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짝 마른 장작에 불씨를 던진 형국이다. '혁신도시'로 만들어진 불쏘시개가 주범이다. 거기에다 기름까지 부어놨으니 오죽 잘 타겠는가. 감사원과 <조선일보>가 불을 지폈다. 이들이 던진 불씨는 전국 곳곳으로 번져 활활 잘도 타들어 갔다.
불씨는 대선과 총선과정에서 사분오열됐던 지방민심을 하나로 뭉쳐놓은 듯하다. 민감한 혁신도시를 건드린 때문이다. 매서운 불씨가 어느 방향으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다. 지역의 불안 심리를 자극한 것은 지난 15일. 정부가 혁신도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부터다.
총대를 멘 곳은 감사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재검토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혁신도시의 경제효과가 3배나 부풀려졌다는 감사원 내부 자료가 흘러나온 게 도화선이 됐다. '코드 감사' 냄새가 짙게 풍긴다는 비판을 살만도 하다.
'코드 감사', 보수신문들에겐 더 없이 좋은 재료 감사원의 소스는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신문들에겐 더 없이 좋은 재료로 쓰였다. 포문을 먼저 열기 시작한 곳은 <조선일보>였다. <조선>은 15일 감사원 감사 보고서를 근거로 '노(盧)정부, 혁신도시 효과 3배 부풀려'의 기사에서 "노무현 정부가 혁신도시 사업을 밀어붙이기 위해 175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효과를 크게 부풀렸다"고 불씨를 지폈다.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조선>은 바로 이 점을 노린 듯하다. 16일 사설 '혁신도시 밀어붙이려 가짜 보고서까지 만들었다'에서 한껏 기름을 부었다.
"노무현 정부가 혁신도시 사업을 밀어붙이기 위해 175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효과를 1조3000억원에서 4조원으로 세 배 넘게 부풀렸다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고 전제했다. 사설 말미에선 "이제라도 수도권과 지방,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혁신도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지난 정권이 혁신도시의 경제효과를 조작한 진상도 철저히 파헤치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부추겼다.
'지역 균형발전'이란 당초 취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더니 17일엔 아예 기름을 통째로 부었다. '이번에도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할 텐가' 의 사설에서다. "공무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란 표현에는 '그 누군가가 '사주'했음이 분명하다'는 암묵적 의미를 함축했다.
"분명 시킨 윗사람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런 대(對)국민 사기극의 손발이 돼 나선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들이냐는 궁금증은 남는다"고 했다. 분명 잘못된 사업임을 역설적으로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시기에 못다 퍼부은 화살을 이번 기회에 모두 소진시키기로 작정한 듯하다.
보수신문의 해괴한 각개약진 논리, 불씨 더 키워 <중앙일보>는 한 술 더 떴다. 17일 사설에서다. '혁신도시 대신 지방경제 살릴 방안은'에서 <중앙>은 "무엇보다 지방 발전에 대한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고립된 섬처럼 혁신도시 몇 곳만 선별적으로 개발할 게 아니라 지역 전체의 경제가 고루 발전할 수 있는 개발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이 사설은 "그러자면 허울뿐인 공공기관 대신 지역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산업과 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럴듯하게 제시했다.
"지방도 이제 혁신도시의 허상을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의 시혜에 매달릴 게 아니라 지방 스스로 발전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중앙>은 사설 말미에서 해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맥락을 자세히 살펴보면 각개약진하자는 뜻이 내포돼 있다. 각개약진이 지역균형발전의 가장 거대한 암초였음을 모르는 듯하다.
<동아>도 18일 사설 '혁신도시 해법 찾기, 생산적 여야관계의 시험대다'란 사설에서 거들었다. "효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만 안길 사업을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는 이유만으로 강행하는 것이야말로 국력의 낭비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불쏘시개에 은근히 기름을 부었다.
<동아>는 이 사설에서 "인화성이 큰 사안이라 일단 정치쟁점화하면 쉽게 진화하기 힘들다"며 "정부도 이 문제를 '정권적 차원'에서 다룬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정부와 보수신문들의 이러한 혁신도시 불장난은 금세 지역으로 활활 번졌다. 부글부글 끓는 지역 민심을 지역 일간지 사설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변했다.
부산․경남: "지역 균형발전이 그렇게 배 아픈가?"
부산․경남지역의 총선 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혁신도시 문제가 불거지자마자 즉각 도출됐다. <국제신문>의 17일 사설 제목에서 묻어난다. '지역 균형발전이 그렇게 배가 아픈가'란 제목이 수상쩍다.
