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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170쪽 분량이지만  <편집자주>

드라마, 소설,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는 그 사회 의식과 전혀 동떨어진 문화가 아니다. 드라마에서 인기 있는 직종은 그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인기 있는 직종이며, 드라마 속에 드러나는 가족관계 역시 현재 가족관계 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반영한다.

 

왕을 주제로 한 역사 드라마에서 여자는 내명부 역할만 감당하거나, 왕의 여자로만 그려졌지만 요즘은 당당한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현대물에서도 여성은 당당한 자기 직업을 가지고, 성공한 여성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대중물에서 과연 여성이 당당한 주체로서 투영되거나 반영되고 있는지 묻는다면 쉽게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백문임은 책세상문고 · 우리 시대 043 <춘향의 딸들, 한국 여성의 반쪽짜리 계보학>를 통해 대중물 속에 배어있는 여성관을 비판하고 있다. 170쪽 분량이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당당한 주체로 자리매김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을 만한 책이다.

 

세계 대중문화인 중에서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 사람으로 '마돈나'를 든다. 많은 사람들이 마돈나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았지만 마돈나 자신은 당당한 주체로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마돈나 같은 사람들, 남성들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주체로 살아간 여성이 과연 있는지 묻는다.

 

우리 근대 대중물 가운데 '춘향'만큼 많이 다루어진 인물도 없다. 춘향은 지금도 리바이벌 되고 있다. 소설, 영화, 드라마를 통하여. 판소리도 당연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춘향은 지고지순한 여성, 정절의 여성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우리나라 여성관을 형성하게 하였다.

 

하지만 백문임이 주목한 것은 먼저 <춘향전> 초기 판본에서 춘향은 미인이 아니라 추녀였고, 사랑하는 양반 남성을 차지하기 위한 과감성, 적극성와 당돌함, 명민한 인물로 그렸지만 후기 판본으로 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절과 지고지순한 여성상을 변모되었다고 말한다.

 

"봉건제의 질곡을 타파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던 여성에서 봉건제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여성으로 변모해 나간 것이다. 이는 여러 차례 만들어진 영화 <춘향전>의 시각적인 이미지에 힘입은 바가 크며, 여기에 개입되는 것은 철저하게 근대 이데올로기이다."(41쪽)

 

처음 춘향을 잃어버리고, 봉건신분제하에서 지고지순과 정절을 여성상으로 변화시킨 이후 춘향을 따른 근대 사회의 대중물은 여성들은 어떤 존재로 다루었을까? 백문임은 근대 대중물 속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 좌표를 세 가지로 나누어 짚어본다. 정절 이데올로기, 돈이냐 사랑이냐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삼각관계, 민족 알레고리로서의 '팔려가는 딸' 모티프가 그것이다.

 

조중곤의 <장한몽>의 '심순애,' 이광수의 <무정>의 '박영채,' 그 유명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홍도' 통하여 정절 이데올로기, 돈이냐 사랑이냐를 다룬다. 박영채, 심순애, 기생 홍도는 가난한 집 아이, 고아, 기생이었다.

 

"이 여주인공들은 정절이라는 가치를 단순히 믿고 떠받드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 때문에 자신의 온 존재를 내던지게 된다."(46쪽)

 

정절 이데올로기, 돈과 사랑 사이에 놓인 삼각관계, 민족 알레고리로서 팔려가는 딸로 그려지게 된다. 그들은 민족과 가부장적 가치 기준에 매몰되어 관리 되어야 할 존재일 뿐이다. 여성은 주체가 아닌 가부장과 민족의 관리 대상인 것이다.

 

"전통적 가치를 담지한 여주인공들에 대한 대중의 사랑과 연민, 그리고 그 가치를 유독 '정절'로 고착시킴으로써 생겨나는 분노와 폭력, 이는 대중물의 여주인공들이 가부장-민족의 노스탤지어를 충족시키는 가장 적절한 대상이었음과 동시에 가부장-민족의 무능과 불안을 상기시키도 하는 복합적인 주체였음을 흥미롭게 드러낸다.(66쪽)

 

백문임은 마지막 5장을 할애한 '여귀(女鬼)' 공포 영화(<흡혈귀마녀><미녀공동묘지> <여곡성>)를 통하여 홍도, 심순애와 다른 이미지로 그리려고 했다. 자식을 낳지 못하거나, 정절을 잃었을 때 자살을 통하여 전통 가부장과 가족 제도에 항거하여 '한'으로 저항한 것이다. 아이를 낳지 못함, 정절을 잃어버린 것으로 죽음을 택한 것은 적극적인 항거가 아니다. 결국 죽어서도 '정절'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밝힌다. 가부장 질서 붕괴까지 넘어설 수 없었던 것이다.

 

"여귀들은 내러티브가 진행되면서 어느덧 악한에서 가문의 최후의 보루로 변한 남성에 의해 제거당하고, 관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극장문을 나섰을 것이다."(137쪽)

 

춘향의 딸들이 근대대중물에서 신여성으로 그려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들은 정절과 삼각관계, 민족을 위하여 팔려가는 딸들로 그려지면서 근대 여성관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성가부장과 민족을 위하여 희생당한 여성, 스스로 주체가 되지 못한 여성, 한편으로는 무능력한 여성으로 근대물은 여성을 다루었다.

 

대중물이 그 사회 의식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하였지만 춘향과 근대화부터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대중물 속에 나타난 여성상을 꼼꼼히 살핀 책이 별로 없었다. 백문임의 이런 접근은 아직도 당당한 여성, 주체로 살아가는 여성을 완전히 담지 못하고 있는 우리 대중물을 다시 한 번 평가하는데 좋은 읽기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춘향의 딸들, 한국 여성의 반쪽짜리 계보학>


태그:#춘향,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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