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축제의 바다

2008년 2월 22일: Stage 4 (Day 5):

Ban Ho - Ma Qoai Ho - Den Thang - Seo Mi Ty - TaVan

Estimated distance:  29 km 

 

어젯밤은 Ban Ho 마을의 현지인 집에서 숙박을 했다. 그동안 물침대에서 뒤척이던 고통에서 해방된 것이다. 이곳 마을의 전통 가옥들을 보니 기둥과 보는 두꺼운 나무를 사용해서 틀을 잡고 나머지 부분인 벽, 바닥, 지붕 등은 대나무를 이용해 완성을 했다. 전체적으로 3층인 가옥은 겨울에는 실내에서 화덕을 이용할 수 있으며 여름에는 대나무 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자연 냉방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실내 공간이 무척이나 넓어서 한 집에 15명의 참가자들이 숙박을 해도 실내에서 축구를 할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넉넉했다. 주최 측에서는 작년 고비사막 대회부터 대회 중 하루는 현지인 집에서 숙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모두에게 새로운 현지 문화체험의 좋은 기회인 것 같다. 현지인, 외지인 모두 함께 만족하고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다.

 

오늘 골인 지점인 Ta Van 마을에서는 1000년간 이어지는 Long Tong 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라 하면 분명 뭔가 먹거리가 제공될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이곳의 무공해 음식들은 입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훌륭하다. 물론 사람이 배를 굶다보면 개밥을 먹어도 맛있겠지만, 이곳의 부드러운 돼지고기를 먹어보지 않고는 무조건 삼겹살이 최고라는 주장은 객기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첫 번째, 두 번째 체크포인트까지 계속되는 오르막의 도로다. 최고 레벨은 1400m 이상이라 아무리 포장된 길이라 하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이 동네 최고의 축제기간을 입증하듯 우리가 지나는 도로에는 각양각색의 전통의상으로 치장한 고산족들의 모습이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는 그들을 신기해서 구경하고 그들은 우리가 신기해서 구경하고… 서로 쳐다보면서 웃기 바쁘다. 

 

대회가 종반으로 갈수록 다리의 부상은 잊혀지고 있다. 완주의 8부능선에 왔다는 생각으로 엔돌핀이 과다 분출되며 통증을 망각시키는 것이다(하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한국에서 1달 이상 재활 치료를 받았다).

 

두 번째 체크포인트부터 마을까지는 내리막인 진흙밭 코스다. 다행히 이때쯤 완전히 비가 멈추고 햇살이 삐죽 코를 내밀기 시작했다. 수시로 미끄러지면서 라이스테라스(계단식 논)를 따라 길을 가는데 따사로운 햇살 덕분인지 왠지 평화로운 농촌 마을의 농부가 된 기분이다. 

 

급경사 지역에서는 확실히 다리에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가니 몇 미터씩 미끄러져 구르기 일쑤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꺽다리 스웨덴의 닐슨 아저씨는 온몸이 진흙으로 뒤덮힌 상태로 울면서 가고 있었다. 키가 2m 넘는 사람이 '흑흑흑' 울면서 길을 가는데 도와주기도 뭐하고 모른 척하기도 뭐하고… 그 와중에도 연신 중심을 못잡고 넘어진다.

 

마을로 들어오니 동네사람들과 관광객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또다시 쇼 타임 시간이라 곰돌이 모자로 바꿔쓰고 팔을 들어 환호에 답해준다. 우리 모두 다함께 손을 들어 오 예~! 예~!, 오 예~! 예~! 콘서트 장이 따로 없다. 

 

캠프에서는 나의 희망대로 쌀국수를 비롯한 푸짐한 먹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복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인간이 가장 원초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느끼는 행복은 그 강도가 더욱 짜릿하리라 본다. 

 

참 먼 길을 왔고 그동안 잘 버텨준 내 몸의 내구력과 브룩스 신발, 인진지 양말에 감사를 한다. 잠자기 전 모두 함께 완주의 인사를 미리 나눈다.

 

어제에 비해서 2시간 이상을 단축시킨 06:15:00 으로 마무리한다.

 

10번의 도전, 10번의 성공

2008년 2월 23일: Stage 5 (Day 6):

TaVan - Heavens Gate - Cat Cat - Sapa

Estimated distance:  13 km

 

베트남 레이스의 마지막 날.

 

쏟아지는 아침 햇살과 주위의 푸르름이 뿜어내는 아찔한 산뜻함이 느껴진다. 모든 참가자들이 '사파'(SAPA)로의 멋있는 입성을 꿈꾸고 있다. 최대한 멋있는 옷차림(비록 다들 거지꼴이지만…)을 준비하고 들뜬 마음으로 골인 때의 세리머니를 연습한다.

 

하지만 주최 측(Racing The Planet)은 마지막까지 사람 괴롭히기로 악명 높은 회사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라이스테라스(계단식 논)의 좁은 길,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인 코스. 수시로 길을 잃고 헤매다 오죽하면 13km를 가는데 거의 4시간이 걸렸을까….

 

그래도 모든 게 용서가 된다. 왜냐하면 내 생애 10번째 오지 레이스를 이곳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으니.

 

골인 지점으로 가는 나에게 순박한 마을사람들이 축하의 멘트를 날려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축멍~(축하합니다), 나도 한 마디 날려준다. 깜언~(감사합니다.) 서로 밝은 웃음이 교차된다. 마지막 날 03:59:30, 전체 54:05:25 의 기나 긴 나의 열 번째 오지레이스를 마무리한다.

 


태그:#베트남, #여행, #마라톤, #어드벤처레이스, #사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