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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을 이용한 요리 아내가 만든 죽순회와 죽순나물, 죽순들깨탕. 봄맛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 죽순을 이용한 요리 아내가 만든 죽순회와 죽순나물, 죽순들깨탕. 봄맛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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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봄을 타는 모양이다. 요즘 통 입맛이 없고, 노곤하다고 한다. '기운을 차릴 색다른 음식이 없을까?' 아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그러더니 냉동실에서 뭔가를 꺼낸다.

"당신, 그거 뭐야?"
"죽순 얼려놓은 거예요. 고향 올케언니가 보내준 거잖아요."
"그거로 뭐할 건데? 내 도울 일 없을까?"
"방청소나 좀 하시지. 저녁은 내가 맛나게 지을 것이니까!"

죽순으로 뭐하려고 할까? 아무튼 뭐든 맛나게 먹고, 기운을 차리면 좋겠다. 저녁식탁이 기대된다.

봄에 먹어야 좋은 죽순반찬

 죽순은 봄에 먹는 무공해 자연식품이다. 요즘은 삶은 죽순을 냉동보관하면 오래두고 먹을 수 있다.
 죽순은 봄에 먹는 무공해 자연식품이다. 요즘은 삶은 죽순을 냉동보관하면 오래두고 먹을 수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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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랫녘에서는 죽순이 한창 올라오고 있을 것이다. 아마 이맘때쯤이면 빠끔히 고개를 내밀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 봄비가 흠뻑 내린 다음날, 대밭에 들어가면 반가운 죽순을 만날 수 있었다.

봄비가 대지를 적시면 대밭은 봄기운으로 넘쳐난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댓잎이 깔린 무게를 떨쳐내며 죽순의 솟구치는 힘을 느낀다.

나는 봄에 아버지를 따라 대밭에 가곤 했다. 땅속줄기에서 돋아나는 어리고 연한 죽순을 땄다. 적막할 것 같은 대밭은 바람에 서걱대는 댓잎소리로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 푹신푹신하게 깔린 댓잎은 또 어떤가? 양탄자를 밟는 느낌으로 발걸음도 가벼웠다.

죽순은 자라는 속도가 놀랍다. 아침에 본 것을 오후 늦게 보면 몰라보게 자라있다. 대나무 자라는 것은 눈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루에 최고 150cm까지 자란다고 한다. 죽순은 30~40cm 정도 자란 것을 꺾어야 가장 맛이 있다. 때를 놓쳐 꺾으면 쇠서 먹을 수 없게 된다. 통통한 것일수록 질감이 연하고 맛도 좋다.

아버지는 대밭에 들어가면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셨다. 눈에 띄는 여남은 개를 따면 그만이었다. 앞으로 자랄 대나무를 생각해 함부로 꺾지 않으셨다.

내 어릴 때만해도 지금처럼 죽순으로 다양하게 요리를 해먹었지 않았다. 죽순 따던 일이 생각나서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도 죽순을 불에 구워 먹어 봤어?"
"난 없는데, 오빠들은 구워먹었던 같아요. 맛이 어땠을까 궁금해요."
"향과 씹히는 촉감이 독특했지."
"아삭아삭하기도 했을 테고…."

지금은 어지간해서 맛볼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먹을 게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의 색다른 경험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죽순이 이렇게 몸에 좋을 줄이야!

어머니는 꺾어온 죽순을 바로 가마솥에 넣고 삶았다. 죽순을 삶을 때 가마솥 뚜껑 사이로 새어나온 김 냄새에서 단내가 났다. 껍질을 벗겨내면 보드라운 속살은 입맛을 다시게 하였다. 정갈한 솜씨로 죽순을 썰어놓으면 머리빗 모양의 살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가!

