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에 걸쳐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 동춘당공원 일원에서 제13회 동춘당문화제가 열렸다. 동춘당문화제는 조선시대 이 고장을 대표할 만한 큰 선비였던 동춘당 송준길(1606~1672) 선생을 추모하고자 해마다 여는 행사다.
난 본디 축제 따위엔 별 흥미가 없는 사람이다. 떠들썩한 것도 싫거니와 둘러치나 메치나 늘 똑같은 '메뉴'도 식상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사는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를 숫제 외면하는 것도 껄쩍지근한 일일 터.
동춘당문화제 첫째 날(4.26)
문화제가 개막되는 26일의 날씨는 매우 찌뿌둥했다. 오전 10시쯤 문화제 행사장을 찾아갔다. 동춘당 앞마당은 벌써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숭모제례 행사를 준비하는 유림 분들이다. 우측 담장 아래엔 제례 음악을 연주하러 온 연정국악관현악단 사람들이 앉아 있다.
제례를 잠시 지켜보고 나서 대전시 민속자료 제2호 송용억가로 향했다. 한동안 화려하게 꽃을 피워내던 영산홍과 자산홍은 그새 많이 이울었다. 나무 밑동엔 아무렇게나 떨어진 꽃잎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개화보다 낙화가 더 장관인 풍경이란 얼마나 쓸쓸한 것인가. 아무래도 내 정서에는 문화제보다는 '낙화제'가 더 어울릴 듯싶다.
송용억가 사랑채에선 서예전과 문인화전이 열리고 있다. 도자와 삼베에 쓴 붓글씨와 문인화라, 옛 선비집 마루에서 여는 행사로는 이보다 더 어울릴 게 있을성싶지 않다.
오후 3시 반. 다시 동춘당공원을 찾는다. '숭모공연'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국악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맨 처음 순서는 입춤이었다. 어떤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다. 이 입춤은 춤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 몹시 익살스러운 춤이다. 바라보다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다음 순서는 한량무다. 역시 춤과 소리는 남자가 해야만 훨씬 멋이 있다. 앵앵거리지 않고 주춤거리지도 않는다. 힘 있으면서도 장중하고 깊은맛을 준다. 밤에 조명을 준 상태에서 봤더라면 더욱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은 부채춤이 장식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식상하긴 해도 현란함만큼은 부채춤 따라갈 춤이 없다. 다만 한 가지. 부채춤이 가진 흠이라면 사람보다 소품이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송용억가 큰 사랑채인 소대헌에선 차 꽃 만들기와 차 체험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무슨 차냐?"고 물으니 "백련차에 (녹)차를 섞은 것"이라고 한다. 백련차는 아주 비싸고 귀한 차다. "몇 도에서 우려낸 것이냐?"라고 재차 물었더니 "80˚ c에서 우린 것"이라고 한다. 툇마루 끝에 서서 차 한 잔을 얻어 마신다. 차 맛이 그저 맹맹한 것 같다. 차보다는 차 꽃에 더 눈길이 가는 걸 어쩔 수 없다.
동춘당공원 늙은 느티나무 옆 천막 안에선 짚풀공예 시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연만하신 아저씨 한 분이 소쿠리를 짜고 있다. 그 옆에는 몇몇 아이들이 호기심에 눈빛을 빛내며 지켜보고 있고.
저 소쿠리 짜기가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지금 당장 섣불리 속단할 일은 아니다. 의미란 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뒤늦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누가 아는가. 훗날 이 아이들 중에서 짚풀 공예가가 나오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오후 5시. 동춘고택 마당으로 간다. 이곳에선 잠시 뒤인 5시 30분부터 민족예술극단 우금치가 '동춘당 서사극'을 공연할 예정이다. 류기형 대표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나서 자리를 떴다.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 공연을 보지 못한 게 유감이다.
