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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하애정 부부의 공연 모습
 박희정·하애정 부부의 공연 모습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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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에게 올해는 아주 뜻 깊은 해입니다. 부부 인연을 맺은 지도 20년, 풍물을 시작한 지도 20년이 됐습니다. 하여 이쯤해서 한 매듭을 짓고 다시 한 땀 한 땀 새로운 삶의 바느질을 해나가자는 의미로 두 사람의 이름으로 판을 엽니다."

결혼20주년, 풍물판으로 기념하다

지난 5일 저녁 5시 김포시여성회관에서 열린 박희정(48)·하애정(45) 부부가 벌인 풍물판은 '諧樂(해락, 어우러져 놀다)'이라는 이름 아래 총 4마당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入'마당에선 대고와 입춤으로 판을 열어 김포 판굿으로 판을 달군다. 두 번째 '立'마당에서는 박희정이 하는 풍물과 공연 이야기, 하애정의 고깔소고놀이, 박희정의 진도놀이, 하애정이 풀어내는 풍물이야기 그리고 미래가 즐기며 풍물꾼으로 선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어 세 번째 '込'마당에선 원앙금품의 설장고, 풍물굿패 살판과 참넋의 날뫼북춤으로 갈 길은 먼데 힘을 모으니 신명이 오름을 이야기한다. 끝으로 네 번째 '湁'마당에선 하나보다 둘, 둘 셋보다 더 많을 때 하나 되기 쉬운 풍물, 그리고 나의 과거와 다른 이의 현재가 함께 하며 미래로 뻗어가기를 염원하는 즉 '諧樂'으로 판을 마무리한다.

하애정씨 공연 모습
 하애정씨 공연 모습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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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씨 공연 모습
 박희정씨 공연 모습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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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애정씨가 대고와 입춤으로 판을 열 때 관객들은 숨을 죽여 긴장했고, 박희정씨가 김포판굿으로 판을 달굴 땐 거친 호흡으로 함께 달아올랐다. 이어 박희정·하애정 부부의 20년 이야기가 풍물판으로 녹아나고 부부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실린 설장고 가락에선 더러 한숨을 쉬다 고개를 끄덕이는가 하면 눈물을 찍어내기도 했다.

500~600여명의 관객들은 채 1~2분도 되지 않는 막간조차 조바심의 함성을 질러댔고 2시간여의 긴 공연이 끝나도 아쉬움에 객석을 떠나지 못했다. 급기야 마지막 마당에선 무대도 객석도 풍물패와 관객이 한데 어우러져 신명나는 한판을 벌였다. 봄날의 초저녁이 그렇게 해락 속에 깊어가고 있었다.

하애정씨 공연 모습
 하애정씨 공연 모습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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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판에선 물 만난 고기가 된다

"어디 좋은데 여행이라도 가자는 저의 의견에 아내가 공연을 제안했어요. 결혼 20주년도 의미가 깊지만 우리 부부가 풍물을 함께 한 지도 올해로 20년이 됐거든요. 그래서 그간 우리 부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비록 부족할지라도 최선을 다한 공연으로 그간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살겠노라 약속을 드리는 의미에서 공연을 기획하게 됐어요."

'부창부수'라는 말이 참 적절하다 싶은 박희정·하애정(45) 부부. 둘 다 경남 진주가 고향인 이들은 1987년 풍물패 터울림에서 처음 만나 이듬해 결혼했으며 1998년 김포에 정착했다. 김포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또한 재미있다.

"아내나 저나 아파트라는 곳이 체질적으로 맞질 않았는지 서울 생활이 영 답답했어요. 더군다나 아내는 아이들이 어려 풍물은 꿈도 못 꾸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문화적인 고립감 같은 것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우연히 김포에 놀러 왔다가 통진면민 체육대회에 동을산리 풍물대표로 나가 걸판지게 한판 놀았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김포로 이사를 오게 되었어요. 물론 아내가 먼저 제안을 했었어요. 김포로 오자 아내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찾아들더군요."

박희정씨 공연 모습
 박희정씨 공연 모습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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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할 때 신난다"는 당시 개곡초등학교 5학년이던 딸아이 말에 자극 받은 부부는 2년여 개곡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풍물을 가르쳤다.

