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가 뭔 줄 알아?"

"뭔데?"

"그것도 몰라? 기자가 쓰면 기사야."

 

한 때 선후배들과 이런 썰렁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마도 기사 같지 않은 기사를 자조하거나, 엉터리 기사로 행패를 부리는 못된 기자짓에 대한 자학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 한마디 덧붙이곤 했다.

 

"아니, 넣어주어야 기사지."

 

데스크가 지면에 넣어주어야 비로소 기사가 된다는 말이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기사는 기자가 쓰지만, 지면에 실리지 않으면 그것은 기사가 아니다. 미완의 기사일 뿐이다.

 

빛 못본 '미완의 기사'... 가치 없거나 너무 크거나

 

이들 미완의 기사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기사가 될 뻔 했다가 결국 기사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미완의 기사 가운데 가장 흔한 부류는 우선순위에서 밀린 기사들이다. 지면에 실리고 방송을 타면 얼마든지 기사가 될 수 있지만, 지면과 방송시간의 제약으로 빛을 보지 못한 기사들이다. 미완의 기사 대부분은 이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유형으로는 '함량 미달' 기사가 있다. 기사가 꼭 갖춰야 할 구성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아예 기사 대상에서 탈락한 경우다. 언론사에 갓 입사한 수습기자들이 쓴 많은 기사들이 여기에 속한다. 선배 기자들의 추상같은 질책 속에 이들 기사들은 데스크에 올라가기도 전에 폐기처분되는 운명을 맞는다. 기사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건들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기사 구성요건은 갖추었지만 함량 미달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미 제기된 문제를 뒤늦게 새로운 사실 없이 다시 쓴 기사이거나, 아니면 보도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기사들이 이런 부류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기사 가치도 크고 기사 요건도 다 갖추었지만, 기사화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위험한 기사'다. 권력 핵심의 비리나 부패, 건드리기 힘든 금기의 대상을 정조준한 기사 같은 경우다. 그 파장이 클 수밖에 없어 보도하는 데 신중을 기하게 된다. 보다 더 확실한 물증 등 기사 내용을 뒷받침할 철저한 준비 때문에 보도가 늦춰지는 경우가 있다. 그 파장이나 부담 때문에 결국 빛을 보지 못하는 '빛나는 기사'도 있다.

 

마지막으로 언론사 안팎의 압력이나 부탁·청탁 등으로 빠지는 기사들이다. 외부의 압력은 '위험한 기사'일 때 많다. 별 기사가 아니지만, 안팎의 부탁이나 청탁으로 기사가 자취를 감추는 경우도 가끔 있는 일들이다. 보통은 데스크 등의 기사 가치 판단에 따른 것으로 포장되기 때문에 그 정확한 사유가 밝혀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 언론 전반으로 확산된 기사 가치 '논란'

 

새삼 기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허위 영농계획서 보도와 관련한 기사가치 판단 논란 때문이다. 이 논란은 <국민일보>에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언론 전반으로 확산됐다.

 

<국민일보> 기자들은 이동관 대변인이 농지법 위반 혐의가 제기된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일대의 농지를 매입하면서 관련 서류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한 사실을 밝혀냈다. 부인 명의로 이 농지를 매입하면서 꼭 필요한 농업경영계획서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했다는 것이다. 당시 국내에 있던 부인이 해외에 나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위임장을 작성하고, 농업경영계획서는 이대변인 자신이 대신 농사를 짓겠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들의 이런 취재 내용은 기사화되지 못했다. 기자와 <국민일보> 노조는 이동관 대변인이 편집국장과 사회부장 등 간부들에게 몇차례 전화를 걸어 이를 보도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사를 싣지 않기로 한 변재운 <국민일보> 편집국장 이야기는 다르다. '함량미달'이어서 기사를 싣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사를 들여다보니 기사가 안 되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동관 대변인의 불법 농지 취득은 다 알려진 내용"이라며 "취득 과정에 약간의 불법이 있었다는 데 그것은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새롭게 밝혀진 내용이 없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다.

 

기사도 보지 않고 "기사 가치 없다"?

 

그러나 이를 취재했던 기자나 사회부장, 그리고 노조의 판단은 다르다. 이동관 대변인의 기존의 해명을 뒤엎을 수 있는 파괴력이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농업경영계획서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했다고 한다면 이동관 대변인의 해명과는 달리 처음부터 이 농지 매입이 '불법'이란 사실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노조와 노보에 따르면 취재기자는 이동관 대변인으로부터 이 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확인'을 받았다고 한다.

 

변재운 편집국장은 "다른 부국장들의 판단도 기사가 너무 약하다는 것이었다"며 자신의 판단을 옹호했다.

 

하지만 변 국장의 이런 주장에 대해 <국민일보> 노조 관계자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일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변재윤 편집국장이 기사도 보지 않고, 기사가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사가 작성돼 내부 편집망에 오른 것은 4월 29일 밤 11시경. 변 국장이 기사가 안된다며 1면에 실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이보다 3시간 앞선 밤 9시경. 이동관 대변인의 해명을 듣고 난 다음이라는 것.

 

<국민일보> 노조 관계자는 이 때문에 "변 국장이 <국민일보> 편집국을 대표하는 사람인지, 이동관 대변인을 대리한 분인지 알 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변 편집국장 쪽에 선 <조선>과 <중앙>

 

과연 어느 쪽이 '함량미달'일까? 자사의 기자보다는 옛친구의 해명을 우선해 판단한 편집국장일까, 아니면 발품을 팔아 그래도 한 건을 건진 기자일까? 독자 여러분은 어느 쪽을 '함량 미달'이라고 판단하겠는가?

 

5월 1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국민일보> 편집국장 편에 섰다. 아니, 이동관 대변인을 좀 봐준 것인지 모른다.

 

<경향신문>은 <국민일보> 편집국장이 기사가 안된다고 판단한 이 내용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한겨레>도 비중있게 보도했다. 다른 신문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보도는 했다. 특히 이동관 대변인의 친정인 <동아일보>도 간략하긴 했지만 사태의 전말을 비교적 냉정하게 보도했다.

 

새삼 기사가 뭔지, 기자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되묻게 된다.


태그:#이동관 , #재산의혹 거짓해명, #국민일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