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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추꽃과 벚꽃
배추꽃과 벚꽃 ⓒ 송성영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핀 것이 아닙니다. 그냥 배추꽃, 무우꽃, 냉이꽃. 푸른 풀밭에 이름 모를 온갖 풀꽃들이 피었습니다. 거기 둠벙가에는 벚꽃이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하지만 야무지게 지었다고 생각했던 대나무 비닐하우스는 3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른 봄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새싹을 키웠내던 비닐하우스였습니다. 비닐 하우스를 지탱해 주던 대나무는 쪼개지고 갈라지고 썩어 나자빠지고 뒤틀리고 쓰러졌습니다. 바람이 불면 비닐은 찢겨지고 훠이훠이 미친 여자 치맛자락처럼 나부낍니다.

 대나무 비닐하우스와 벚꽃
대나무 비닐하우스와 벚꽃 ⓒ 송성영

왜 그냥 보고만 있냐구요? 자연농법으로 지어 먹는 밭, 수억 수조의 생명들이 살아있는 이 밭 위로 호남고속철도 지나갈 거라고 합니다. 온갖 생명들을 사정없이 깔아 뭉개 짓이기고 말입니다. 아마 내년 말쯤에 공사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올해 농사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봄배추, 상추, 아욱, 쑥갓, 강낭콩, 오이, 시금치 등등을 심었습니다. 지난 가을에 심었던 배추며 무우는 화사하게 꽃이 피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둠벙으로 가봅니다. 이상하게도 올해 둠벙에는 개구리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매년 이맘 때가 되면 둠벙 가득 알에서 나온 올챙이들로 꼬물꼬물 했는데 이상한 일입니다. 갑자기 무더운 여름 날씨가 되질 않나. 뭔가 이상하질 않습니까? 하기야 이상한 일이 어디 한해 두해 일입니까? 그래도 올해는 특이나 더 이상합니다. 매년 둠벙가에 알을 낳던 개구리가 왜 안보이는 것일까요?

 둠벙가의 벚꽃
둠벙가의 벚꽃 ⓒ 송성영

벚꽃은 그래도 화사합니다. 팝콘을 튀겨 놓은 거 같죠?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이 벚꽃 역시 작년보다 일 주일에서 열흘 정도 빨리 피었답니다. 이상하질 않습니까?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다 그렇고 그렇다고요?

갑자기  동영상 하나가 떠오릅니다.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 아마 그런 제목의 동영상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투명한 유리병에 들어가 있는 개구리가 있습니다. 유리병을 서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뜨거운 물에 죽을 때까지 그대로 가만히 있답니다. 개구리가 죽는 것도 그냥 그렇고 그런 일일까요? 무서운 실험입니다. 개구리를 실험하는 우리 역시 유리병 속의 개구리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둠벙속에 핀 벚꽃
둠벙속에 핀 벚꽃 ⓒ 송성영

둠벙은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물 색깔이 다르고 물 냄새도 다릅니다. 요즘 둠벙은 사진과 다르게 엄청 더럽고 추하게 보입니다. 며칠째 비가 오지 않아 물이 탁해졌기 때문입니다.  가을 내내 떨어진 낙엽들이 겨울 내내 썩어 있기 때문입니다. 둠벙 속 생물들에게는 아주 요긴한 양식이었겠지만 어째튼 보기에 좋지는 않습니다. 간혹 썩은 냄새도 납니다.

하지만 하늘을 담고 있는 둠벙은 그저 보기에는 좋습니다. 하늘뿐만아니라 벚꽃나무도 담아냅니다. 아주 근사합니다. 화사하게 핀 벚꽃나무를 담고 있는 둠벙 사진을 보십시요. 무슨 작품 사진처럼 보이질 않습니까?  

 둠벙속 벚꽃
둠벙속 벚꽃 ⓒ 송성영

벚꽃을 담고 있는 둠벙을 어찌 더럽고 추하다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아름답지요. 하늘빛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늘빛 속에 푹 빠져 둠벙을 들여다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게 내 모습인지도 모른다. 속은 썩어 가고 있는데 겉모습은 멀쩡한 나의 진면목인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전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강의하면서 끊임없이 되물어 봅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과연 얼마나 지켜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이 늘 부끄럽습니다.

그랬습니다. 하늘빛에 가려진 둠벙 속은 그럴듯한 말과 언어로 치장하고 있는 내 모습이나 다름없어 보였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입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참회'라는 양치질을 하지 않으면 그 냄새는 내내 지워지지 않습니다.

실천하지 않는 온갖 말과 언어들, 죽어 있는 말과 언어들에서는 썩은 냄새가 나기 마련입니다. 욕망을 먹고 사는 모든 것들에게는 썩은 냄새가 납니다. 그 냄새는 둠벙에서 올챙이가 사라지고 벚꽃이 빨리 피고 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주절거립니다. 스스로를 위로할 만한 한 장의 사진이 더 남아 있거든요. 둠벙 가득 떨구어진 꽃잎 사진입니다. 일주일 만에 벚꽃이 다 떨어지더군요. 아쉬웠습니다. 누군가 그리운 님 보여주지 못해 서글픈 꽃잎들처럼, 서글펐습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 한구석이 편했습니다. 썩어가는 둠벙에 큼직한 꽃 한송이가 현기증처럼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구정물에서 피어오르는 연꽃처럼 말입니다. 심청이 환생할 만큼이나 큰 연꽃입니다. 하늘을 담고 있던 둠벙이었으니 하늘꽃입니다.

 연못 꽃잎
연못 꽃잎 ⓒ 송성영

<참회>

둠벙에는
더이상 올챙이 보이지 않고
급하게 핀 산벚꽃
그새 
홀라당 지었네요.

눈처럼 휘휘 날리다
둠벙 가득 
꽃잎 내려앉았네요.

지난 가을 부터 낙엽 썩이던 둠벙 
꽃 잎 가득 뒤덮혀
큼직한 하늘꽃
한송이 피어놓았네요.

하루하루,
한 생을 마감하는 순간,
참회하듯
하늘꽃 한송이
피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둠벙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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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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