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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불암 가는 길
 송불암 가는 길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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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빠르게 닿아버리는 여행지는 허망하다

송불암 가는 길은 어디 있는가. 아니, 송불암은 어느 산자락 아래서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가. 충남  논산시 연산면 소재지 근방에서 나이 지긋한 분들을 붙들고 물었지만 아는 이가 없다. 심지어 내비게이션 상에도 위치가 표시되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전통사찰이 아닌가. 예닐곱 사람 정도를 거치고 나서야 겨우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연산면 소재지를 벗어나 697번 지방도를 타고 걸어가자 벌곡으로 넘어가는 황룡재가 나온다. 재가 막 허리를 곧추세우려는 지점에서 문득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송불암을 알리는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다. 누군가 말했지. "천천히 걸어도 빠르게 닿아버리는 목적지는 싫다"라고. 그리고 오래 헤맨 끝에 겨우 닿은 여행지가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법이지.

길을 꺾어 송불암으로 들어가는 길엔 분홍색 겹벚꽃이 한창이다. 겹벚꽃은 말 그대로 꽃잎이 여러 겹이다. 홑꽃잎을 가진 벚꽃이 다 지고 난 뒤에야 슬슬 피어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 겹벚꽃 역시 빠르게 닿아버리는 목적지가 싫은 여행자인지도 모른다. 길을 가면서 마음에 맞는 길동무를 만난다는 건 얼마나 커다란 행운인가.

함께 암자 안으로 들기를 청헀지만  겹벚꽃은 끝내 사양한다. 할 수 없이  겹벚꽃을 등 뒤에 남겨둔 채 혼자 송불암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대웅전.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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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불암은 함박봉에 자리 잡고 있다. 연산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먼저 전각들과 수인사를 나눈다. 전각이라야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대웅전과 요사채가 전부다.

정면 3칸, 측면 3칸 크기의 대웅전은 맞배지붕 형식의 건축이다. 대웅전 중앙 불단엔 비로자나삼존불을 가운데 모시고 왼쪽엔 석가모니불, 오른쪽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특이한 것은 법당 왼쪽에 따로 단을 만들어 지장보살좌상을 모시고 있는 점이다. 예전에 본존불로 모셨던 보살이라고 한다. 오른쪽 벽을 바라보자 새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목각신중탱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가 2001년에 대웅전을 새로 짓고 나서 조성한 것이다. 그동안 현대식 건물을 법당으로 사용함으로써 느껴야 했던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나 보다.

"어째 염불 좀 외울 정도는 되시는가?"

요사.
 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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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 우측에 있는 배롱나무.
 요사 우측에 있는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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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요사도 대웅전처럼 맞배지붕 건물이다. 맞배지붕 건물은 장중하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마침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대웅전 문을 열고 나오더니 요사를 향해 올라온다. 합장하여 인사를 나눈 다음 암자에 대해 궁금한 것 몇 가지를 묻는다.

현재 이 암자에는 두 분 스님이 계신다 한다. 세수 77세이신 경연 스님이 주지를 맡고 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머물면서 폐허나 다름없던 암자를 일으켜 세운 분이라 한다. 얘기를 나누면서 비구니 스님의 행색을 살펴보니 승복이 마치 작업복같이 낡았다. 밤낮없이 일에 파묻혀 사시는 스님이신가? 재너머에 있는 더덕밭을 돌보러 가야 한다면서 서둘러 자리를 뜬다.

요사 이곳저곳을 찬찬히 둘러본다. 오른쪽 공터엔 꽤 줄기가 굵은 배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저 나무는 언제부터 저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일까. 예전에 이곳에 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는 석불사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그 정도 오랜 수령을 가진 나무는 아닐지라도 족히 백 년 정도는 되고도 남을 고목이다.

배롱나무 옆에선 개 한 마리가 홀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어째 염불 좀 외울 정도는 되시는가?" 녀석은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은 채 꼬랑지만 살살 흔들 뿐이다. 아무래도 뭣이든지 어물쩍 넘어가려는 요즘의 세상 풍조에 빠삭한 녀석인 듯싶다.

2층 석탑.
 2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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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를 나서 대웅전 왼쪽에 있는 멋들어지게 생긴 소나무를 향해 간다. 저 소나무가 바로 송불암이란 암자 이름을 있게 한 나무인가 보다.

소나무 옆, 2층으로 된 아주 작은 석탑에서 걸음을 멈춘다. 아마도 암자 주변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부재를 수습해서 결합한 탑인 모양이다.

