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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창백한 어머니
 독일, 창백한 어머니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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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섹션 <독일, 창백한 어머니>. 세계2차대전이 한참인 독일. 숨가쁜 역사와 달리 영화는 길고 긴 롱테이크를 택해 인물을 일상을 그대로 좇아간다. 동화 한 편을 편집 없이 끝까지 들려주는 가운데 강간 사건이 끼어들기도 한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편집은 어린 감독이 느꼈던 시간을 그대로 재현하며 거대한 담론을 걷어내고 ‘사람들’을 보게 한다.

브레히트의 시로 시작한 이 영화는 나치의 세계대전 하에서 한 쌍의 착한 남녀가 어떻게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으며, 헤어지고 결합하는지 보여준다. 남자의 시간을 드물게 좇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집에 남아있는 엄마의 이야기다. “하이 히틀러, 예쁜 딸입니다”라는 축하인사와 함께 태어났던 감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치당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은 제일 먼저 폴란드 최전선으로 징집된다. 군대에서 우격다짐으로 성품을 구겨넣으며 남편은 폭력적으로 변하고, 자신의 아내와 닮은 여자를 총살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의 초점은 남편이 전장에서 어떤 잔인한 일들을 겪으며, 그로 인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홀로코스트의 끔찍함이나 유태인이 겪은 일에 대한 고발도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집을 폭격하는 동안에도, 피난을 다니며 아기를 낳고 그 아기를 기르는 여성. 영화는 폭격으로 집이 무너진 다음날 '두 모녀는 즐거웠다'고 설명하고 있다.

<에이미와 야구아>라는 영화가 쫓아가던 일상에서도 나치 독일 하에서 유태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여자는 오페라를 보기도 하고, 독일인 여자와 눈이 맞아 연애를 하기도 했었다. 전쟁이 한참인 지역을 다녀왔던 한 평화활동가도 자신이 이라크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즐거웠던 일상을 이야기했었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았다'고 말하는 느릿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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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날 것으로 보여주는 것은 실감나는 전달이 될 수 있겠지만, 누군가를 더욱 흥분시키고, 이를 통해 무언가를 하도록 만든다. 그건 사람을 잔인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느릿한 영화는 전쟁을 다루지만, 거기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들이대기보다, '거기에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하는 화법을 택한다.

엄마는 피난 도중 강간을 당하지만, 아이에게 "정복자들의 특권이란다. 죽이고 강간하면서"라고 말하며 다시 일어나 피난길에 오른다. 마치 힘들지 않은 것처럼. "난 정말 죽도록 힘들어"가 아니라, '삶이 계속된다'는 그 여자가 실제 느꼈을 시간을 보여준다.

전쟁 중 휴가를 나온 아빠는 "우리는 승리할 거야"라고 말한다. 엄마와 아이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그는 불편해한다.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가운데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일종의 낯설음이기도 하다.

영화가 괴로웠던 부분은, 오히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이들이 함께 일상을 공유하게 된 뒤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만, 전쟁에서 벗어난 뒤로 오해에 시달리고, 그로 인해 생활도 순탄치 않다. 전쟁에서 집 안으로 흘러들어 잔류하는 폭력성은 아버지에게서 어머니에게로 향하고, 다시 어린 여자아이에게 향한다. 여자의 한쪽 얼굴은 마비된다.

영화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그 시간들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느낌으로 존재한다.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 자신 부모의 이야기를 하는 데 집중해 있으며, 가해자 독일-피해자 유태인이라는 기존의 남성 역사적 공식을 모두 던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모녀의 서정적인 여로를 좇는 영화는 중간중간 다큐멘터리를 삽입함으로써, 여성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구성한다.

"전쟁을 여성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헬마 젠더스 브람스 감독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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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대화 시간, ‘전범의 국가’인 독일 여성 감독에게, 한 관객은 날카로운 불만을 던져놓았다. 어째서 유태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다루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피난 중의 일본 여성이 당한 폭력과 강간의 목격담 <요코 이야기>가 한국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었듯이, 어떤 관객들은 화가 난 듯이 보였다.

헬마 잔더스-브람스 감독은 많은 시간을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변호에 할애해야 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나치 당원이 아니었으며, 자신은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아버지를 미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후에, 아버지가 부끄럽다는 이유로 다시는 가지 못했던 나라들, 예컨대 프랑스 같은 나라의 초대로 방문해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자신은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의 유태인, 혹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껴안고,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감독은 "이 사람들이 용서한다면, 나도 왜 용서하지 못하겠는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자신을 데리고 홀로코스트 영화관을 찾았던 적도 있었으며, 그 영화관에는 오로지 자신들 두 명뿐이었다고도 한다.

감독의 개인사가 관객들에게 답변이 되었을까? 그러나 이것은, 가해국과 피해국을 떠나 전쟁의 뒷자리에 남겨진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감독은 힘주어 말한다. 물론 한 국가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이 영화는 전쟁이 일어날 때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는가의 이야기다. 그것은 가해국가이든 피해국가이든 어디에 속해있든 상관없이 동일하다. 폭탄이 터질 때 도망가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손에 아이들을 위한 용품들을 바리바리 들고 있거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도망갈 수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성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실 그곳에 다이아몬드나 석유, 돈이 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침략을 당했으며, 현재 이라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지 않죠. 그 나라가 벌 받을 짓을 했기 때문에, 나쁘기 때문에 전쟁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곳에 남겨진 여성들의 관점에서, 어떤 이유이든 전쟁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래서 독일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로 명명한 이 영화는, 국경을 좀 더 쉽게 넘고, 30년을 거듭 상영될 수 있었는가 보다.

헬마 잔더스-브람스 감독은 영화제 기간 두 번의 감독과의 대화, <쾌걸여담-여성영화 30년을 되돌아보다>를 함께 했다. 4월 12일 권은선 프로그래머의 사회로 진행된 쾌걸여담에서는 미국 여성영화 배급사 WMIM의 책임 프로듀서 데브라 짐머만의 공동 참여로 여성 영화제작과 실천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태그:#독일 창백한 어머니,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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