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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죽과 진달래꽃.
 산죽과 진달래꽃.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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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9일)는 일찌감치 투표를 마치고 산행을 나섰습니다. 오후부터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도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습니다.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제각기 다른 산행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 산행의 목표는 신원사까지랍니다. 지금쯤 신원사 경내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겁니다. 그 경내에서 벚꽃과 하루 지내다 올 생각입니다. 동학사를 지나자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산길을 조금 올라가자, 푸른 산죽 숲과 연분홍 진달래 숲이 어울려 멋진 하모니를 이루는 산기슭이 나타나더군요. 어쩌면 '삶을 누린다'라는 건 발견할 줄 아는 능력과 깊은 연관이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시 곱씹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

천황봉 가까이 있는 석문.
 천황봉 가까이 있는 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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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니, 전망대가 있습니다. 앞 봉우리를 우러러보니, 석문(石門)이 바라다보이고, 바로 아래 골짜기에는 은선폭포라는 폭포가 장(壯)한 모습을 뽐내고 있더군요.

문득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 스님이 말씀하셨던 유명한 법어가 생각나더군요. 그러나 이 말은 본래 속경덕전등록(續景德傳燈綠) 22권에 나오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은선폭포.
 은선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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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삼십년전미참선시 견산시산 견수시수 내지후래친견지식유입처 견산불시산 견수불시수 이금득개휴헐처 의전견산지시산 견수지시수 대중저삼반견해시동시별(老僧三十年前未參禪時, 見山是山, 見水是水, 乃至後來親見知識有入處,, 見山不是山, 見水不是水,而今得箇休歇處,, 依前見山祗是山. 見水祉是水, 大衆這三般見解是同是別)

내가 삼십 년 전에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보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선지식을 친견하여 깨침에 들어서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으로 보았다. 지금 편안한 휴식처를 얻고 나니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의 시원(始源)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송나라 때 임제종 청원유신 선사의 상당법어였으며, 전심법요(傳心法要) 제2편 완릉록(宛陵錄)이 그 효시라고 합니다. 누가 먼저 말했다는 걸 밝혀 지적소유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느냐를 따지자는 건 아닙니다만….

아무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은 미망(迷妄)을 경계함이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것은 적멸을, "산은 다만 산이고 물은 다만 물이다"라는 것은 아마도 적조(寂照)를 일컬은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산시산 수시수 산불시산 수불시수 산지시산 수지시수(山是山, 水是水, 山不是山, 水不是水, 山只是山, 水只是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그러니까 망령되게 굴지마라).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이다(분별없이 그냥 바라볼 뿐이다. 결국 모두 허망한 존재인 것을….).

열정을 잃은 뒤부터 세상이 변화를 거부했다

관음봉 고개에서 내려다본 산아래 학봉리와 동학사.
 관음봉 고개에서 내려다본 산아래 학봉리와 동학사.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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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상대의 말뜻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법이지요. 그러니 제가 어찌 고승들의 말씀을 다 이해하겠습니까? 그런 전제를 깔고서 얘기하자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말은 아마도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각기 상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 이쯤 되지 않을는지요.

무척 오랜만에 계룡산에 온 것 같습니다. 계룡산을 올랐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요즘 산 오르기를 게을리했더니 숨도 가쁘더군요.

관음봉(816m)으로 올라가는 등산객.
 관음봉(816m)으로 올라가는 등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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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산에 오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저를 산으로부터 자꾸만 멀어지게 할까요? 수시로 날 가두는 감정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사로잡혀 살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건만 결국엔 그 '무엇'인가가 날 꼭 붙들어 매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산을 오르내리는 내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유통기간이 지나버린 화두가 머릿속을 맴돌더군요. 서서히 '나'라는 고유한 존재의 의미가 고통스럽게 환기되어 오더군요.

디오니소스적인 열정 하나로 길을 만들어 가던 젊은 시절을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어떤 감흥으로도 불러올 수 없는 그 열정의 순간들.

열정을 잃어버리고 난 뒤부터 나를 둘러싼 세상이 더 이상 변화를 거부했었다는 뒤늦은 자각이 아프게 나를 꼬집었습니다. 열정 없이 산다는 것, 아무런 통증없이 산다는 건 얼마나 형편없는 삶일는지요. 관음봉 고개에 잠시 앉아 있는 시간은 그렇게 나 자신에게 연민을 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문필봉과 삼불봉.
 문필봉과 삼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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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봉(738.7m)에서 바라본 천황봉(845m).
 연천봉(738.7m)에서 바라본 천황봉(84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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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봉에 올라서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 삶의 그 어떤 추악한 찌꺼기조차도 혈육으로 보듬어 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난 오랜만에 맛보는 정신의 쾌감을 실컷 누리고 싶었습니다. 모든 관념을 소멸시켰을 때 그 자리에 남는 단순함이 주는 명쾌하고 상쾌함으로 그 순간을 영원히 지속시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습니다. 즐거움이란 적당한 지점에서 내려놔야 한다는, 너무 오래 지속되면 그 느낌이나 맛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뜻이 아닐는지요. 느릿느릿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아주 피곤하지 않은, 매우 적당한 피로감이 두 다리에 몰려오더군요. 적당한 피곤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비 맞은 생강나무꽃.
 비 맞은 생강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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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아 더욱 초롱초롱해진 현호색 꽃.
 비를 맞아 더욱 초롱초롱해진 현호색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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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는 길가엔 생강나무 꽃과 현호색이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비를 맞을수록 꽃이나 잎이 점점 색깔이 선명해지더군요. 두루뭉술한 노란색과 선명한 보랏빛, 그리고 싱그러운 녹색의 이파리들.

식물은 자신에게만 맞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바람·햇볕을 골고루 융합시켜서 한 송이 꽃을 피워냅니다. 올봄, 내가 만났던 꽃들은 내게 '삶'에 대해 부단한 물음표를 던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전 느낌표 하나로 그 물음을 피해왔을 뿐입니다.

돌아보면 내 일생의 노동이란 게 별것 아니었으므로, 아직 꽃들에게 들려줄 그럴싸한 말을 찾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한 식물이 애써 만든 노동의 과실인 꽃을 바라보며 연방 감탄사를 쏟아내는 것밖엔 없었지요.

느닷없이 떠오른 '각개약진'이라는 단어

비를 맞으며 하산하는 등산객
 비를 맞으며 하산하는 등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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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딱 비를 맞고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니, 적당한 피로가 버릴 수 없는 애착으로 달라붙더군요. 그런 사치스런 감정은 없애야 할 경박성일까요? 아니면 필요악일까요? 큰일입니다. 툭, 하면 이렇게 몰지각한 습성이 쌓이면 정신은 점점 더 비틀거릴 텐데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에는 함정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초저녁에 잠시 지켜본 선거 결과는 저를 긴 생각에 잠기게 하더군요. 어젯밤은 보수와 진보, 그 차이의 미학이 유독 서럽게 느껴지는 밤이었습니다.

이제 선거라는 투쟁의 계절도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숲 속 생물들이 알게 모르게 생존을 위해 피나는 투쟁을 벌이듯, 우리 역시 보다 나은 삶의 조건을 만들고자 소리없이 싸울게 될 것입니다. 느닷없이 '각개약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군요. '약육강식'이라는 말도 함께.

그러나 누가 뭐래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입니다. 산을 오르는 건 존재의 각자성을 확인하고면서 스스로 굳건해지려는 까닭이 아닐는지요.


태그:#계룡산 , #존재 ,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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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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