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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갑작스럽게 아빠가 회사를 서울로 옮기게 됐다. 주말마다 대전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회사를 옮긴 후 첫 일주일. 방이 작다고 투덜댔던 우리 집이 얼마나 허전하던지…….

 

대전에서 출퇴근을 하실 때에도 아빠 얼굴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아빠는 고등학생이었던 나보다 일찍 출근하셨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도착할 때쯤 아빠도 퇴근하셨다. 아빠 얼굴을 자주 볼 수 없는 것은 예전과 다름 없었지만 오늘 밤, 다른 곳에서 아빠가 주무신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했다. 엄마도 마찬가지.

 

"아빠 만한 사람이 없다.", "아빠 같은 남자 만나야 돼."

 

아빠 밖에 모르는 우리 엄마 마음은 오죽할까. 
  
아빠는 서울에서 조그만 방 하나를 얻어 지내고 있다. 언젠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 엄마와 동생과 함께 아빠 자취방에 들른 적이 있었다. 대전에 계실 때 아빠는 집에 들어오면 양말을 아무 데나 휙휙 벗어 던지고 씻지도 않고 TV와 신문을 보셨다. 엄마와 내가 몇 번이고 잔소리를 하면 마지못해 씻고 주무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자취방이 얼마나 깨끗하던지. 우리가 방문할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깨끗할 수가 없었다. 옷걸이에 셔츠가 쭉 걸려 있었다. 책상의 서류가 차례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아빠 향기의 일부였던 담배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빌라도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했다.

 

"아빠 방 맞아? 왜 이렇게 깨끗해?"
"맞아. 집에서는 완전 지저분한 곰이었잖아."

 
동생과 내가 아빠를 놀렸다. 집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시는 아빠. 다행이었다. 생각보다 아빠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빠 끼니 걱정이 됐지만 회사에서 세 끼 모두 제공해 준다고 한다. 대전에서 보다 일도 더 수월해서 잠도 많이 잘 수 있고 덕분에 여가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틈날 때마다 아빠가 좋아하는 운동도 할 수 있다고 하니 잘된 일이다.

 

아빠와 기차역에서 헤어진 뒤, 우리는 대전으로 내려왔다. 기차 타고 내려오는 내내 엄마 안색이 좋지 않았다. 서울까지 오가는 길이 피곤했나 보다고 생각했다.
 
"너희 아빠 때문에서라도 빨리 서울로 이사 가야겠다."

 

엄마는 아빠 자취방을 보고서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하셨다. 가족들은 대전에 있는데 홀로 서울에서 생활하는 게 너무 안쓰러웠단다. 힘들게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옆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나와 동생이 없으니 얼마나 외로울까. 나는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빠가 없는 대전집이 허전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혼자 고생하시는 아빠를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아직 주말 부부다. 나와 동생의 학교 문제와 막상 이사를 하려고 하니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이런 생활이 익숙해지긴 했다.


아빠가 오시는 주말이면 우리 집은 풍성하다. 아빠가 좋아하는 반찬, 찌개, 과일 등 진수성찬이다. 아빠를 위한 상차림이다. 대신 평일에는 소박한 밥상이 되어 버렸다. "있는 반찬 그대로 먹는 거지, 뭐"라고 말씀하시는 엄마 덕분에 동생과 나는 불평하지만 말이다.

 

일요일 오후. 엄마는 깨끗이 세탁한 셔츠와 바지 여러 벌을 다림질하신다. 한꺼번에 일주일 치의 옷들을 다림질하시니 일요일마다 엄마 팔은 수난이다. 내가 하겠다고 나서본다. 하지만 내 서툰 다림질 솜씨가 답답하다며 1시간여 정도 혼자 다 하신다.

 

아빠 옷은 손수 다려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거, 왠지 알 것 같다. 수건, 양말, 손수건을 차곡차곡 갠다. 가방에 정리해 담으면 끝. 일주일 간 혼자 생활하게 될 아빠를 위한 것이다. 사소한 일이지만 하나하나 정성껏 챙기시는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월요일 아침. 아빠가 출근하실 때는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안달이시다. 아침이라도 굶고 가는 날엔 큰일이 나는 줄 아시는 우리 엄마. 서울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먹으라고 과일을 주섬주섬 챙겨주신다. 아빠는 "쑥스럽게 이런 걸 혼자 어떻게 먹어"라며 거절하지만 좋으신 눈치이다.

 

문자를 보내면 항상 전화로 답이 오던 아빠. 핸드폰 주소록 사용법 몰라서 다이어리에 적은 번호 일일이 쳐서 답문하던 엄마. 두 분께서 이제 문자로 대화도 하신다. 물론 전화를 더 애용하시지만 말이다. 대전과 서울. 지내는 곳도 다르고 서로 생활 패턴도 달라졌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함 없는 듯하다.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나도 결혼하면 이렇게 사이 좋은 부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미래의 남편에게 다정한 아내가 되고 싶다. 일편단심 민들레 우리 엄마처럼. 우리 가족이 하루 빨리 합쳐졌면 좋겠다. 함께 있는 행복한 엄마 아빠를 매일 보고 싶기 때문이다.


#DAKAN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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