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살인을 했다면 그 행동에는 어느 정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원한이나 질투와 같은 그런 이유 말이다. 하지만 <나폴레옹 놀이>의 저명한 변호사가 사람을 죽인 것은 달랐다. 아무리 밝히려 해도 이유가 없다. 살인자와 피해자가 무슨 연관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것도 아니다. 살인자는 죽인 뒤에 피해자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보기도 했다. 도주가 아니라 간호를 한다. 도대체 이 행동에는 무슨 사연이 있던 것일까?
<나폴레옹 놀이>는 저명한 변호사가 붙잡힌 뒤에 편지로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정확히는 자신의 변호사에게 보내는 것이다. 의문의 살인사건을 벌인, 그리하여 검찰과 언론을 답답하게 만들고 여론을 이상하게 만든 '나'는 무슨 고백을 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놀이'다. <나폴레옹 놀이>의 '나'는 살면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곤 했는데 그것은 모두 일종의 놀이였다. 걸리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위험한 것이었지만 그만큼의 스릴을 즐길 수 있었기에 놀이를 멈추지 않는다. 그냥 멈추지 않을 뿐인가? 아니다. 똑같은 자극도 계속되면 지루해지는 법이다. 놀이도 마찬가지다. 자칭 '놀이꾼'인 '나'는 좀 더 강도 높은 것을 찾는다.
그래도 그 '놀이'는 사회적으로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잘못해야 개인과 가족을 곤란하게 하는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 '나'는 변호사가 됐다. 놀이를 즐기던 나는 통장에 거액을 지닌 남자가 된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럴 때 안락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다르다. 그것이 못마땅하다. 오히려 놀이를 즐길 수 없다는 생각만 든다.
더 자극적인 것은 없을까? 그리하여 생각해낸 것이 '살인'이다. 물론 감옥에 가는 그런 살인은 아니다. 다시 빠져나올 수 있는 그런 살인을 준비한다.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살인이다. 과연 그런 것이 있을까? 그것보다 그런 것을 상상해낼 수 있다는 것부터가 놀랍다. 어떻게 해서 이런 사고방식을 지니게 된 것일까? 모른다. 이유는 모른다. 굳이 찾자면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를 떠올릴 뿐이다.
사이코패스란 무엇인가? 사회적인 유행어가 된 이것은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해코지 하는 존재다. <나폴레옹 놀이>의 '나'는 '놀이'를 벌인다고 하지만 그 행위도 다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사이코패스의 행동에 다름 아니다. 더군다나 '나폴레옹'의 전쟁도 놀이의 하나였다며, 나폴레옹이 러시아로 간 것도 더 높은 단계의 놀이였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 상태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여러 소설들에 '사이코패스'가 등장했었다. 그런데 <나폴레옹 놀이>처럼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이 되어 내면의 심리를 고백한 것은 드물었다. 그래서인가. 이 소설은 생소한 세계를 보여주고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소설의 플롯에 따른 즐거움은 약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내면의 고백만으로도 이 소설의 재미를 보장해주고 있다.
놀이라 하여 사람을 죽이고 죄를 피하려 하는 어느 남자의 섬뜩한 내면 고백을 담은 <나폴레옹 놀이>, 그 안에 담긴 목소리가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