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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다시 아침 일찍 산책길을 나섰다. 나는 호텔에서 가까운 파리 남부의 몽파르나스(Montparnasse)에 가보기로 했다. 세느강변의 아침 공기는 상쾌했고 거리는 어젯밤에 내린 비로 젖어 있었다. 나는 이른 아침의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걸었다. 파리의 아침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파리의 아침거리. 아침 공기가 상쾌하고 거리는 밤에 내린 비로 젖어 있다.
▲ 파리의 아침거리. 아침 공기가 상쾌하고 거리는 밤에 내린 비로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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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짙은 구름 속에 싸여 있고 해가 뜬 동쪽 하늘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파리의 날씨는 흐릴 것 같았다. 나는 건물 아래 도로변에 주차된 조그만 소형차들을 구경하면서 걸었다.

나는 전철로 다섯 정거장 거리에 있는 몽파르나스 역에 가기로 했다. 유럽 철도를 이용하는 유레일패스 사용 개시를 프랑스 국철이 지나는 몽파르나스 역에서 등록하고, 스위스로 향하는 국제열차 좌석도 예약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오후 파리를 떠나는 리용역에서 다 처리할 수 있는 일이지만, 모든 여행 일정은 미리 준비해두어야 한다는 그 동안의 여행경험이 또 작용하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이동하는 나의 시간이 오후에는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입장할 수 있는 관광지도 없었기에 나는 파리의 아침 전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파리 시민의 출근길을 한번 감상해보고 싶었다. 나는 파리의 전철 6호선을 타고 이동하기 위해 호텔 부근의 듀프릭스(Dupleix) 역으로 향했다. 철로가 지상의 머리 위를 지나고 있어서 역을 찾기는 아주 수월했고, 지상에 설치된 역이라서 접근성이 아주 좋았다.

오래 전에 파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던 기억들이 가물가물했다. 나는 파리 시민들이 창구에서 지하철 표를 사는 것을 보고 창구로 갔고, 역무원 아가씨에게 직접 동전을 건넨 후 지하철 표를 샀다.

듀프릭스 역. 역이 아담하고 개방되어 있다.
▲ 듀프릭스 역. 역이 아담하고 개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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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지하철 역사보다는 작은 역사 안으로 전철 열차들이 엇갈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전철의 선로는 마치 경전철의 선로같이 좁아 보였고, 왕복 선로가 바짝 붙어 있었다. 역사 밖의 선로 위에는 전혀 지붕이 덮여 있지 않고, 그래서 열차 안에서 철길 주변의 건물들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선로 주변의 사무실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주변의 소음에 지쳐 있거나 적응되어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이른 시간의 전철 내부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지만 몽파르나스 역에 내리자 아침 출근길을 서두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파리의 큰 역답게 안내판에는 수많은 전철과 국철로 향하는 방향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나는 안내 표지판을 따라 파리 시민들에 섞여서 움직였고, 몽파르나스 역의 지상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았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의 역 밖으로 나왔다. 파리의 예술적 향취가 드문드문 남아있는 몽파르나스를 잠깐 둘러보고자 함이었다. 1차 세계대전 후에 많은 예술인들이 찾던 몽파르나스에는 아직도 중세의 고풍스런 건물들이 남아서 오늘 아침의 또 다른 햇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로변에 늘어선 일반 건물들에 세월이 쌓였고, 그 세월로 인해 이 건축물들은 계속 문화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몽파르나스 타워. 주변의 옛 건축물들과 어울리지 않지만 전망대에서의 전망이 좋다.
▲ 몽파르나스 타워. 주변의 옛 건축물들과 어울리지 않지만 전망대에서의 전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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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야를 가로막는 건물, 56층의 몽파르나스 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높이가 209m에 이른다는 이 건물은 이 도시에서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커다란 의문이 들었다. 수많은 검은 유리로 포장된 이 현대적 건물이 파리의 경관을 훼손하면서 왜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파리 도시 전체를 예술적 구조물로 가꾸고자 했던 프랑스인들의 판단력이 잠시 흐려졌던 것일까? 몽파르나스 타워는 아름다운 에펠탑에서 직선으로 동쪽에 연결되는 위치에서 에펠탑을 바라보고 있다. 에펠탑에 오르면 파리 경관이 잘 보이지만 에펠탑은 볼 수 없어서, 파리 전경과 에펠탑을 함께 볼 수 있는 건물을 만든 것일까?

몽파르나스 국철역 역무원. 유레일패스 개시일을 등록해 주고 있다.
▲ 몽파르나스 국철역 역무원. 유레일패스 개시일을 등록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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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 주변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서둘러 역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나는 몽파르나스 역 창구에서 오늘부터 이용하게 될 유레일패스의 개시일을 신고했다. 나는 금발의 머리와 수염까지 멋지게 기른 역무원 아저씨에게 유레일패스와 우리 가족의 여권을 건네주었고, 그는 왼손을 능숙하게 움직이면서 유레일패스 개시일과 가족의 이름을 유레일패스에 직접 기재해 주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유레일패스에 기재된 사항을 다시 확인하였다. 급히 보는데 순간 무언가 잘못 적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레일패스를 이용하는 내 이름 옆에 딸의 여권번호가 적혀 있는 것이었다. 내 이름 '노시경'과 딸 이름 '노신영'의 영문 이름이 너무 비슷해서 역무원이 여권 번호와 이름을 서로 바꾸어 기재한 것이다.

