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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사람을 매달아 죽이는 형장이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천형처럼 안고 살아가는 회화나무가 해미읍성(사적116호) 옥사터 앞에 서있다. 이 나무는 나이가 330여 년 정도로 추정되며  밑둥크기가 4미터, 높이 15미터 크기의 고목이다.

 

이 나무에 깃든 가슴 아린 기억은 142년 전인 1866년 후세 사람들에 의해 '병인박해'로 불리는 병인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천주교를 믿다가 국법을 어긴 죄로 해미읍성으로 압송된 천주교 신자들 가운데 이 회화나무에 매단 철사줄에 목을 매어 처형당한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그 당시 철사줄을 맨 흔적이 나무 곳곳에 남아 있어, 그날의 처절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23일 서산시에 따르면 그런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해미읍성 회화나무'가 충남도로 부터 기념물172호로 지정됐다. 이 나무는 도 기념물 지정에 앞서 천주교에서 '병인순교의 현장'으로 1975년부터 보호해 왔고 1982년에는 천주교 재단에서 순교기념비를 제작해 세워 놓았다.

 

지난 2004년에는 서산시에서 몸통과 가지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인공목을 접목하는 등 대대적인 외과수술을 했다. 보통의 나무라면 기념물로 지정된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다. 지정되면 여느 나무와는 달리 특별히 보존되며 널리 알려지기 때문이다. 오래되고, 귀하고, 남다른 사연을 간직해 그것으로 인해 내가 남보다 특별하다는데 얼마나 기쁜일인가. 가문의 영광이고 동네에서 잔치라도 한바탕 벌여야 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순전히 '형장' 구실을 한 과거 때문에 '특별한 존재가 된'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이 '영광'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렴풋한 과거를 들춰내 새삼스럽게 죄명을 나열하고 목을 베어 높다란 장대에 효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서글프다. 순전히 '사람이 매달려 죽어갔다'는 사실 때문에, 그때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자는 역사보존 의식 때문에, 이 나무가 기념물이 됐다는 것은 '주홍글씨'를 새겨 넣는 것과 얼마나 다를까.

 

역사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해미읍성 회화나무'도 역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터이지만 역사는 양과 음의 양면이 존재하기에 들춰지는 만큼 숨기고 싶은 아픈 상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큰 나무를 경외의 대상으로 섬기는 민간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회화나무처럼 슬프고 아픈 과거를 가진 나무는 터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나는 형장이었다'라는 치욕을 안고 숱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며 살아야 하는 해미읍성 회화나무도 시대의 희생물인 만큼 그 상처도 보듬고 치유해 줘야 한다.

 

이 나무를 '박해현장의 형장'으로만 보지 말자. 전혀 원하지 않은 일을 겪을 수밖에 없던 처지를 이해하고 나무를 '사면'해주는 것이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 나무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태그:#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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