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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필호를 제외하고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대조신은 궁금해서 아주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자 김태수가 대조신에게 자기를 보게 하더니 배갈을 한 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즉각 민필호를 검지로 가리킨 후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비로소 뜻을 알아차린 대조신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언더스탠, 언더스탠!"이라고 소리쳤다.

"민 동지 말대로 국제 정세는 미국이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소."

신규식은 향후 독립 운동의 청사진을 설명하고 민제호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민제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답변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어조에는 신념이 배어 있었다.

"윌슨은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공약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세계대전에 개입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이제 여론이 아닌 독점 자본과 그들에 유착되어 있는 언론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호전적인 집단입니다."

미국은 전쟁에 개입하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걸었는데, 이것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일본 등의 협상국들과 담합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하면 되는 것이었다. 미국은 앞으로도 그 명분을 내세워 무수한 전쟁을 일으킬 나라라고 민제호는 말했다. 또한 그는 최근에 혁명에 성공한 소련을 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요컨대 영국과 프랑스의 시대는 기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미국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 소련을 민감하게 의식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므로 윌슨의 민족 자결은 영국 프랑스 일본의 식민지 국가들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윌슨의 민족 자결은 대전 패전국의 유럽 식민지와 중앙아시아 영토 분쟁을 해결하고 특히 그곳에 공산주의가 파고드는 것을 막기 위한 기만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민제호의 말이 끝나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러자 김태수가 말했다.

"굶어 죽으나 맞아 죽으나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민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 동지 말이 정확합니다. 이제껏 한국 독립운동의 이념은 사실상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예관 선생님, 이번에도 큰 희망은 버리시고 작은 희망, 즉 정부 수립의 계기만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십시오. 저희들은 나라 걱정보다 선생님의 절망이 더 두렵습니다."

신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새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신규식은 지령을 내렸다. 먼저 김태수와 민필호는 동제사 이사장 비서 자격으로 중국 내의 학교에 유학 간 청년들을 만나 거사 준비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대상은 주로 무관학교 학생들이 될 것이며 그들은 의외로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인원도 많다고 했다. 그는 국내 운동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무장 결집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음으로 백주원은 동경에 가서 유학생들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신해혁명도 동경 유학생들이 맨 먼저 나서서 된 것임을 생각할 때 백주원의 임무가 막중하다고 그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민제호는 당분간 상해에서 자신을 자문해 달라고 말했다.

호수 수면에 온통 물안개가 끼어 있었다. 그들은 나지막이 독립군가를 합창했다.

이 내 몸이 압록강을 건너올 때에
가슴에 뭉친 뜻 굳고 또 굳어
만주 벌판 북풍한설 몰아부쳐도
타오르는 분한 마음 꺼지지 않고
툰드라의 빙벽 틈에 끼어 죽어도
굳센 의지 우리 항쟁 못 막으리라

피에 주린 왜놈들은 뒤를 따르고
괘씸할사 마적떼는 앞길 막누나
황야에는 해가 지고 달이 저문데
아픈 다리 주린 창자 쉴 곳을 찾고
밤안개는 뿌옇게 앞길 흐리니
적막강산 우리 신세 서글프도다.

백주원이 동경으로 간 것은 장덕수보다 한 달이나 먼저였다. 신규식은 그녀에게 삼천 원이나 되는 자금을 은밀히 건넸다. 그녀는 긴 기차 여행 끝에 부산에 도착했다.

그녀는 서둘러 부관연락선에 올랐다.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과 동시에 개통된 부관연락선은 일제가 한반도로 들어오는 직항로였다. 여름이면 태풍이, 겨울에는 북서 계절풍이 어김없이 부는 바다는 언제나 파고가 높았다. 최소 이틀은 걸려야 하는 뱃길을 11시간 남짓으로 단축한 것은 조선을 소우하고 싶은  일본인들의 조급성이 반영된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배의 이름을 처음에는 '이키마루와 쓰시마마루'라고 지었다. 이키와 쓰시마는 모두 한일 간 해협에 있는 일본의 섬 이름이었다. 1910년 조선 병탄 작업을 완료한 일본은 새로 취항하는 배에 신라마루, 고려마루라고 이름 붙였다. 1922년 세 편을 더 증설하면서 그들은 경복마루, 덕수마루, 창경마루라고 지어 불렀다. 조선의 왕조와 왕궁 이름이 일본의 여객선 이름과 같아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야심은 머나먼 중국 대륙의 끝에까지 뻗쳐 있었다. 중국 글자 흥안(興安)을 일본인들은 '고오안'이라고 발음했다. 일본인들은 배에 '고오안마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오안은 중국의 흥안(싱안링)산맥에서 이름을 딴 것이었다.

흥안산맥은 중국 대륙의 북단을 흐르는 흑룡강 남쪽 연안에서 내몽고까지를 잇는 산맥이었다. 요컨대 고오안마루는 부산이 최종 기착지가 아니라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천산마루, 곤륜마루 등 대륙의 산맥 이름을 마구 붙인 군용선을 만들어 수많은 징병, 징용자들과 전략 물자를 실어 나르게 된다.

백주원은 바다가 조망되는 일등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해풍에 미역 냄새, 다시마 냄새 같은 것들이 실려 오고 있었다. 배 밑창 3등석에는 주로 조선인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등석을 이용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검은 선글라스에 흰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거의 전부인 일등석에서는 서구식 코디네이션이면 웬만한 게 통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일본인 중에서도 그녀에게 말을 붙이는 것은 직급은 꽤 높아 보이면서도 인상은 비굴해 보이는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아까부터 그녀의 옆모습을 힐끗거리던 일본 군인 하나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며 그녀 옆을 지나갔다. 얼마 후 그는 돌아오는 길에 다시 허리를 굽히며 그녀에게 물었다.

"황족이십니까?"

그녀는 미소를 띠며 전아한 일본식 어조로 일본 속담 하나를 말했다.

"알려고 하면 다칩니다."

일본 군인은 웃음을 띠며 다시 절도 있게 절하더니 제자리로 돌아갔다. 순간 백주원의 표정에서는 일본 군인에 대한 노골적인 불쾌감이 나타났다가 지워졌다. 그녀는 손등을 허벅지에 붙인 채 가운데 손가락에 힘을 줘 기역 자 꼴로 '팍큐'를 만들었다.

덧붙이는 글 | 암흑 같은 신민지 현실에 굴하지 않고 치열하게 제국주의에 도전한 인간들의 삶과 사랑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부관연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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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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