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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커밍아웃>
 tvN <커밍아웃>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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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제가 아는 사람들만 해도, 벌써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 때문에 죽은 사람이 3명이나 돼요. (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 적어도 내가 '게이'라는 사실 자체는 제가 잘못한 게 아니거든요. 커밍아웃, 처음이 어려운 것 같아요. 아무도 안 해봤으니까, 하나둘씩 빛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 <커밍아웃> 1회 출연자 이종현씨의 말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게이(gay)'.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게이'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 tvN <커밍아웃>이 주목 받고 있다. 제목만큼이나 내용이 선정적이라서? 아니다. 놀랍게도 "슬프다, 감동적이다"는 반응이 더 많다.

TV에서 커밍아웃?... "감동적이라는 반응 많다"

방송 구성은 이렇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스튜디오에 나와 "나는 동성애자입니다"라고 밝힌다. 모자이크 처리 같은 거? 없다. '생(生)얼'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커밍아웃>에선 이 모든 과정이 휴먼 다큐멘터리로 그려진다.

방송이 끝날 때마다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격려, 질타 등의 글이 수십 건씩 올라온다. 지난 4월 14일 첫방송을 내보냈을 뿐인데, 시청률 1%를 넘겼다.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 방송시간이 새벽 0시(매주 월요일 방송)란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첫 방송 일주일 뒤 전파를 탄 두 번째 이야기의 시청률 자체 집계 결과는 1.24%. 나쁘지 않은 성적이건만, 연출을 맡은 최승준(35) PD는 "좀 더 욕심을 부렸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지난 4월 30일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tvN 사무실에서 최승준 PD를 만났다. 오랫동안 잠을 못 잤는지, 다크 서클이 눈에 띄었다. 다음은 최승준 PD와의 일문일답.

<커밍아웃> 최승준 PD.
 <커밍아웃> 최승준 PD.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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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 생경한 소재라 접근부터 쉽지 않아 보이는데, 어땠나요?"쉽진 않았어요. 회의를 하다 '게이'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안이 나왔어요. 일단 '게이'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게이를 만날 방법, 모르잖아요? 그래서 (커밍아웃을 한) 홍석천씨를 찾아갔어요. 소개를 받아서 얘기도 해보고, 인터넷 커뮤니티 '이반시티(ivancity.com)'에도 글을 올렸어요.

막상 해보니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갔죠. 좌절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2개월 만에 처음, '얼굴을 밝히겠다'는 사람이 나왔어요. 그런데 촬영을 앞두고 취소됐어요. 가족 때문에…. 대부분 가족이 피해 입을까봐 꺼리죠.

출연자 한 사람 설득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1회 출연자(이종현)는 촬영 2개월 전부터 알았어요. 본인 의지도 좀 있었고요. 2회 주인공(김지후)은 사실 재연 연기자로 지원했는데, 게이더라고요."

-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동료 PD들은) 처음엔 뭐하는 프로그램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약간 선정적일 거라는 생각만 했었죠. 그런데 보고 나서는 되게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감동적'이래요. 저는 그게 제일 좋아요. '감동적'이라는 그 말이. 솔직히 짜낸 감동은 아니에요. 출연한 이종현씨랑 김지후씨가 주는 감동이지…. 제작진이 주는 감동이 아닌, 그 사람들의 오랜 고민과 진심이 그대로 전달된 것뿐이죠."

"억지로 출연자 섭외? 짜고 치는 건 불가능"

- 현실에선 좋지 않은 문화도 있는데 "너무 밝은 면만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게이들 문화 중엔 소수자로 고통받는 문제도 있지만, 사람이니까 게이 찜질방·가라오케 등 음성적인 안 좋은 문화도 있어요. 이번 기획은 휴머니즘적인 관점에서 '동성애를 인정해야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이에요.