 죽순은 저지방에다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이다. 섬유질이 많아 장운동을 활발하게 한다.
 죽순은 저지방에다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이다. 섬유질이 많아 장운동을 활발하게 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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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은 영양에서도 손색이 없다. 지방은 적고,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풍부해서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비타민B와 비타민C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나른한 봄에 피로를 물리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또 풍부한 섬유질로 장 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변비 해소에 탁월하다. 콜레스테롤을 억제하는데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동의보감에서는 '죽순은 맛이 달고, 약간 찬 성질이 있으며 번열과 갈증을 해소하고, 원기를 회복시킨다'고 전한다. 죽순은 현대인에게 잘 어울리는 무공해식품임에 틀림없다.

예전 같으면 늦봄 한 철에 먹었던 죽순이다. 이제는 죽순을 잘 손질하여 삶은 것을 냉동실에 보관하여 먹으면 제철이 아니어도 맛나게 먹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냉장고가 사람들의 식생활에 많은 변화를 준 것 같다.

 냉동보관한 죽순을 해동하고, 손으로 찢어 찬물로 씻으면 손질이 끝난다.
 냉동보관한 죽순을 해동하고, 손으로 찢어 찬물로 씻으면 손질이 끝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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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댁에서 가져온 죽순이 우리집 냉동실을 차지한 지도 꽤 되었다. 그동안 아껴두었던 것으로 아내의 입맛을 살려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씹히는 맛으로 먹는 죽순

아내가 냉장고에서 꺼낸 죽순을 해동한다. 날 죽순을 삶은 것에 비해 윤기가 좀 떨어진 것 같다. 그래도 흐르는 물에 씻어놓으니 제법 꾸득꾸득하다. 아내가 죽순을 한 주먹 꼭 쥐고 물기를 짜낸 뒤 초고추장 꺼낸다.

"초고추장에 찍어먹고 싶지 않아요?"
"그거 좋지! 예전에도 죽순회를 먹었는데 그 맛이 날까?"

아내가 죽순을 둘둘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준다. 고추장맛과 죽순의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아주 좋다. 아내도 맛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죽순나물은 갖은 양념으로 볶아 무치면 된다.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맛을 낸다.
 죽순나물은 갖은 양념으로 볶아 무치면 된다.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맛을 낸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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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죽순나물을 무칠 차례다. 파, 마늘과 같은 갖은 양념을 하고, 죽순을 냄비에 달달 볶는다. 간은 집간장으로 한다. 깨소금을 술술 뿌리고, 참기름을 몇 방울을 떨어뜨리니 나물무침이 끝난다.

아내가 믹서를 찾으며 내게 묻는다.

"들깨 갈아 넣고 끓여볼까요?"
"그것도 좋겠네! 색다를 것 같아."

아내가 죽순나물에 들깨를 갈아 넣어 걸쭉하게 만들어 볼 요량이다. 새로 선을 뵈는 요리에 기대가 된다. 들깨를 가느라 믹서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내는 들깨를 이용한 음식을 많이 한다. 시래기된장국을 끓일 때나, 묵은 나물을 무칠 때도 들깨를 갈아 넣는다. 들깨국물이 들어가면 구수함을 더해준다.

 들깨를 갈아 국물을 걸쭉하게 하여 먹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들깨를 갈아 국물을 걸쭉하게 하여 먹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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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를 갈아 넣어 만든 음식이 만들어졌다. 죽순들깨탕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하나? 걸쭉하고 뽀얀 국물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그러니까 죽순반찬 삼총사가 탄생한 셈이다. 죽순회, 죽순나물, 죽순들깨탕까지!

아내가 만든 요리를 번갈아 먹어본다. 사실, 죽순은 그 자체로는 맛이 강하지 않다. 죽순회는 초고추장 맛이고, 죽순나물은 양념 맛이다. 살근살근 씹히는 맛이 죽순의 참맛인 것이다.

씹히는 맛을 즐기며 접시바닥이 비워졌다. 아내도 숟가락을 놓으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오랜만에 봄 음식을 맛나게 먹었네. 기운을 차릴 수 있으려나!"


#죽순#죽순나물#죽순회#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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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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