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전쟁 당시 국제관계 영화 한 장면처럼 그려져
2차 세계대전 후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연합이 창설되고 한참이 지나 전쟁이 없을 것 같은 21세기가 도래하였지만, 전쟁의 참화는 멈추지 않고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4명의 이라크인 중 1명은 가족 중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전히 전쟁은 내 이웃의 일상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2007년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권장도서 <소년병, 평화의 길을 열다>는 직접 전쟁을 경험해 본 적 있는 저자가 전쟁의 참상과 전쟁이 일어나는 복합적인 이유를 분석해서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를 자세히 알아야 전쟁을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쟁은 군인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비롯되며, 국가와 국가 간의 억압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경제규모가 팽창하면 자국 내에서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라도 부를 얻어 오고, 이렇게 생긴 부의 불균형으로 인해 국가 간의 증오심이 격해져서 전쟁으로 치닫는 양상이 전쟁이 일어나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인간은 누구나 투쟁본능이 있지만, 그것을 억제하는 다른 본능도 있기 마련이다. 만약 상대방의 것을 빼앗고 싶은 욕망이 상대방과 타협하려는 마음을 누른다면 당연히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어렵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쉽고 재밌으면서도, 전쟁의 핵심을 정확히 찌르고 있다.
1930년에 태어나 태평양전쟁에 소년병으로 참전한 경험이 있는 저자 사토 다다오는 영화 비평을 주로 하며 교육과 대중문화 등 폭넓은 범위에서 평론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1990년부터 '아시아 포커스 후쿠오카 영화제'의 제너럴 디렉터 직을 맡고 있으며, 한국영화에 대한 평론 기고, 소개, 연구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영화와 임권택>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역사학자 한홍구 씨는 해제에서 "(전쟁에 대해서)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핵심을 찌르는데,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복잡한 사건의 핵심에 다가서게 된다"고 소개했다. 저자가 영화인이라서 그런지 당시 국제 관계라는 복잡한 상황을 하나의 '컷(cut)'에 담듯 명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전달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그러한 특징이 살아날 수 있도록 책의 내용을 토대로 가상의 인터뷰를 꾸며보았다.
투쟁본능 있지만, 그것을 억제하는 다른 본능도 있기 마련
- 옛날에는 대규모의 전쟁이나 살육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하던데, 문명이 발전할수록 전쟁과 살육이 대규모로 확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들이 만약 모든 싸움을 맨주먹만으로 했더라면 싸움이 잔혹해지기 전에 적당한 방법으로 일단락 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물에게는 투쟁 본능이 있을 수 있지만, 살을 부딪치면서 싸우는 과정을 통해서 그것을 억누를 수 있는 또 하나의 본능도 발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칼이나 총, 대포, 폭탄, 독가스, 생화학 무기, 원자폭탄 등의 도구를 발달시켜 감에 따라 고통 없이 손쉽게 상대방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싸움을 억제하는 본능이 약해지는 것이다. 맨주먹으로 상대와 싸움을 벌이거나 상대를 죽이려면 상당한 힘이 필요하고 자신에게도 심한 고통이 따르는 데 비해 무기가 발달함에 따라 멀리서 단추 하나를 누르는 것만으로 수천,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경제사정과 관계가 매우 깊은 듯하다.
"경제는 국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불만이 쌓이게 된다. 자국 안에서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세계는 점차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이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한 국가의 이익을 위해 다른 국가의 이익을 빼앗는다면, 이익을 빼앗기는 국가의 국민들은 큰 고통을 겪을 것이며 불만이 높아 간다. 당연히 이익을 빼앗긴 국가와 이를 빼앗은 국가 사이에 증오심이 쌓이면서 분쟁이나 크게는 전쟁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 정치인이 군인을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민주주의와 전쟁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해 달라.
"손자병법의 손무나 전쟁론의 클라우제비츠 같은 전쟁전문가들은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 싸움의 가장 큰 기술이라고 했다. 즉 정치와 외교를 통해 타협하는 것이 우선이며, 대화가 통하지 않거나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전쟁이 필요하다. 때문에 군인은 정치인의 명령을 따라야 하며 정치인의 자리에 서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군인은 전쟁을 더 키우거나, 국민들에게 공포정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으로 파견된 사령관은 멋대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전쟁을 키우기 쉽다. 중국을 침략하고 미국을 침공해 2차세계대전을 키운 일본은 군인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정치인이 군인을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군국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전쟁을 키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고 갔다. 결국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않은 환경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 터키-그리스, 방글라데시-파키스탄-인도, 영국-아일랜드-북아일랜드, 미국의 흑인-백인 등 책 속에서는 여러가지 분쟁의 유형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와 해결책을 제시하자면?
"국가 내의 분쟁이나 국가 간의 분쟁은 대체로 가진 자나 힘센 자들이 약한 자들을 억누르려고 하기 때문에 불만이 증폭돼 생기는 것이다. 한 공간 안에 살고 있다면 분명히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힘도 다르기 마련이다. 특히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에게 아무것도 주려고 하지 않는다면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못 가진 자들의 불만을 이해하고 불만을 최소화하고 그들이 견딜 수 있는 정도까지 제안을 하고 양측에서 일정한 양보안을 제시해 타협을 해야만 분쟁의 뿌리를 없앨 수 있다."
- 책에서 소개한 토착 원주민과 야생 동물의 분쟁 사례가 흥미로웠다. 분쟁이 없는 국가관계가 되는 방식에 대해서 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가?
"원주민의 분쟁 해결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점을 보면 분쟁이 일어났을 때 구성원 전원이 참석해서 토론을 하고 합의점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험이 많은 장로들은 현명한 대안을 제시해 분쟁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서로 만족하고 양보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대체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무시할 때 분쟁이 커지는 것이다. 만약 어떤 분쟁이든 서로 테이블에 앉아서 협의할 자세만 갖춰져 있다면 분쟁의 상당부분은 테이블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
동물들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하는 ‘최고의 원칙’이 있다.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가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오랜 세월 동안 대결을 펼치면서 익혀온 본능이다. 한쪽의 희생이 많아지면 역시 다른 쪽의 희생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 원칙을 인간의 세계에 적용하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대규모 살상이나 살인은 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방법이 서로에게 고통만 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자살폭탄테러나 핵무기 위협 등의 행동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 전쟁을 하려는 본능이 있다면, 당연히 전쟁을 하지 않으려는 본능도 있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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