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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다림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더디게 오던 봄었건만, 문 앞에 서서 '이리 오너라!' 하더니만 작은 바람에 꽃잎을 떨구며 '나 간다!' 하며 분주하게 봄뜰을 나선다.
 
봄처럼 순식간에 많은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은 없다. 긴 겨울의 산물이다. 고난의 순간을 이겨내면 어떤 일들이 전개되는지를 아주 짧은 단편영화의 필름처럼, 한 텃 한 컷 그렇게 지나가 버린다.
 
진달래 꽃봉오리를 보며 "저 꽃이 언제쯤 활짝 필까?" 했던 친구는 그 꽃이 지기 전에 세상과 이별을 했다. 그 친구를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날, 진달래가 화들짝 피어 슬픔에 슬픔을 더했다. 아직도, 이별을 실감할 수 없는데 이젠 봄꽃들도 하나 둘 내년에 보자며 이별을 고한다.
 
꽃비가 내린다. 청한 하늘 점점이 꽃비가 눈처럼 바람을 타고 유유히 하늘을 날다 흙의 품에 안긴다.
 
지난 겨울, 칼바람이 부는 날을 온몸으로 부디끼면서도 하얀 눈 소복소복 쌓인 날을 추억하듯 조팝나무가 피어나고 있다.
 
청보리 피어나는 계절에 조팝나무를 보며 밥달라 성화하는 자식새끼들, 하얀 쌀밥 고봉으로 퍼줄 날을 고대했을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 산나물 들나물 뜯어 죽을 쒀먹으며 '조금만 참아라, 배 터지게 먹여주마' 했을 터이니 조팝나무 피어날 무렵의 봄나물들이 고맙게만 느껴진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 가난한 만큼 꿈도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가난을 벗어나고도 남을 만큼의 성공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젠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추억의 들꽃들마냥 개천에서 용나는 일도 사라질 것 같다.
 
종달새를 닮은 꽃이라고들 한다. 작은 꽃들이 숲에서 옹기종기 피어나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몸짓이 영락없이 종달새를 닮았다고들 한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도 종달새를 직접 본 기억이 없다. 아니면, 그 새가 그 새 같아서 기억을 못할지도 모르겠다.
 
파랑새가 파랑색이 아니라 검은색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조금은 허망했다. 안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알지 못함이 차라리 좋을 때가 있는 것처럼, 신비 속에 감춰두고 살아가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 아닐까?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는 일인데,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때로는 그로 인해 아파하기도 하는 것이다.
 

괴불주머니는 '어린 아이의 노리개'로 색 헝겊에 솜을 넣어 수를 놓고 색끈을 달아준 것이다. 노리개는 '취미로 갖고 노는 물건' 혹은 '몸 치장을 위한 물건'을 말한다. 한복을 입은 아이들의 옷매무시가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치장을 해주기도 하고, 심심한 손을 달래주기도 하는 물건이 괴불주머니다.

 

요즘이야 괴불주머니 대신 아이들 손마다 휴대전화니 게임기가 들려져 있지만, 그 아이들의 꿈이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들의 꿈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다. 입시 혹은 시험 또는 성적…. 이런 것들이 아이들의 꿈을 야금야금 갉아 먹어가고 있는 것이다. 꿈을 빼앗기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아이들 손에 게임기나 휴대전화를 쥐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프다.

 

작은 이슬 한 방울이면 꽉 찰 것만 같은 괴불주머니. 작은 주머니 가득 채운다고 욕심이랄 것도 없을 듯하고, 아름다울 것만 같다.

 

사무실 뒤켠에 목련나무가 있다. 그런데 이미 다른 나무들은 다 피었는데 겨우 꽃봉오리를 올리더니만 꽃 떨구고 이파리를 내는 요즘에야 활짝 피었다.
 
게으름뱅이라고 했더니만 그들 다 가고 난 뒤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귀한 꽃으로 남았다. 저 꽃도 내일, 아니면 모레면 이별을 하겠지만 오늘 그들은 행복해서 활짝 웃는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겨우내 준비해서 피운 꽃인데 슬퍼할 틈이 없죠, 웃으며 살기도 바쁜데요. 웃어도 고작 사나흘인데 언제 슬퍼하고, 절망하겠어요."
 
그 봄에게 나는 이렇게 말을 건넨다.
 
"더디 온 봄, 가는 걸음은 왜 그리도 빠른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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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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