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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는 특성을 보여준다. 어른들이 "그 아이랑 놀지 마라"고 하면 아이들은 그 아이와 놀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그 아이의 집안 배경을 건드리며 그들을 폄하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빠짐없이 기억해내 어김없이 동기한테 상처를 준다.

이미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을 아는 어른으로서는 끝이 빤히 보이는 길로 아이들이 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이라면 그 나이에 맞는 환상을 꿈꿀 수 있는 자유를 누려야 하지 않을까.

 <거미 길들이기를 배운 날> 책표지.
 <거미 길들이기를 배운 날> 책표지.
ⓒ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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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타 리히터의 소설 <거미 길들이기를 배운 날>은 바로 이러한 어른들의 성숙한 시선에 상처받으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아이 메헨의 시선을 따라 적어 내려간 작품이다. 별명이 밥맛없는 애인 '라이너'를 어른들,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 싫어한다.

그러나 그 근간을 추적하다 보면 그 아이가 밥맛 없는 애로 치부대는 이유는 어른들의 왜곡된 시선 때문이다. 충분히 어른들의 필터로는 라이너는 집안 자체는 콩가루다. 그러나 콩가루라는 개념자체도 참 상대적이다. 결점 없는 가정이란 없기에 모두 상대방에게는 나의 집안도 콩가루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무서운 고양이의 습격에 움츠리던 메헨을 꺼낸 것도 커다란 괴물 거미를 만나 소스라치게 놀라던 메헨을 구해준 것 역시 어느 아이들이 아닌 바로 밥맛 없는 아이 '라이너'였다. 라이너의 본질을 알려는 순간 어른들의 편견으로 라이너는 일순간 밥맛 없는 아이로 개성 하나 없는 아이가 되었다.

메헨 본인조차 나쁜 생각인 줄 알면서도 "다들 싫어하는 앤데, 어떻게 나만 혼자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겠어?"라는 생각 하나로 라이너를 외면하고자 한다. 누가 보채지 않아도 메헨 역시 수년 후엔 어른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고, 그곳에서 메헨은 사회의 흐름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눈 질끈 감고 친한 사람조차 외면할 일이 비일비재할 터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보다 빨리 메헨이 어른이 되길 바란다. 밥맛 없는 아이로 낙인 찍힌 아이와 노는 대가로 자신들의 아이가 남들로부터 배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메헨 조차 자신에게서  멀어가는 모습에 라이너는 담담하게 한마디한다. "넌 이제 '내 친구'가 아냐!"라고. 라이너와 함께 달아나서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으면 바라는 메헨은 욕망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그저 서서 독백만을 할 뿐이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아동들은 자신들의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책에 열광한다고 한다. 웅진주니어 대표 이미혜씨도 학교생활에 상처를 받아 잘 적응하지 못한 아이가 동화 <나쁜 어린이표>(웅진주니어) 속 주인공 건우의 아픔을 이해하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했다고 말한 바 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이렇듯 동화를 통해 '나만의 감정이 아니었구나', '나만의 상처가 아니었구나…'라는 깨달음을 통해 어른세계와 자신들의 세계의 간극을 채워나간다. 그런 점에서 <거미 길들이기를 배운 날>은 그 간극을 외면하지 않고 정확하게 파고 들어 지적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거미 길들이기를 배운 날

유타 리히터 지음, 남문희 옮김, 자음과모음(이룸)(2006)


#유타 리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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