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화 <도화지>의 한 장면 왼쪽부터 수아(배우 이설아), 상원(배우 강은비), 소이(배우 소이).
영화 <도화지>의 한 장면왼쪽부터 수아(배우 이설아), 상원(배우 강은비), 소이(배우 소이).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꿈, 입시 지옥, 두발 단속, 학생주임 선생님….

대한민국 고등학생. 그 이름만 들어도 수 만가지 잔상들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운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체제에 던져진 그들은 나름의 꿈을 가지고 나름대로 헤쳐 나간다. 나름의 범위는 비좁다. 애초에 내가 만들고 내가 선택한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도화지>는 여자상업고등학교 밴드부 '매그놀리아' 맴버들의 꿈과 성장 이야기다. 음악에 이끌린 상원(강은비), 소이(소이), 수아(이설아)세 명의 밴드부 친구들에게 초점이 맞춰진 영화는 그들의 현실과 그 속에서의 선택을 뒤쫓는다. 

주어진 현실

TV에서 대학가요제를 본 밴드부 보컬 상원은 노래를 부르는 TV 속 인물에 자신을 덧씌운다. 방과 후에는 어머니 식당 일을 돕는 상원의 현실은 넉넉하지 않다. 대학가요제 참가의 꿈을 위해 상원은 친구들과 달리 대학입시를 택한다. 상원은 자신이 말하던 인생의 '갈림길'중 하나와 대면하게 된다.

영화의 배경은 90년대 초반이다. 실업계 여고생들의 수업 풍경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선생님은 "잊지 마라. 바로 내 옆에 친구도 경쟁자"라며 대기업 취직을 위한 노력을 다그친다. "대학? 아무도 안 갈걸? 우린 취업이 목표잖아"라고 말하는 소이는 정해진 선택을 받아들인다.

밴드부에서 베이스를 맡은 수아는 가족이 없다. 생계를 위해 나이트에서 연주하던 수아는 우연히 가게에 찾아 온 선생님에게 걸려 학교에서 잘리게 된다. 수아를 찾아 온 상원의 '다시 학교에 다닐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나에게 당장 필요한 건 졸업장이 아니라 당장의 생계비"라며 학교에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

선택에 따르는 책임은 자신의 몫

영화 <도화지> 의 한 장면 상원은 노래를 부르는 꿈을 놓지 않는다.
영화 <도화지> 의 한 장면상원은 노래를 부르는 꿈을 놓지 않는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대학에 떨어진 상원은 대학가요제 참가의 꿈을 포기하고 재수가 아닌 취직을 한다. 꿈을 포기하고, 취직을 하고, 학교를 그만두는 그들의 선택은 온전히 주어진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다. 비록 현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선택이더라도 영화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묻는다.

다른 고등학교 밴드부인 동윤을 동시에 좋아하게 된 상원과 소이의 갈등, 입시를 위해 졸업 공연을 앞둔 밴드부를 탈퇴한 상원을 "네가 원하는 건 네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몰아치는 소이. 둘의 갈등을 통해 선택에 따르는 고통과 아픔을 말하고 훗날의 갈등 해소를 통해 선택에 대한 책임을 깨닫는 성장을 얘기한다.

소이는 상원과 화해하며 말한다.

"누군가 받는 상처, 그로 인한 너의 고통도 다 네 몫이야."

영화는 또 대학 진학을 택한 상원을 통해 선택에 따르는 불안을 보여주고 대학에 합격해 계속해서 밴드부를 해나가는 동윤을 통해 대비되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놓지 않는 꿈

억압적 현실에 처한 고등학생과 불안한 미래 그리고 그들이 가진 꿈을 표현하는데 있어 영화는 무겁지 않다. 희망을 놓지 않고 꿈을 지켜내는 상원의 모습은 영화가 무겁지 않게 짐을 덜어준다. 취직을 결심한 상원은 "난 행복해"라고 외치며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가요제의 꿈을 갖게 해준 '언젠가는'을 대학가요제 무대가 아닌 다른 무대에서 부르는 상원의 모습을 통해 놓지 않는 꿈을 말한다.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동윤 역을 맡은 배우 김동윤은 영화제목 <도화지>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종이에 여러 가지 상상에 의한 많은 꿈을 펼치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도화지를 가지고 있다. 다방면의 자신의 꿈과 책임감을 하나의 종이에 펼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영화는 도화지에 펼쳐지는 꿈과 선택을 통해 희망을 말하면서 그 도화지의 크기는 주어진 현실 조건과 조응함을 담담하게 얘기한다. 학교가 학원이 되면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가진 작은 도화지는 더욱 작아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그곳에 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김선희 감독은 영화를 통해 "긍정적 꿈과 희망에 대한 얘기"를 말하려 했고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밴드부와 음악을 택한 이유는 "음악은 장거리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꿈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화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