여기에 매춘이란 다른 개념이 들어가면 어려워져요. 사실 매매춘이라고 하면, 일반인도 다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다행히 '휴머니즘이 프로그램에 녹아져 있다'는 의견이 많아요. 시청자들이 우리 프로그램이 진정성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셔서 감사해요. 휴머니즘 얘기하기가 되게 부끄럽고,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 그래도 어느 정도 기준이 있을 것 같은데요?
"고발보다는 '커밍아웃'답게 다룰 생각이에요. 마이너리티를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가십거리, 선정적으로 다뤄 버리면, 누가 나오려 하겠어요. 그렇다고 게이 문화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도 덮어두기도 애매한 상황이에요. 음성적인 문화를 다루더라도, '커밍아웃'답게 다루려고 해요. (한참 생각하더니) 해답은 계속 찾아갈 생각입니다."

- 섭외가 어렵다고 했는데, 사정에 따라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는 그런 적 한 번도 없어요. 앞으로도 짜고 할 수도 없어요. 어떻게든, 끝까지 섭외를 해야죠. 커나가고 있는 과정이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 중에 나오길 원하는 분들이 있어요. '게이'라는 뜻이 넓게 보면 레즈비언도 포함되거든요. 지금 만나고 있어요. 다뤄보고도 싶고요."

엄마 같은 이성애자 정경순, 녹화 때마다 우는 홍석천

tvN <커밍아웃>의 두 사회자, 정경순과 홍석천.
 tvN <커밍아웃>의 두 사회자, 정경순과 홍석천.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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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껏 출연자들이 예쁘장한 얼굴에 여성스러운 성격이어서 "외모만 보고 뽑는다"는 등 의혹들도 제기되고 있는데요.
"절대 외모가 출연 기준은 아닙니다. 갖고 있는 사연이 기준이에요. 대학생 이종현씨를 첫 방송으로 고른 이유는, 이 친구가 바르고 올곧기 때문이었어요. 게이는 다 변태고, 사회부적응자고, 이런 쓸데없는 오해를 할까 봐서. 그래서 가장 반듯하고 열심히 사는 종현씨를  택한 거예요."

- 신청자는 많나요?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을 받고 있는데, '물밀듯 쇄도', 이렇진 않아요. 사실 그럴 수가 없어요. 얼굴을 드러내니까. 또, 신청했다고 다 출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전에) 한 대학생이 왔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는 애였는데, 커밍아웃 이후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거든요. 이 친구가 선생님 준비하는 애라 고민하다가 '위험하다. 하지 말자' 했죠. 신청자들은 20대가 많아요. 30대도 있고요. 40대는 없어요."

- 홍석천씨와 함께 배우 정경순씨가 공동 MC를 맡고 있는데요. 정경순씨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일반인의 시각이 필요했어요. 특히 정경순씨는 영국 유학 시절 룸메이트가 게이였다고 그러더라고요. 한국에도 게이 친구들도 많고요. 게이에 대해 거부감이 없고, 익숙하면서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일반인이죠. 실제로 정경순씨는 아주 일반인적인 시각을 보여줬어요.

4회 녹화 때, 올해 21살인 출연자가 어머니에게 커밍아웃했어요. 어머니가 마음아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네가 참지, 왜 엄마한테 상처주면서까지 커밍아웃해야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홍석천씨랑 견해차이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그런 시선이 한 방향으로 안 흐르고, 중심을 잡아주는 것 같아요. 보통 3시간 동안 촬영하는데, 홍석천씨는 녹화할 때마다 항상 울어요. 만날 울어서 '나 너무 진 빠져서 힘들어 죽겠다'고 해요."

숨어서 보지 말고 부모님과 함께 보세요

- 출연자들 출연 이후 삶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아요.

"5회에 나갈 거예요. 1·2·3회 출연자 방송 이후의 생활을 보여줄 생각이에요. 보통 구성과는 다른 특집으로요."

- '재연'하는 부분이 꽤 되잖아요? 키스신도 있는데 배우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재연 배우는 일반 연기자들이에요. 대부분 키스신 나올 때 난감해 해요. 그래도 옛날보다는 좀 달라졌어요. 게이코드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잖아요? <후회하지 않아>나 <브로크백 마운틴> 등등. 하지만 출연 연기자들도 좀 힘들어 해요."

