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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7일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등록금 폭등 사태에 대한 각 정당의 등록금 정책과 활동평가를 발표하고 있다.
 등록금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7일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등록금 폭등 사태에 대한 각 정당의 등록금 정책과 활동평가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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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파랗게 물든 지도 그리고 실망

4월 9일 오후 5시경. 나는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내가 찍어준 정당은 과연 얼마만큼의 성적을 낼 수 있을까?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리모컨을 쥔 손에는 점점 땀이 배어났다.

10분 뒤에 나올 출구조사 결과가 향후 4년을 규정하리라. 그리 생각하니 마치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를 지켜보는 붉은 악마가 된 듯 싶었다.

오후 6시 정각. 각 방송사들은 일제히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자료화면 속 지도는 온통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나라당을 포함한 보수 정당들이 도합 200석을 장악하게 될 판이었다.

이미 각종 여론조사를 접했기에 어느 정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결과를 실제로 접하고 나니 머리가 멍해짐을 느꼈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TV를 응시할 따름이었다. 

통합민주당은 겨우 80석을 넘어섰고 민주노동당은 기존 의석의 절반만을 차지하리란 예측이 나왔다. 진보신당은 원내에서 아예 퇴출 당할 처지에 놓였다. 힘이 빠진 나는 조용히 TV를 껐다. 축 처진 다리를 질질 끌면서 침대로 가 누웠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에 대해 나름 예측을 해봤다. 얼마 안가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나라의 운명에 대한 걱정이라기 보다는 철저히 나에 대한 걱정이었다.

주요 정당들의 등록금 공약. 등록금 문제에 있어 가장 소극적인 입장을 취한 정당들이 18대 총선에서 원내 주도권을 장악했다.
 주요 정당들의 등록금 공약. 등록금 문제에 있어 가장 소극적인 입장을 취한 정당들이 18대 총선에서 원내 주도권을 장악했다.
ⓒ 등록금넷,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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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등록금은 이제 어쩌지?

문득, 앞으로 2년을 더 다녀야만 하는 대학교의 등록금이 떠올랐다. 대학생 신분으로서 나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들은 의석이 반으로 줄거나 원내에서 물러나게 됐다. 등록금 규제를 반 시장적이라고 외치는 정당들에게 등록금 부담을 경감해주기 바란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 사실을 곱씹을 때마다 한숨이 밀려왔다.

반면, 내가 내야 할 등록금은 이미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나는 장학금을 따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고, 부모님은 그날 번 수입을 전부 등록금에 쏟아 붓곤 하셨다.

이런 민생문제를 겉치레 공약으로나마 해결하겠다고 공언한 정당들은 패배의 쓴 잔을 마셨다. 반면, 그 공약마저 내기를 주저한 정당들은 원내 주도권을 차지했다.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이 시청에 모여 등록금 반값 공약을 추진하지 않는 여당을 총선에서 심판하자며 외친 절규들은 끝내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 당시 집회에 참가해 밥 굶어가면서 하루 종일 서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니 허탈할 뿐이었다.

등록금 상한제야 '지못미'

인터넷에서 흔히 사용하는 은어 중에 '지못미'라는 단어가 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의 준말이다. 이제는 대학생들이 갈망했던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에게 이 말을 붙여줘야 하지 않을까?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를 골자로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1년이 넘도록 국회 상임위에서 계류중이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는 날이 생기기는 할까? 그때가 온다면 아마 백 만원이 넘는 등록금 인상분을 다 내고 졸업한 이후가 아닐까? 이럴 때에는 그저 내 자신이 미약하게만 보일 뿐이다.

등록금이 해마다 비싸지는 반면, 졸업한 대학생들이 정규직으로 취직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20대의 경제상황이 악화일로를 걷는 반면, 그 상황을 타개해 나갈 20대의 투표율은 이와 비례에 점점 감소하고 있다. 이번 18대 총선에서 20대의 투표율은 역대 최저 기록(37.1%)이었던 17대 총선보다 낮을 것으로 보인다.

등록금 인하, 등록금 상한제 실현, 이명박 교육정책 규탄 '3.28 전국대학생 행동의 날' 행사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 주최로 열렸다.
 등록금 인하, 등록금 상한제 실현, 이명박 교육정책 규탄 '3.28 전국대학생 행동의 날' 행사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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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정치적 소외는 결국 20대의 책임

혹자들은 20대의 정치참여가 저조한 것을 기성 세대의 경쟁 위주의 주입식 교육관에서 찾는다. 암기 위주의 교육, 경쟁 일변도의 입시경쟁이 현재 20대의 세상 보는 눈을 잃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지적에 한편으로 동감이 가면서도 그 해석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80년대 386세대와 90년대 X세대가 보여준 저항정신이 사라진 이후, 젊은이들에게는 더 이상 새로운 형태의 시대정신이 들어서지 못했다. 20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세계관의 실종은, 곧바로 참여의 부재로 이어졌다. 시대정신이 사라진 자리에는 치열한 취업준비와 화려한 소비문화만이 남게 되었다. 대학생, 또는 20대라는 세대 내의 연대의식은 사라졌고, 개인은 점점 파편처럼 흩어진 존재가 되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는 철저한 투입과 산출 관계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불만을 투표로서 투입하지 못한다면 그에 따르는 산출 역시 나오기 힘들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은 상아탑이 아닌 인골탑이 되었고, 지식의 전당은 취업준비학교로 전락했다.

이는 결국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정당정치에 투입시키지 못한 20대의 책임이다.

20대 유권자들의 표가 선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한 정당들이 20대와 관련한 공약을 적극적으로 내놓을 이유는 없다. 지금의 유권자 지지시장에서 20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의 존재일 뿐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아무런 정치적 참여없이 저절로 20대를 위한 복지혜택과 사회진출의 문이 넓어지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재 상당수의 20대들은 세상의 모든 악이 정치판에 있다고 욕하면서, 정작 현실정치의 영역은 철저히 부모 세대의 소관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자신들이 원내에 진출해 상황을 바꿔 나가거나 투표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할 생각은 하려고도 않고, 하지도 않았다.

단지 자신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변명으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들먹인 것은 아닌지 우리들 스스로가 돌아볼 일이다.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뜬금없이 사학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등록금 상한제 도입은 다시 4년 뒤를 기약해야만 한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학자금 대출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자살을 선택하게 될까?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캠퍼스에 내려앉은 막막함과 절망감이 사라질 수 있을까? 그 해답은 20대인 우리가 갖고 있다.


태그:#등록금, #시대정신, #20대, #대학생,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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