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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워크숍이 있어 전남 나주에 다녀왔다. 전세버스를 타고 나주에 접어들어 차창 밖을 보니 비탈진 산기슭에 함박눈이 가득이다. 솜처럼 새하얀 배꽃이 다투기라도 하듯이 배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차에서 내려 그 꽃무더기에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버스는 내 맘 따윈 아랑곳없이 눈요기만 시키며 연수원으로 향했다.

 

이번에 연구회모임이 있어 경북 영덕에 다녀왔다. 영덕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꽃길이다. 안동에서 영덕으로 이어진 34번 국도는 복사꽃이 한창이다. 달콤한 사탕 같은 핑크빛 복사꽃이 수줍은 아이의 볼처럼 발그레한 꽃빛으로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홍등가의 골목길은 그냥 지나칠 수 있었지만, 복사꽃이 흐드러진 꽃길에서는 손목이 잡히고 말았다. 술에 취한 듯 꽃멀미를 하며 카메라를 꺼내 개코처럼 킁킁거리며 꽃에 들이댔다. 영덕 가는 길은 복사꽃 '주모'에 손목이 잡혀 복숭아 '주막'에서 쉬어가듯, 그렇게 쉬엄쉬엄 지나는 꽃길이다.

 

 

봄이다. 잎이 나기도 전에 헐레벌떡 꽃을 먼저 피우며 봄맞이를 하는 산수유와 개나리와 진달래가 산과 들에서 봄을 여니, 농부의 쓰다듬을 먼저 받으려는 듯 배꽃과 복숭아꽃도 꽃망울을 터뜨린다. 봄은 이렇게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다.

 

봄은 올해만 온 것은 아니다. 작년에도 왔고, 내년에도 올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 생소하거나 신비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봄마다 꽃빛에 눈이 멀고 꽃내에 취한다. 마치 처음처럼 그렇게 말이다. 그러면서 덩달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도 흐뭇해진다.

 

계절에 봄이 있어 좋다. 봄에 꽃이 피어 좋다. 꽃에 흐뭇함이 있어 좋다.

 

 

 

배와 복숭아는 과실나무다. 장미나 백합처럼 꽃을 보기 위해 심는 것이 아닌 열매를 얻기 위해 심는 과실나무인 것이다. 과실나무의 꽃은 그저 열매를 맺기 위한 생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이 봄에 우린 열매 못지않게 꽃을 대하면서도 흐뭇함을 느낀다.

 

매번 맞이하는 봄이지만, 봄마다 피는 꽃이지만, 사람들은 꽃멀미를 하며 황홀함을 느낀다. 우리도 봄꽃처럼 주변의 사람들에게 흐뭇함을 주는 존재가 되면 참 좋겠다. 매일 만나는 가족과 직장동료지만 나로 인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기쁨과 위로와 희망과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금방 물리는 별미가 아닌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주식처럼, 우리의 존재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결과인 과일로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꽃인 과정으로도 충분히 인정받는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복사꽃에 취해 꽃멀미를 하며, 이 봄과, 이 꽃과, 그리고 이 삶을 곱새겨 본다.

 


태그:#복사꽃, #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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