이 사설은 "새 정부가 균형발전을 전 정권의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인 듯 몰아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자기부정도 없다"며 "혁신도시 추진의 근거가 된 '국가균형발전법'이 2005년 여야합의로 통과됐고 17대 대선 때는 이제는 집권당이 된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가 '분권과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국민협약서'에 서명까지 했다"고 못 박았다.
사설은 점점 강도를 더했다. "대선후보 시절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인수위도 몇 차례고 변함없는 균형발전 정책을 공언했다"는 사설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지방을 살리려는 불씨를 정권의 향배에 따라 지우고 줄인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톤을 높였다. 균형발전을 흔드는 의도가 위험하고 불순하다는 것이다. 사설 말미에선 "균형발전을 후퇴시킬 수 있는 정책의 시도는 지방민의 집단 저항만 부를 뿐"이라고 경고했다.
<경남도민일보>도 17일 사설 '지방이 그렇게 만만한가'에서 중앙에서 번져오는 불길을 향해 맞불을 놓았다. 이 사설은 "지방발전은 돈 몇 푼 지원받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기틀이 다져져야 한다. 그 실마리가 혁신도시다. 그런데 정권 교체했다고 뒤집을 궁리부터 하다니 지방이 그렇게 만만한가. 이럴 때일수록 지자체 수장들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했다. 경계태세를 늦추지 말자는 의도가 다분히 배어 있다.
그러더니 18일 사설 '일보후퇴의 저의가 의심스럽다'에서 <경남도민일보>는 정부와 한나라당의 '복선'을 조심하자고 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한발 후퇴는 따라서 일단 지방여론을 수습하는데 시간을 벌고 그다음 밀어붙이겠다는 복선을 까는 듯하다"며 사설은 "팽배한 지방의 불만을 치유는 못 해줄망정 왜 눈물을 짜내려 하는가. 한번 결정된 정책은 정부의 것도, 집권당의 것도 아닌 국민 모두의 것임을 통찰해야 제대로 민심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대구․경북: "누가 혁신도시를 흔느는가?, 대통령 나서야"혁신도시 불씨는 순식간에 대구․경북으로도 번졌다. <영남일보> 17일 사설 '누가 혁신도시를 흔드는가'에서는 '서울 공화국의 횡포'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 사설은 "총선후 불쑥 전면 재검토를 들고 나온 저의(底意)가 의심스럽다. 지방으로선 어처구니없는 정책수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사업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면 누가 정부를 믿고 따르겠는가. 지방은 안중에도 없는 '서울공화국'횡포라 할 만하다"고 민심을 전했다.
사설은 말미에서 "지방사업은 장기적 투자이자, 국토의 시·공간적 유지 관리라는 인프라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며 "독일이 통일 후 동독지역에 1천800조원을 퍼붓고 난 뒤에야 동독경제가 살아났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며 타일렀다.
<매일신문>은 17일 사설 '도대체 정부의 혁신도시 입장은 뭔가'에서 이명박 정부에 책임을 물었다. "대체 어느 게 맞는 말이고 어느 게 잘못된 것인지 혼란스럽다"는 사설은 "미국을 방문 중이긴 하지만, 사안이 중차대한 만큼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 혼란을 정리해 주는 게 맞겠다"고 점잖게 지적했다.
호남: "혁신도시 본래 계획대로 조용히 추진하라"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정치적 섬'으로 고립된 호남지역 민심은 혁신도시 재검토 논란이 불거지면서 더욱 부글부글 끓고 있다. 지역신문 사설과 1면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민심이 묻어난다.
<무등일보>는 16일 사설 '지방 혁신도시 본래 계획대로 추진하라'에서 정부를 타일렀다. 사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누차 강조해 왔지만 혁신도시 건설이 정권교체의 희생양이 돼서는 결코 안 된다"며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혁신도시를 업그레이드 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업적으로 만들 수 있는 전향적인 방안을 마련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토균형발전에 시금석이 될 혁신도시 건설이 만에 하나 수정되거나 좌초된다면 사회적 혼란은 물론 정책의 신뢰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며,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 또한 천문학적 수치가 될 것임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더니 18일에는 강도를 높였다. 1면 '국가정책 일관성 유지를'의 현지 르포기사에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참여정부의 핵심사업이었던 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변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지역민들은 우려와 걱정을 뛰어넘어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기사는 전했다.
