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교육관련 규제를 철폐하겠다면서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학교는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우열반을 편성할 수 있고, 0교시 수업과 심야시간 보충 수업을 무제한으로 할 수 있다. 또한 초등학교까지도 교과 보충수업을 할 수 있으며, 학원이 학교에 합법적으로 들어와서 강좌를 개설하고 수업을 할 수 있다.
교과부의 이번 조치는 '실용'과 '자율화'라는 명분으로 그동안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존재했던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제거해 버린 것이다. 이로써 교과부는 우리나라 교육을 입시교육의 전면화와 학교의 학원화에 무방비로 노출시킨 셈이다.
우등반 들어가기 위해 학원을 가야될 현실
교과부는 현행 영어·수학 과목의 수준별 이동수업(학생의 실력에 맞게 교실을 이동해가면서 수업을 듣는 제도) 운영지침을 폐지해 아예 처음부터 성적순으로 반을 편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우등생반'과 '열등생반'을 공식적으로 편성해서 운영해도 좋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교마다 '서울대반' '연고대반'이라는 이름표를 단 특수반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수 있다.
결국 특수반에 진입하지 못한 학생들은 평생 열등생 낙인을 가슴에 안고 가야 하는 가장 비교육적인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또한 자녀를 어떻게해서든 특수반에 넣으려는 학부모 역시 또 다른 사교육의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우형식 교과부 1차관은 교육계의 이러한 우려에 대해서 "교육감이 지역사회 여론을 충분히 감안해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기 때문에 '서울대반' '연고대반' 부활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는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우 차관의 이 같은 발언은 성적에 따라 급식의 질을 달리하겠다는 사람이 학교장으로 있고, 초등학생에게까지 일제고사 성적을 공개해 줄 세우기 하려는 교육감들이 군림하고 있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말이다.
고등학교 0교시 부활에 초등학교까지 보충수업또한 추진계획은 강제적 획일적 보충수업금지와 정규수업 시작 전과 저녁 7시 이후의 보충수업을 금지한 '학사(수업 및 일과운영)지도 지침'도 폐지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이 아침식사를 거르게 되고 잠도 부족하다"는 반대여론 때문에 그동안 금지해왔던 '0교시'와 심야보충수업이 다시 극성을 부릴 전망이다.
교과부는 또한 초등학교에서도 특기적성 형태의 예체능 교과뿐만 아니라 국어·영어·수학 등과 같은 교과 과목 보충수업도 실시할 수 있게 하였다. 중고등학교에서만 실시되던 보충수업이 초등학교까지 내려간 것이다. 이제 초등학생들까지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게 될 것이 뻔하다.
아울러 방과후학교 운영 지침이 폐지되면서 학습지나 학원과 같은 영리목적으로 운영되는 회사들도 학교에 들어와 강좌를 개설하고 수업을 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공교육의 특성상 비영리기관에만 방과후학교 운영을 허용했으나 앞으로는 지침 자체가 없어지면서 학교와 계약만 체결하면 누구든지 학교에 들어와 수업을 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사실상 사설입시학원의 학교 분원 설치가 가능하게 된 셈이다.
이러한 방침은 그동안 금지되었던 사설학원의 모의고사 실시도 무제한 허용해 이권과 맞물려 학교로 진출하려는 사교육업체의 치열한 경쟁을 유발할 것이 뻔하다. 전인적 발달을 목표로 하는 학교교육과 성적지상주의의 학원자본의 충돌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결국 이번 발표는 '학교와 학원의 경계를 허물어 줄테니 학생과 학부모들께서는 알아서 승자로 살아남으시라'는 말로 읽힌다.
최소한의 규제도 포기한 정부, 피해는 결국 학생과 학부모이번 교과부의 추진계획은 공교육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마저도 포기한 것이다. 만약 이러한 계획이 계속 추진된다면 학교는 1%의 승자를 위한 입시전쟁터로 변해 버릴 것이며, 학생과 학부모는 절망에 빠질 것이 뻔하다.
지금 정부 방침대로라면 학교는 학원에 팔려갈 수밖에 없다. '실용'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의 미래를 자본에 넘기는 걸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학교는 학교이고 학원은 학원일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