탑은 2개의 탑신과 2개의 옥개석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별개의 석탑에 따로 있었던 것인지 2개의 옥개석은 처마의 기울기가 각기 다르다. 임진왜란 때 타버렸다는 옛 석불사 터에서 나온 것들일 것이다.

소나무는 동양화에 나오는 소나무를 연상시키듯 수형이 아주 멋지다. 발아래엔 "수령 250년 되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하지만 늙어서 그런지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다. 이거 보톡스라도 몇 대 맞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한 여름에 이 소나무 아래에 평상을 가져다 놓고 낮잠 자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뚱맞은 생각이 스친다.

미륵불의 전설이 암시하는 광산 김씨 일문의 세력

250년 된 소나무.
 250년 된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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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엔 미륵불이 서 있다. 얼핏 봐선 충주 미륵대원 석불을 닮은 듯하다. 이곳에 전해오는 전설에 따르면 소나무와 미륵불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옛날에 이 지역에 광산 김씨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 집에 노승이 찾아오더니 "당신의 어머니는 모월 모시에 돌아가시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금세 사라져 버렸다.

노승의 예언한 시각이 되자,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자기 예언이 실현되는지 지켜보려고 온 것인가? 때맞춰 다시 나타난 그 중이 대문 밖에서 염불하고 있었다.

'제문석불'이란 이름을 가진 미륵불(충남 문화재자료 제83호).
 '제문석불'이란 이름을 가진 미륵불(충남 문화재자료 제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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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예삿사람이 아니라고 믿은 상주는 스님에게 묏자리를 잡아줄 것을 청했다. 중은 "범바위골이 좋을 것 같습니다"면서 "단 내가 황룡재를 다 넘어가거든 그 뒤부터 땅을 파시오"라고 당부하곤 훌훌 떠나버렸다.

그러나 장례를 서두르던 산일꾼들은 중이 채 고개를 넘어가기도 전에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자 땅 속에서 왕벌이 나오더니 중에게로 날아가서 벌침을 쏴 죽이고 말았다.

그 후 김씨 문중에서 중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것이 이 미륵불이라고 한다.

세월이 흘러가자, 미륵불 곁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싹을 내더니 마치 미륵불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아래로만 자라났다는 것이다.

미륵불이 소나무의 아래에 있음으로 해서 마치 소나무가 미륵불의 광배 겸 보호수 역할을 하는 모양새를 띠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후세 사람들은 소나무가 그때 그 노스님의 후생이라고 믿었다는 것.

예전엔 미륵불을 보호하듯 자랐던 소나무건만

그러나 소나무가 고목이 되면서 점점 밑으로 쳐져 급기야 미륵불이 소나무를 이고 있는 것처럼 되자 지금의 자리로 미륵불을 옮겼다 한다. 그래서 현재는 마치 소나무가 부처님께 절을 하고 있는 형태로 배치돼 있다.

이 전설은 이 지역에서 광산 김씨 일문의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미륵불을 세울 당시 얼마나 음택풍수를 중시했던가를 말해주고 있다.

미륵의 발 부분.
 미륵의 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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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륵불은 우리나라의 산야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투박한 민불(民佛)의 모습이다. 양쪽 어깨에 걸친 옷은 가슴 부분에서 U자형을 이루었으며 옷자락의 주름은 얕은 선으로 새겨 발목까지 내려왔다.

왼손은 가슴에 댄 반면 오른손은 몸의 측면에 붙이고 있다. 연꽃 모양을 새긴 받침돌을 밟고 선 부처님의 발을 따로 조각한 게 이채롭다

미륵불의 주변에는 주춧돌이 남아 있어 본래는 정사각형의 전각 안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미륵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송불암 뒤쪽,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는 석불사 터로 올라간다. 절터는 현재 밭이 돼 있다. 이곳에 서니, 저 멀리 황산성이 있는 산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비록 내가 풍수지리엔 문외한이지만, 느낌만으로도 참 좋은 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암자란 세간에서 너무 멀면 외롭고, 세간과 너무 가까우면 비릿한 냄새가 풍긴다.

송불암을 나선다. 길가에 선 겹벚꽃이 심심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너무 오래 머물러 심심했나? "나를 따라나서지 않을래?" 물었더니 "아니"라고 고개를 도리질한다. 녀석은 이곳 송불암에 며칠 더 머물다 떠나고 싶은가 보다. 저만치 가다가 뒤돌아본다. 우리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옛 석불사자리에서 본 송불암의 뒷모습.
 옛 석불사자리에서 본 송불암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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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 뒤편 언덕에 묻어둔 김치독.
 석불 뒤편 언덕에 묻어둔 김치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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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충남 , #논산 , #송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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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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