동춘당문화제 둘째 날(4.27)
둘째날 11시. 등산이나 갈까 하다가 다시 문화제가 열리는 동춘당 공원으로 향한다. 이곳 동춘당 마당에선 낮 12시부터 사는 게 바빠 미처 혼례를 치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늙은' 신랑과 신부가 전통혼례식을 올릴 예정이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된 혼례식을 지켜보았다. 약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혼례식을 지루하게 느낀 건 아마도 내가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뜻이리라. 일가친척과 관객들 모두 이 늦은 혼례식을 축하해준다. 때로는 이런 형식을 빌어서나마 삶의 부족한 속이나 내용을 채워가는 게 사람살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혼례 상에 차려진 눈사람처럼 생긴 떡이 매우 이색적이다. 사회를 보는 이에게 물으니, 앞에 있는 건 '용떡', 뒤에 있는 건 '달떡'이라 한다. '이런 떡 이름 하나에도 이렇게 멋스런 이름을 붙일 줄 아는 우리 선조들은 참 멋을 아는 분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머리를 스친다.
동춘당 옆 공터에선 곧 '마차 타고 동춘선생 발자취 따라가기'가 행해질 모양이다. 이곳 동춘당에서 동춘 선생이 제자를 가르쳤던 매봉 기슭 옥류각까지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매우 흥미를 끌 만한 행사다. 미리 예약을 받아서 표를 탄 아이만 탈 수 있는 모양이다.
마부에게 "말의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열 살이라고 한다. 말의 평균 수명이 삼십 년이라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이 말은 지금 20대에 접어든 청년인 셈이다. 나도 저 마차를 탈 수 있는 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동춘고택 마당 한 켠에선 '전통 한지뜨기' 체험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이는 저 멀리 충북 괴산에서 온 안치용씨다. 닥나무를 찌는 솥 옆에서 그와 잠시 우리 종이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나이 오십인데도 여태 결혼도 못 했다고 한다. 인상도 참 좋은데 왜 그럴까.
그는 지금 충북 무형문화제 제17호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직원도 몇 명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혹시 "결혼하겠다"고 나설 처자가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옛날에야 누가 돈 안 되는 종이나 만드는 시골 총각에게 어떤 처자가 시집 온다고 나섰겠는가. 지난 시대 우리나라 전통 장인들의 고단한 삶의 한 단면을 엿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쓰레해진다.
축제, 진화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잔혹한 세계'이른 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동춘당공원으로 향한다. 저녁 7시부터 열리는 마지막 공연인 시립연정국악원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공원은 공연을 보려고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겨울옷을 입었는데도 싸늘한 날씨.
첫 순서는 관현악곡인 이강덕이 작곡한 '송춘곡'이다. 내 개인적 취향을 말한다면 난 국악관현악이라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서양의 오케스트라를 흉내낸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음 순서는 남도민요를 부르는 순서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두 사람의 창자가 '뱃노래'를 부른다. 세상에 부를 노래가 그렇게도 없을까. 정 부를 노래가 없거든 차라리 '노들강변'이라도 부를 일이지.
이어서 소금 연주가 이어졌다. 소금 소리는 언제 들어도 맑다. 영창 피아노 따위가 어찌 발벗고 따라오겠는가. 마지막 순서는 모듬북 함주곡 '타'란다. 세상에 '모듬회' 얘긴 들어봤다만 '모듬북' 얘긴 또 뭔가. 국적 불명의 음악이 판치는 세상이다. 어쩌면 '퓨전'이란 국악 또는 '우리 것'을 을 못 지켜 미안한 사람들이 즐겨찾는 용어인지도 모른다. 그 생소한 용어는 부끄러움을 감추는데 꽤 효능이 있는 모양이다.
공연이 시작된 지 1시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끝났다고 한다. 이상하다. 이렇게 공연이 일찍 막을 내린 적이 없는데…. "이어서 구청장님의 인사 말씀이 이어진다"라는 사회자의 이야기를 귓전으로 흘려들으면서 공연장을 나섰다. 언제 적부터 공연 '뒤풀이'가 단체장들의 인사말 자리가 되어 버렸는가.
이렇게 해서 이틀 동안에 걸쳐 열렸던 동춘당문화제는 막을 내렸다. 여전히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면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느낌이다. 여러 가지 전통문화에 대한 체험 코너도 새로 생겼고, 볼거리도 상당히 다양해졌다.
아직 부족하고 구태의연한 대목도 없지 않지만, 올해 동춘당문화제는 내년을 기대해도 좋을 만큼 알찬 내용을 가진 문화제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주민의 참여가 저조했던 대목이었다. 사실 '너희만의 축제'란 무의미한 것이다. 문화는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는 구경거리는 더더욱 아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