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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행렬이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을 출발한 직후 오성홍기를 든 중국인 수천명이 도로 건너편에서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저지 시민연대' 집회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행렬이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을 출발한 직후 오성홍기를 든 중국인 수천명이 도로 건너편에서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저지 시민연대' 집회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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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제와 함께한 100일 유신이 실패로 끝난 후 일본의 도움을 받아 피신한 량치차오는 "중국이 흥성하지 못한 까닭은 국민의 공공도덕이 결여되어 있고 백성의 슬기가 깨어있지 않기 때문(<중화유신의 빛 양계초> 재인용)"이라며 교육입국의 방침을 밝힌다. 

4월27일. 나는 서울에서 새로운 차원의 '중국의 절망'을 봐야 했다. '세계의 공장'을 넘어 '세계의 시장'을 목표로 하는 중국에게 올림픽은 자신들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들에게 이 신호탄을 쏘는 것을 방해하는 이들은 모두 적일 것이다. 그래서 젊은 중국 유학생들은 반중국단체를 향해 뭉쳤다. 그들은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에게 "지아요(加油, 힘내라)"를, 티베트의 인권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다오치엔(道歉, 사과해)"이라고 외쳤다. 물론 티베트의 인권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돌맹이와 스패너를 던지는 학생들도 있었다.

100년 전보다 참담한 중국의 오늘

이들의 이런 모습은 100년 전과 거의 다르지 않다. 1907년 10월 17일 량치차오와 정신적 바탕을 이룬 정문사는 도쿄 간다구에서 성립대회를 연다. 량치차오가 연설할 때, 이들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동맹회는 수백명을 이끌고 이 곳에 난입해 행사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짚신으로 량치차오의 뺨을 때린다. 10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그보다 더 참담할 수 있다.

당시 많은 이들은 중국의 잘못된 방향에 대해 반성하고 국민의 교육과 개화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을 향해 무슨 교육과 개화를 이야기할 것인가.

문화대혁명(1966~1976)이라는 지식 부재의 시간을 겪은 후 중국에 불어닥친 개혁개방(대략 1980년 이후)의 시대는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중국을 추종하며, 오직 '부자 나라'만을 꿈꾸게 했다. 실제로 그들의 꿈은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로 2조 달러를 넘길 외환보유고만 봐도, 이제 중국은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나라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을 세워줄 정신적 바탕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막시즘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로 중국의 교육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유교를 다시 국교로 채택해 충효를 강조할 것인가.

실제로 중국은 막시즘의 재해석은 물론이고 마오쩌둥의 사상 등 다양한 사상을 재검토하고 있다. 또 각 정권마다 나름대로 정치적 구호를 갖고 있다. 장쩌민의 '삼개대표론'이 그렇고 후진타오의 '허시에(和諧)'가 그렇다.

삼개대표론은 '첫째 당은 선진적 사회생산력의 발전이며 둘째, 선진문화의 전진 방향을 제시하며 셋째, 최다 인민의 전체 이익을 대표한다'는 개념이다.

'선진'을 가장 앞에 내놓고 있지만, 실제로 선진적이진 않다. 사회생산력은 확대됐지만 '선진문화'라는 실체조차 설정하지 못했다. 거기에 '빈부격차' 확대로 '최다 인민의 전체이익'이라는 말은 갈수록 멀어진다. 또 '조화 속의 발전'을 뜻하는 허시에도 개념 조차 헛갈리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중국 국부의 대부분은 '공산당 간부의 자제'들이 갖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런 사상 부재는 돈이나 중화주의에 대한 일반인들의 맹신을 불렀다. 이미 계급사회보다  더한 계급사회를 형성한 중국의 계층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돈에 대한 맹신'은 '중국'이라는 거함의 향배를 혼돈스럽게 하고 있다. 이는 마치 방향을 잡지 못하고 떠도는 거대한 항공모함 같다.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북경올림픽 성화봉송 행사에서 중국인들이 북경올림픽 반대시위대를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북경올림픽 성화봉송 행사에서 중국인들이 북경올림픽 반대시위대를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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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2008년 서울인가, 1894년 서울인가

더 문제는 이런 중화주의가 통제되지 않으면서 주변국들에게 위협이 돼 간다는 점이다. 이번에 벌어진 어린 유학생들의 시위는 중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통제되지 않는 윤리의식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다.

이런 현상은 대학생만이 아니다. 때문에 자국을 대표하는 대사는 티베트 사건을 묻는 학생들에게 "더 공부해라, 질문 자체가 너무 무식하다"라는 폭언을 했다. 외교관에게 민감한 외교적 사안을 묻는 것은 결례일 수 있지만, 이런 답변 또한 더 결례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이제 대사부터 학생까지 중국인들은 동일한 자세로 강한 중국을 말하고 행동한다.

이제 중화주의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가 되었다. 어제 중국말을 할 수 있는 7살바기 아들과 길을 가다가 얼굴에 오성홍기를 그린 중국 유학생들을 만났다. 아이에게 인사를 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애써 그냥 지나쳤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안전은 뒤로 한 채 소고기를 파는 미국, 자동차 게임산업을 바탕으로 다시 우리 안에 들어오는 일본, 자신들의 힘이 최고라고 믿고 중화주의에 빠져서 거리를 활보하는 중국 학생이 겹쳐졌다. 그리고 땅투기를 하고도 죄의식 없이 떳떳한 듯 얼굴을들고 다니는 우리 사회 지도층이 생각났다.

어젠 내가 2008년 4월에 서울을 걷는 건지, 아니면 1894년 동학혁명이 끝나고 일본군과 청나라 군대가 진주한 서울을 걷는 건지 혼돈스러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chogaci)에도 같이 합니다



태그:#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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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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