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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를 떠올리는 도시 담양에 들어서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꼿꼿한 대나무를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대나무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담양호 근처의 만발한 벚꽃과 곳곳에 펼쳐진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녹색빛깔의 상큼한 세상, 죽녹원

 

냄새를 맡아보려고 킁킁거렸다. 여기도, 저기도, 거기도 꼿꼿하게 서있는 대나무의 녹색 빛깔에 취해 나도 모르게 향을 찾고 있었다. 그렇지. 대나무엔 향이 없었지. 바보 같이 미소지으며 죽녹원 곳곳을 거닐었다.

 

억양이 센 사투리와 여기저기 펼쳐지는 낮선 풍경 탓에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지기도 했다. 담양에 와서 첫 발자국을 죽녹원에 내딛은 게 잘했다 싶을 정도로.

 

 

 습기가 많고 생장이 빠르다는 대나무. 대나무에는 죽순만 있는 줄 알았는데 꽃이 필 때도 있단다. 대나무밭에서 일제히 피는 꽃은 대나무의 영양분을 모두 흡수한 뒤 말라죽는다. 사람들은 대나무의 빛깔과 그 꼿꼿함을 사랑하는데, 대나무는 어쩌다 발현하는 그 꽃을 연모할지도 모른다.

 

깔끔한 죽통밥을 먹어주고

 

죽녹원에서 나오는 길. 근처에 대나무 기념품점을 끼웃거리다가 열기에 놀라고(천막으로 되어 있는 곳에 놀랄 만한 열기!), 가격에 또 놀란 가슴을 뒤로 하고, 대통밥을 먹어보려고 식당에 들어섰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죽통밥, 깔끔한 상차림에 숯불 냄새도 은은히 풍기는 고기까지. 한껏 기대하고 한 입 먹었지만, 정작 중요한 죽통밥은 그냥 맛있었다.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아님, 엉뚱하게도 향을 또 음미하고 싶었나 보다.

 

 

벚꽃 흐드러진 담양호의 드라이브 코스

 

담양에 도착에서 '향'의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번엔 눈 앞에 벚꽃이 휘날리고 있었다. 바보같이도 담양하면 대나무만 있을 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기대하지 않았던 꽃놀이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지나오면서 본 메세퀘타이어 나무에 적지 않이 실망했지만(거리가 너무 짧고, 너무 쓸쓸해 보여서), 담양호를 타고 도는 도로에서 만난 벚꽃은 말그대로 흐드러지게 펴있었다.

 

2년 전, 이렇게 흐드러지는 벚꽃을 본 적이 있었다. 우연히 운전대 앞으로 날라들어온 벚꽃과 그 때의 벚꽃은 다를 게 없는데 그 때는 없었던 장면들이 지금의 벚꽃에는 아롱아롱 새겨져있다.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여행은 즐겁다. 그것이 유쾌하든, 유쾌하지 않든.

 

 

재미있는 체험, 볼륨감 있는 다리

 

사용해본 적 없던 네비게이션. 초행길에 헤매지 않으려 동행했는데 정작 담양에 와서는 말썽이다. 다룰 줄 모르는 내가 멀쩡한 네비게이션을 엄청 구박하긴 했지만.

 

그래서 헤매고 헤매다 찾아간 가마골 생태공원에 도착하니 조금씩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역시 밖에서부터 안에까지 사람들을 찾아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죽녹원엔 사람이 바글바글 했는데….

 

짧은 시간 걷기엔 부담스런 거리기에 차를 타고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마주친 높디높은 다리. 흔들다리라기에 호기심이 왕성해진 나는, 차에 내려서 부지런히 계단을 올라갔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잇는 다리는 중간쯤에 서니 제법 볼륨감(?) 있게 움직였다. 큰 움직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볼륨감 있는 그 움직임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아래를 내려다보면 조금은 아찔했지만.

 

자연, 말그대로 자연스러우면 안될까?

 

생태환경을 최대한 보존하는 듯한 이 곳. 내가 '수통골'이라는 곳에 살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수통골'은 내가 어릴 적엔 완전히 자연 그대로였다.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고, 물이 복류하는 찾아보기 힘든 지형이었던 그곳에 콘크리트도 칠해지고, 등산로와 산책로도 정비하기 시작했다.

 

입장료를 받지 않던 탓에 사람들은 엄청 많이 왔지만, 우후죽순 생겨나는 음식점과 연일 들락날락하는 차들 탓에 조금씩 힘들어하는 수통골을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동네 전체가 개발이라는 호재(?)를 만났고, 나도 이사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연환경을 여행객으로 와서 볼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인위적인 개발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며 '대운하'를 만든다는데, 난 자연이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길 바란다.

 

 

너한테도 추천하고 싶은 다도체험

 

삼겹살 두 근을 사가지고 숙소로 정한 '마음의 고향'을 찾아갔다. 역시 적지 않게 헤매고 나서야 도착한 그 곳은 정취있는 민박이었다. 대안학교 교사로서 담양을 홍보하고, 다도 문화를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신다는 주인 내외분들의 손길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어두워져 도착한 마음의 고향에는 너른 마당이 있었고 그 한 편에 정자가 자리잡았다. 고풍스러운 호롱불은 은은한 분위기를 풍겼다. 황토로 바르고 한지로 도배하 방. 뜨끈뜨끈한 방에서 축 늘어지려던 찰나, 주인 아저씨는 '우리집에서는 누구든 다도 체험을 해야한다!'는 다소 고압적인(?) 태도로 우리를 별채로 데려가셨다.

 

다도에 대한 기본 설명을 듣고, 어색하게 시작한 다도 체험. 마치 남 옷을 입은 양 엉거주춤 움직이는 내 모습이 우스웠지만, 맑은 녹차향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그 색다른 체험을 당신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아늑한 뒤뜰 같은 소쇄원

 

다음날, 담양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로 소쇄원을 찾았다.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바라본 양산보가 자연 속에 숨어살기 위해 만들었다는 소쇄원. 그냥 아늑한 뒤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줄기도, 정자도, 하다못해 돌 하나까지도, 부드러운 곡선으로만 생긴 세상이었다. 아마도 세상이 두렵고, 싫어서 피한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좋은 세상만 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짧은 생각 하나 더.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니는 관광지나 이른바 명승고적은 모두 양반 같은 높은 이들의 공간인 것 같은데 그 시대의 서민들이 살았던 생활상을 보는 것도 우리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담양. 휘황찬란한 관광지도 아니고, 화려한 휴양지도 아니다. 다만 적자생존의 각박한 사회에서 마음의 쉼표 하나 찍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대나무 공화국, 하지만 그 이상의 벚꽃과 여유가 넘치는 그 곳, 당신도 담양에서 당신만의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치료받을 수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 4월 19일에 다녀왔습니다.

- 이 기사는 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담양, #마음의 고향, #대나무, #마음,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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