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일 아침 경남 함안 우시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잔뜩 뿔이나 있었다. 이곳 우시장은 닷새마다 열리는데, 지난 18일 '미국 쇠고기 협상' 이후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어느 정도 경매가 성사될지, 값은 어느 선에서 형성될지 궁금했는데 역시나 실망 그 자체였다.

 

함안축산업협동조합 관계자가 이날 오전 8시30분경 경매 결과를 집계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큰일이네요. 오늘은 절반 정도만 거래가 되었네요. 파는 사람은 값이 너무 떨어져서 팔지 않으려 하고, 사는 사람도 불안하니까 안 사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날 송아지 등 70두가 나왔는데 39두만 새 주인을 찾아갔다. 닷새 전과 열흘 전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이전에는 경매에 나온 소는 대부분 거래가 됐다. 우시장이 파할 즈음 몰고 왔던 송아지를 트럭에 다시 싣는 김춘식(59)씨는 "에이, 이놈아 우짜면 좋겠노"라며 고삐를 세게 당겼다.

 

조합 사무실에 들어선 60대는 "한번 장 사이에 100만원이나 손해봤네"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이명박이 미국 가서 쇠고기 협상하고 난 뒤 바로 떨어졌다 아이가. 농민만 죽어라는 거지"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장날에 산 소와 이날 값을 비교해 보니 100만원 정도 차이가 났다는 것.

 

"매스컴 영향이 큰 기라. 뼈 있는 쇠고기까지 들어온다고 하니까 하루아침에 소값 내리는 거 아니가. 엊그제 방송 나온 다음날부터 바로 내렸지. 매스컴이 겁나네."

 

그는 '미 쇠고기 협상' 소식을 전한 언론에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생후 6개월 암소, 닷새전 22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60만원선

 

소 값은 뚝 떨어졌다. 생후 6개월 된 암소는 이날 160만원선에서 거래됐다. 닷새 전에는 215~220만원선이었다. 중개인 홍순만씨는 "이 정도로 큰 폭으로 떨어지기는 처음인 것 같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가서 쇠고기 협상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건데, 방송에 한번 탔다 하면 바로 소값은 내린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사료값은 두새달 사이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소값은 대폭 내린다며 아우성이었다. 사료는 1포대에 3~4개월 전에 비해 2000원 가량 올랐다는 것. 사료는 세계 곡물가 인상 영향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축협 관계자는 "사료는 지난해 11월에 올랐고, 올해 1월과 3월에도 올랐다"면서 "5월이 되면 또 오른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의령에서 80두를 키운다고 한 정태원(62)씨는 "대통령이 미국 가서 뼈 있는 쇠고기까지 수입한다고 하니까 이렇게 된 거 아니냐"면서 "정부에서 사료값을 협조해 주지 않으면 이대로는 소 키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귀퉁이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10여명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에게 물었더니 서로 앞 다투어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데모해야 할 판이다. 다 죽게 되었다. 소값이 똥값 된 거 아니냐."

"약한 게 농민이다. 기업만 좋아진다는데, 농민은 죽는다."

"경제 살리겠다더니, 농민 다 죽이는 게 경제살리기인가."

"늙은 우리는 경비도 못 서고, 이제는 뭘 하며 먹고 살아야 하나."

 

자연스럽게 지난 대선 이야기가 나왔다. 60대가 "경제 살린다고 해서 찍어주었다 아이가. 그런데 이게 뭐꼬"라고 하자 옆에 있던 농민은 "나이 좀 든 사람들은 이명박이 다 찍어주었다 아이가. 젊은 사람들은 권영길이 찍었는갑대. 젊은 사람들 말이 맞는기라"라며 말을 받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50대는 "경제 살린다고 해서 찍어주었는데 말이다. 에이"라며 들고 있던 담배 꽁초를 모닥불에 뿌리치며 화풀이를 했다. "노무현 때가 좋았지"라는 말도 옆에서 나왔다.

 

한 농민은 "지난 주 바로 이 장터에서 새끼 밴 소를 360만원에 샀어요. 그런데 오늘 와서 보니 230만원에 거래되네요. 이거 환장하는 거 아닝교. 100만원 넘게 떨어진 겁니다"라고 말했다. "사료값은 둘째 치고 원금도 못 건지게 된 겁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부강한 나라는 농촌부터 잘 산다더라"

 

진주에서 소를 키우는 남편을 따라온 김덕순(49)씨는 "부강한 나라는 농촌부터 잘 산다고 하대요. 농촌 죽이고 경제 살 수 있는 줄 아세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시골이 죽는데 경제가 살겠능교"라고 말했다.

 

또 다른 농민은 "이명박이 사업가 출신에다 청년시절 고생했다고 해서 대통령 되면 어려운 사람 사정 잘 알 것으로 보고 찍어 주었다. 그런데 이래놓으면 어려운 사람들 어떻게 살라고"라고 말했다.

 

함안에서 소 7마리를 키운다고 한 이상준(68)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돌아와서 무슨 대책을 내놓을지 모르지만, 이대로는 안된다"고 말했다. 모닥불이 거의 꺼져갈 즈음 데모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데모하는 수밖에 없는 거지."

"집집마다 소 한 마리씩 내서 서울로 몰고 가 한복판에 풀어놓아버리는 거지.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화가 풀리지 않는데 어째."

 

그러자 "데모한다고 다 해결 나는가"라는 말도 나왔다. 이아무개(67)씨는 "데모 소리 하지 마라. 경찰이 와서 '당신 무슨 소리 하고 있어'라고 한 마디만 하면 농민들 꼼짝 못할 거 아니냐"면서 "농민만 죽어나는 거지 뭐"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돌아와서 무슨 대책을 내놓을지 한번 지켜보죠?"

"대책은 무슨 대책이 있겠능교."

 

그래도 농민들은 소를 키울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김상철(52․의령)씨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농촌에서 할 게 없잖아요. 걱정이야 태산이지만 우째우째 하더라도 소는 키워야죠"라고 말했다.

 

정부에서 그동안 내놓은 정책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축산농가에 대해 빌려주는 저리자금에 대해, 한 농민은 "이자가 없는 게 아니잖아. 정부가 농민을 상대로 돈 장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지"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찾지 않던 '송아지 생산안정제' 거론하는 농민도 생겨 

 

요즘 들어 '송아지 생산안정제'를 거론하는 농민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제도는 소값 하락에 따른 번식농가의 부담을 완화함으로써 생산기반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00년에 도입된 제도다. 송아지 값이 155만원 미만으로 거래될 경우 차액을 정부에서 보전해 주는 제도. 지난해 기준 가격이 130만원에서 155만원으로 인상됐다. 가령 송아지 1마리를 140만원에 팔았다면 15만원은 정부에서 주는 제도다.

 

함안축협 관계자는 "그 제도가 시행된 지 8년째 되었지만 지금까지 그 아래로 거래된 적이 없어 '송아지안정제'가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면서 "그런데 소값이 대폭 내려가다보니 그 제도를 이야기 하는 농민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그런 제도를 만들어 놓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지시사항이 아직 없다. 그러다 보니 농민이 물어도 대답을 해줄 수 없어 우리도 답답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송아지 3마리를 트럭에 싣고 우시장을 빠져나가던 한 농민이 말했다.

 

"앞으로 여기에 얼마나 자주 나올지 모르겠네요. 소를 키우면 자주 나올 것이고 안 키우면 못 오는 거잖아요."


태그:#쇠고기 수입, #우시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