나는 재빨리 역 창구로 돌아왔지만 그 역무원 앞의 줄은 한참 길어져 있었다. 마침 내가 유레일패스 등록을 할 때 서너 줄 뒤쪽에 서서 기다리던 한국인 부부가 다음 차례였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사이는 아니었지만 외모를 보니 분명 한국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국적도 묻지 않고 한국말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 역무원과 이야기할 시간을 잠시만 달라고 하였다. 다행히 그들은 프랑스에 사는 친절한 한국 사람들이었다.

그 역무원은 내 유레일패스를 다시 확인하더니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기차를 이용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나는 강인하고 힘 좋아 보이는 인상의 백인 아저씨가 선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하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괜히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재차 확인을 하러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는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그가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오늘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가는 열차표를 예약하기 위해 몽파르나스 역의 국제선 열차 예약 창구를 찾아갔다. 남부로 통하는 철도의 기점인 몽파르나스 역에서 프랑스의 남부로 향하는 기차표와 그 외의 도시로 향하는 기차표는 별도의 창구에서 살 수 있도록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무도 나에게 와서 가르쳐주지 않기에 나는 물어물어 스위스 행 기차표를 예약할 수 있는 창구를 찾아갔다.

창구 앞에 선 줄은 빨리 줄지 않았다. 기차표가 우리나라처럼 순식간에 발매되지 않는 이유는 파리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워낙 많고 각 나라와 도시에 철길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특이하게도 자신들이 기르는 애완견을 데리고 와 기차표를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줄이 빨리 줄어들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호텔에서 일찍 길을 나섰지만 아까운 시간들이 역에서 낭비되면서 점점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선 줄은 일처리가 너무나 더딘 신참 역무원이 맡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줄을 잘못 선 것이다.

몽파르나스 예약창구 역무원. 내 티켓 예약을 제대로 못해서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했다.
▲ 몽파르나스 예약창구 역무원. 내 티켓 예약을 제대로 못해서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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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나를 두 번째로 당황하게 만든 이 친구는 정말 황당한 친구였다. 처음에는 파리의 몽파르나스 역에서 스위스 인터라켄 가는 차표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정보를 다 확인하고 왔으니 그럴 리 없을 거라고 했다. 그는 옆의 옆 창구의 고참에게 가서 물어보더니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했다.

그는 또 한참 동안 단말기를 두드렸다. 그러더니 인터라켄 가는 열차가 만석이라서 표를 구매할 수 없단다. 나는 표를 미리 예매하지 않아서 오늘부터 여행 스케줄이 꼬인다고 걱정을 하면서 다른 시간대의 기차표는 없냐고 다시 물어 보고 또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다시 고참에게 다녀오는 것이다.

그는 국제선 열차 시간표를 보고 다시 단말기를 두드리더니 내가 처음 말했던 시간의 인터라켄 행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기가 막히는 순간에는 할 말이 없는 법이다. 나는 내 뒤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예약표를 받아들고 역 창구를 나왔지만 마음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나의 여유있던 시간들은 사라지고 나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아침 일찍 에펠탑 구경을 가자고 조르던 신영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에펠탑은 관광객들이 몰려서 조금만 늦게 가면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내가 여행에서 가장 싫어하는 상황인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나는 지난번 파리 여행에서 숱하게 이용했던 파리 지하철 속으로 자신있게 들어섰다. 그러나 서두름은 헤맴을 남기는 법인가 보다. 나는 몽파르나스 역 승무원들과의 만남을 통해 2번을 헤맸고, 이 지하철 안에서 3번째로 헤매게 된다.

나는 파리의 수많은 출근 인파를 보면서 서울에서의 습관 때문인지 괜히 뛰다시피 걸었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던 나는 내가 6호선 전철의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파리 지하철 내부는 온 길을 다시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멀게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을 알면서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올라와야 했다.

몽파르나스 전철역 지하도. 아침 출근길이라 사람들이 많다.
▲ 몽파르나스 전철역 지하도. 아침 출근길이라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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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철과 전철 합하여 모두 5개의 역이 지나는 몽파르나스 역 지하는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나는 몽파르나스 역이 처음이었기에 파리의 지하철을 여러 번 이용했던 경험도 과거의 일일뿐이었다. 러시아워가 시작된 지하철역의 인파 속에서 나는 차분히 생각을 다듬었다. 일단 길을 잘못 들었으므로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길을 찾아가기로 했다. 나는 다시 지하철역 밖으로 나왔고, 괜히 다시 한번 친절한 역무원 언니들에게 듀프릭스 방향 6호선 전철 타는 곳을 물어보았다.

러시아워가 시작된 전철 내부는 수많은 파리 시민들로 꽤 혼잡했다. 나는 혼잡한 전철 안에서 내가 오늘 아침에 헤맨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를 기다리는 가족들을 의식해서 내가 너무 서둘렀기 때문일까? 파리에서 안타까운 시간들이 지나가는 것에 너무 화가 났기 때문일까?

6호선 전철내부. 출근하는 파리 시민들로 혼잡하다.
▲ 6호선 전철내부. 출근하는 파리 시민들로 혼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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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의 지하철 안에서 파리 시민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나의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파리의 시민들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서울에서의 출근길을 떠올렸다. 현재 이 사람들은 나를 한가한 여행객으로 보겠지만, 나도 서울로 돌아가면 이렇게 고생을 하며 출근을 하는 직장인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파리에서의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파리#프랑스#몽파르나스#유레일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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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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