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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 31일 오후 경기도 용인 유상냉장 냉동창고에 보관중인 뼈를 발라내지 않은 채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
지난해 5월 31일 오후 경기도 용인 유상냉장 냉동창고에 보관중인 뼈를 발라내지 않은 채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시작부터가 이상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는 이미 수년간의 준비와 1년여의 마라톤 협상끝에 타결된 한미FTA로 완벽하게 매듭지어 있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끝난 협상에 대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조항이 있으니 다시 협상을 하자고 요구했고, 한국은 이를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협상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주고 받기의 메커니즘이다. 즉 하나를 주면 반대급부로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받는 것이 협상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이번 쇠고기협상에서 우리는 미국측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이것은 협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미국의 압박

우리가 이번 협상에 응한 유일한 명분은 미 의회의 FTA 비준 문제였다. 현재 미국의 유력한 대선 주자들과 많은 상하원 의원들이 한미FTA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미국은 그것을 압박카드로 이용하고 있다. 쇠고기를 더 광범위하게 개방하지 않으면 FTA를 비준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참 우스운 일이다. FTA가 미국이 한국에 내리는 선물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미 한미 양측은 1년여 간의 밀고 당기는 협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마무리 했다. 그것이 '타결'이다. 양측 공히 스스로에게 이것이 '남는 장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타결'이라는 결과물이 도출된 것이다. 설마 미국이 한국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밑지는 장사'임에도 불구하고 FTA를 맺어줬겠는가?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뼈있는 쇠고기의 수입을 막기 위해, 한국측은 무수히 많은 양보를 했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경쟁력있는 국내 기업의 미국 진출이 좌절되었을 수도 있고, 스크린쿼터가 반토막 났을 수도 있다. 물론 협상은 종합적인 것이라 쇠고기 수입이 어떤 부분의 희생을 담보로 논의됐는지는 명시하기 힘들다. 확실한 건, 이번 재협상은 단지 우리측의 이익만을 갉아먹는, 마이너스 협상이란 얘기다.

 17일 이명박 대통령의 만찬 테이블에 오른 '몬테나'산 쇠고기 요리.
17일 이명박 대통령의 만찬 테이블에 오른 '몬테나'산 쇠고기 요리. ⓒ .

'니블링'에 걸려버린 한국

협상의 기술 중에 '니블링(nibbling)'이란 것이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갉아먹기' 정도가 될 것이다. 협상이 끝나가는 시점에 작은 조건 하나를 더 제시하면, 이미 협상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긴장이 풀려있는 상대방은 얼떨결에 그 조건을 수용해 버린다는 것이 니블링의 기본 개념이다.

이번 쇠고기 재협상은 미국측의 전형적인 '니블링' 기술이다. 한국은 이 기초적인 기술에 보기 좋게 걸려버렸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번 것은 '갉아먹기' 정도가 아니라, '생살을 떼어내는 아픔'이라는 것과, 한국이 먼저 FTA 비준에 발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니블링을 걸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었다는 것이다.

무언가 얻어내라

이번 쇠고기 재협상은 분명 '밑지는 장사'이다. 그렇다고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내일부터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 양국의 정상회담이 있을 예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협상결과를 이용해 미국측으로부터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 그것이 '조공외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축산업자 뿐만 아니라 쇠고기를 막아내기 위해 희생했던 많은 분야 종사자들의 손해를 만회해 주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blog.daum.net/ratkilli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쇠고기#광우병#한미FTA#협상#니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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