이후 딸아이가 분진중학교로 진학함에 따라 다시 분진중학교로, 또 소문을 들은 이웃 학교의 요청에 따라 관내 초·중학교를 돌며 청소년들에게 풍물을 가르쳤다. 당시를 일러 박희정·하애정 부부는 '물 만난 고기'처럼 그리 신바람 날 수 없었으며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었다고 회상한다.

풍물 20년, 매듭 하나를 짓는다

부부는 그렇게 10년을 김포에서 풍물과 더불어 신명나게 살았다. 그런데 흔히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금상첨화'라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박희정·하애정 부부는 세상 부러울 것 없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생계 걱정이 없다면야 말 그대로 금상첨화지요. 그러나 풍물판으론 밥 먹고 살기도 빠듯합니다. 우리 부부야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 것이니 모든 어려움을 감수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게 아니지요. 그래도 참 고마운 것이 우리 부부의 가장 열렬한 응원자가 바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도 어울려 풍물판 벌이는 것을 좋아하고요. 행복이 뭐 별 건가요. 우리 가족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에 만족하고 늘 웃고 사는 것이지요."

이쯤해서 또 하나 궁금해진다. 이리 신명나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 부부도 부부싸움을 할까? 

"당연히 부부싸움 하지요. 그런데 다른 부부들처럼 일반적인 가정사로 부부싸움을 하는 일은 드물고 그저 풍물판에서 서로 좀 더 잘해 보려다 보니 가끔 의견 차이를 보일 때가 있어요. 이 가락에선 이런 몸짓이 좋다, 이 장단에선 이런 몸짓이 좋다…. 뭐 그런 이유들이죠. 해결책은 아주 간단해요. 제 의견대로 아내 의견대로 신나게 풍물판을 벌여보는 겁니다. 그렇게 한바탕 땀을 흘리다 보면 누구 의견이 더 나은가가 절로 판명 납니다. 결국 풍물판이 해결사예요."

박희정씨는 현재 (사)민예총 민족굿 위원회 사무처장, 전통연희 연구소 소장, 서울지역풍물단체협의회 고문, 예술마당 살판 고문으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굵직굵직한 국내 풍물판의 연출가와 감독으로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서울단오축제 대동굿 연출, 세계마당극큰잔치 개·폐회식 연출, 5·18 광주민주항쟁 20주년 '님을 위한 행진곡' 풍물굿 연출, 남북 '2002 새해맞이 굿' 풍물 연출, 과천 마당극큰잔치 대동굿 연출, '2004 민족 굿 한마당' 총연출, 희망의 메시지 '바람을 타고 나는 새야' 연출, 의정부 단오축제 한마당 대동마당 연출, 김포문화예술제 기획 등 전통예술로서의 풍물이 대중예술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하애정씨 이력 또한 박희정씨만큼 화려하다. 김제 전국농악경연대회 대상 수상, 대한민국 국악제 호남우도 판굿 공연, 전남영광 '생각하는 청년명인전' 고깔소고놀이 초청공연, 국립극장 한가위축제 판굿 공연, 진도국악원 설장고, 진도북놀이 초청공연, '2004 민족굿한마당' 설장고, 고깔소고놀이, 진도북놀이 초청공연, 전국민족극한마당 '신새벽 난장' 설장고 초청공연. 양산국악원 진도북놀이 설장고 초청공연, 목포 우수 마당극제 진도북놀이, 고깔소고놀이 초청공연 등 내놓으라하는 풍물판을 휩쓸고 다녔다. 

박희정·하애정 부부의 공연 모습
 박희정·하애정 부부의 공연 모습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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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풍물꾼으로 산 지 20년. 그러나 풍물은 40대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 이치임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박희정씨는 이쯤해서 풍물꾼으로서의 삶에 한 매듭을 짓고 다시금 새로운 마음으로 풍물을 만나고 싶단다.

"풍물뿐 아니라 어떤 예술도 살아있을 때에야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법입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풍물판을 벌이다보면 나는 없어지고 신명만 남게 되는 순간에 다다르게 되고, 그 순간이야말로 풍물과 나와 구경꾼이 오롯이 하나 되는 순간이죠. 그 짜릿한 순간들이 나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구경꾼들에게도 행복이 될 수 있도록 풍물의 대중화를 위해 더 신명을 내려 합니다."

결혼20주년 기념공연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결혼40주년 기념공연을 계획하는 박희정·하애정부부. 60대가 된 그들의 부부 이야기가 녹아든 또 다른 풍물판을 기대해본다.  


태그:#박희정, #하애정, #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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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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