- <커밍아웃>, 앞으로 어떻게 꾸려갈 생각인가요?
"시즌제로 가거든요. 한 시즌이 12개예요. 4회까지 찍었으니까, 이제 1/3했네요. 다음 시즌은 첫 번째 시즌 끝날 때쯤 생각하려고요."

-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들이, 출연 이후에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진짜, 진심으로. 자기 가족·형제들과 모니터했을 때 부끄럽지 않았으면 해요. 종현(1회에 출연)씨도 이 프로그램하고 나서, 부모님도 응원을 보내주셨대요. 다니던 교회 목사님도 '왜 진작 말 안 했느냐'며 다독여주고. 그리고 (잠깐 고민하더니) 좋아하던 사람도 생겼대요. 방송 보고 메일 주고 받다가요."

- 마지막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시청자들이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보고 싶은데, 보고 있다가 내가 이거 보고 있는 거 보면 게이로 오해받을까 봐 혼자 있을 때밖에 못 본다'는 의견도 있어요. 프로그램이 선정적이지 않거든요. 진짜 학부모님들이 보셔도 돼요. 겁먹지 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고, 자녀들이랑 얘기도 해보고. 청소년 가운데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아요. 정체성 고민한다고 다 '게이야' '게이로 살아라'가 아니라, 알아야 대응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들은 환상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평범함 사람일 뿐"
tvN <커밍아웃> 제작진들의 못다 한 '말말말'

<커밍아웃>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청자 소감. 동성애자들이 솔직하게 감상을 털어놓는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커밍아웃>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청자 소감. 동성애자들이 솔직하게 감상을 털어놓는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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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해요. 한창 남자 만날 때 게이만 만나게 하고."

tvN <커밍아웃> 최승준 PD는 요즘 이 말을 제일 자주 듣는다고 했다. 누구에게? 한 배를 탄 작가들로부터다. <커밍아웃> 팀원은 모두 11명. 최 PD를 포함한 연출자 6명, 나머지는 전부 작가다. 게다가 전부 여자다.

출연자가 워낙 귀하다 보니 팀 전체가 '사람 찾기'에 혈안이 돼있는 상황. 밤낮을 가릴 여유조차 없다고 한다. 게다가 여자 작가들에겐 눈만 떴다하면 보는 이들이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이니, 이런 푸념이 나올 법도 하다. 양지선 작가의 한 마디는 살짝 야하지만, 정곡을 찌른다.

"뭔가 아쉬운 2%! 이들 모두 그림의 떡! 못 먹는 감이라는 것!"

나머지 작가들도 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그동안 말 못했던 한 마디를 물었더니, 답변이 너무 진지하다.

"많은 동성애자분들이 우리 프로그램을 계기로 유쾌하고 기쁜 마음으로 세상을 살게 되길 바랍니다."(박경진)
"게이 친구들 덕분에 제 삶도 보다 유쾌해졌다는 것에 무한 감사합니다."(양희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삶속에 나도 녹아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새삼 보람을 느꼈다. 난 언제까지나 그들의 인생에 함께 동행 할 준비는 되어 있다."(이지은)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당신들은 이미 내 사람들이에요. 당신이 힘들면 나도 힘들어요. 제 걱정은 말고 방송 준비 하세요. 난 아무래도 괜찮아요.' 그래서 저는 다시 힘을 냅니다."(김현진)

다음은 연출자들이 남긴 한 마디.

"프로그램의 진정성과 선정성, 그 끝없는 갈등! 아, 외롭다."(윤상진)
"게이가 주인공인 방송이 식상해지는 그런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들의 눈물 앞에서"(박희연)
"아직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 중입니다."(김선종)
"어린 시절 접해 본 '야오이 물' 속 그들과 이들은 다릅니다. 환상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까요."(김연진)

이 쪽도 진지하기는 마찬가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이기자네이야기(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커밍아웃, #최승준 PD, #인터뷰, #TVN, #게이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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