받으니 차 안에서부터 잔치분위기가 난다.

 

'어쩌면 이렇게 꼼꼼하게 포장까지 신경 썼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차 안에서 "큰 딸의 결혼이 처음이라 준비가 서툴고 미숙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라며 마치 새신랑처럼 차려 입은 신부 아버지의 진지한 인사말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결혼식이 그렇게 재미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멀리서 가는 손님이 더 먼저 가게 마련이다. 청주에서 서울로 간 하객인 우리는 예식시작 시간보다 훨씬 전에 식장에 도착했다. 학교 선생님인 내 친구 덕분에 하객이 대부분 아는 선생님들이라 그동안의 안부도 묻고, 신부대기실에서 생글생글 웃던 친구 딸과 사진도 찍으며 식을 기다렸다.

 

사회자의 다음 주문은?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내가 시집 가는 것도 아니고, 내 딸을 시집 보내는 것도 아닌데 왜 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걸까?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식은 평범하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신랑의 은사님이시라는 주례 선생님의 주례 말씀까지는 말이다.

 

사회자가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이 신부에게 축가를 부르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왠지 새로운 분위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들어설 때 결혼식에서는 다소 생소한 드럼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멋진 목소리로 축가를 부르는 신랑을 쳐다보는 신부의 눈빛 못지않게 하객들도 축가에 흠뻑 빠져들었다. 하객들까지 어깨를 들썩이도록 신나는 드럼반주와 축가였다.

 

사회자의 다음 요구가 모두 궁금해졌다.

 

꼭 연예인의 결혼식이 아니더라도 여러 이벤트를 하는 모양을 보고 '요즈음 결혼식은 예전과 달리 참 재미있게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오늘의 신랑에겐 무엇을 시킬까? 대개 신랑에게 힘들고 어려운 과제를 주게 되는데, 신랑은 힘들지 몰라도 보는 사람은 재미가 있기 마련이다.

 

사회자가 느닷없이 "신랑은 사랑하는 신부…"까지만 듣고는 신부를 업는다든지 뽀뽀를 한다든지 사랑한다고 외친다든지 뭐 그런 걸 시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신랑은 사랑하는 신부를 지금까지 키워 주신 신부의 어머니, 즉 장모님 앞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나, 봉 잡았다'를 크게 외치며 장모님을 업고 예식장을 한 바퀴 돌아 주십시오."

 

우리는 사회자의 요구에 신랑의 행동이 궁금해졌다. 과연 사위가 장모를 업을 수 있을까?

또한 사위 등에 장모가 업힐까? 등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의 걱정을 없애 주기라도 하려는 듯 신랑은 장모를 업고 그 넓은 예식장을 "나 봉 잡았다"를 외치며 씩씩하게 돌고 왔다.

순식간에 예식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장모가 날씬했기에 다행이지 뚱뚱했으면 업히지도 못했을 거라는 둥 이야기를 덧붙여 가며 하객들은 더 크게 손뼉을 쳤다. 애썼다며 사위의 등을 토닥여 주는 장모의 손길에 사랑이 묻어있다. 힘들었던지 땀이 맺힌 신랑의 이마를 쳐다보던 신부에게 사회자의 요구가 주어졌다. 이번엔 뭘까?

 

"신부는 지금까지 신랑을 훌륭하게 키워 주신 시어머님 앞으로 가세요. 신부는 '나도  봉 잡았다'를 크게 세 번 외쳐 주세요."

 

설마 저 여리고 여린 신부에게 시어머니를 업고 뛰라고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모를 일이야' 하도 황당한 요구를 보아온 터라 다소 걱정스런 눈으로 보던 우리는 크게 웃고 말았다. 신부에게 주어진 부탁은 시어머니께 뽀뽀를 해드리라는 거였기 때문이다.

 

"나도 봉 잡았다"를 크게 외치던 고운 신부와 멋진 신랑은 우리들에게 두고두고 잊지 못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고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가는 차 안에서 난 친구에게 미리 얘기했다. "행여 눈물 흘리거나 하지 마라." 요즈음은 예식장에서 우는 사람 찾아보기 힘들다며 당부했건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눈시울을 적시던 딸을 보내는 엄마 마음을 사위 등에 업히는 걸로 위로해 준 걸까? 아직까지도 '봉 잡았다'라는 말이 귓가에 맴도는 걸 보면 사위 등에 업혔던 친구를 많이 부러워하고 있나 보다.


태그:#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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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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