한국전력공사 이전 문제를 놓고 신경이 곤두선 곳이다. <전남일보>는 그래서 인지 18일 '새정부, 균발위 보고서 왜곡'이란 1면 기사에서 "현 정부 일각에서 참여정부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사업인 혁신도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기 위해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연구보고서를 왜곡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또 "정부는 혁신도시 건설사업 궤도 수정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혁신도시 '건설사업 재검토는 없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지난 정권의 핵심 사업을 부정하기 위한 논리를 짜맞춰 청와대에 보고해 파장을 일으킨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남일보> 이 기사에서 "국가균형발전위 이민원 위원장은 17일 균형위 보고서 말미에 '정부 △△△ 보고서를 보면 혁신도시 조성사업의 경제적 효과가 4조원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소개했을 뿐인데 마치 지난 정부가 혁신도시의 경제적 효과가 4조원으로 과대 포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밝혔다"는 내용을 무게 있게 다뤘다.
분노의 불씨는 전북도 예외가 아니다. <전북도민일보>는 18일 사설 '혁신도시 수정론 있을 수 없는 일'에서 쏘아 붙였다. "정부는 이미 보상한 토지에 대해서는 산업용지로 환용하겠다고 하는데 혁신도시의 취지는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는 인구를 분산하고 정부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함으로써 지역균형발전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라며 "이것마저 정부가 반대한다면 결국 우리의 양극화현상은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대전․충청: "행정도시 건설 한창인데... 눈 가리고 아웅 말라"행정도시 건설이 한창인 대전․충청지역은 좀처럼 노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전일보>는 18일 사설 '행정도시 축소 변경론 왜 자꾸 나오나'에서 혁신도시 불씨가 또 다른 방향으로 튀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 사설은 "새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혁신·기업도시에 대한 재검토를 하면서 행정중심복합도시까지 변경·축소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며 "혁신도시 논란은 정부가 여론 떠보기 식으로 불쑥 내밀면서 시작됐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지방의 자생력을 키우고 국가균형발전을 추구하고자 하는 정책이 착근도 하기 전에 뿌리 째 흔들리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15일자 사설에도 <대전>은 '수도권 위주 정부정책 지방피폐 부추긴다'를 통해 "지금까지 잘못된 국가정책에 의해 수도권이 공룡과도 같은 경쟁력을 갖춘 상태에서 게임 상대가 안 되는 지방을 같은 조건에서 경쟁시키려 한다면 결코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충청투데이>는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일 사설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표명 나와야'에서다. 이 사설은 "이젠 정부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얼버무릴 때가 아니다"며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기본입장부터 확고하게 밝히는 게 순서"라고 했다.
이날 1면 "행정도시 공사 한창인데 축소 웬말"이란 제목의 현장 르포기사에서도 <충청투데이>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행정중심복합도시 축소설·변경설이 급속히 퍼지고 있는 가운데 행정도시 예정지역의 주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결말이 날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며 불안한 현지 표정을 스케치해 보도했다.
강원․제주: "정책태풍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강원지역도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강원일보> 18일 사설 '수도권 정책에 지방은 들러리인가?'에서 묻어난다. 이 사설은 "국가균형발전정책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며 "새 정부가 국가 균형발전을 이끌 핵심 사업들을 대폭 수정하자 지방기업들이 벌써 투자를 망설이고 기회를 보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강원도민일보>도 하루 앞선 17일 사설 '혁신도시 계획 예정대로 추진하라'에서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가 경영자의 철학에 따라 또 시대 상황에 따라 국가 계획의 지향점이 변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혁신도시 정책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부정적 시각은 지나친 바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제주지역도 혁신도시 문제가 연일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제민일보>는 17일 사설 '지방입장에서 혁신도시 보라'에서 따끔한 충고를 했다. "혁신도시사업은 지역균형개발에 바탕을 두고 있다"며 "균형개발 자체를 뿌리 채 흔드는 소위 '정책태풍'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했다.
<한라일보>는 18일자 1면 르포기사를 통해 불안한 주민들의 반응을 담았다. '삶의 터전 마저 내줬는데…'의 기사에서 <한라>는 혁신도시에 대한 정부방침이 오락가락하는 통에 주민불안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라>는 또한 사설 '혁신도시 정책 재검토 문제 있다'에서도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기 때문이 아니라면 새 정부가 전면 재검토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서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수도권만이 아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살도록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고 타일렀다.
균형발전은 지방에 베푸는 시혜가 아니거늘...지역민심이 이처럼 사나워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00대 기업 본사의 91%, 벤처기업의 71%, 공공기관의 85%, 금융기관의 67%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수도권의 비정상적인 비대화는 이 같은 인프라가 자기증식을 거듭하면서 지방의 돈과 기업, 인재를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런 판에 지방의 쇠퇴를 비전이나 전략의 부재로 치부하고, 균형발전을 지방에 베푸는 시혜처럼 여기는 이명박 정부와 서울의 보수신문들의 착각과 오만이 더욱 불씨를 키운 것이다. 지방에는 고기와 음식, 그리고 나무들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도 살고 있음을 왜 앞서 생각하지 못할까? 답답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