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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겐 '알 권리'가 있다. 국민은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 대한 검역을 정부가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당연히 '알아야' 한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대한 모든 논쟁은 '헌법'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것이 필자의 일관된 논리다. 역시나 헌법재판소는 일관되게 말한다.

 

"알 권리의 핵심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 즉, 국민의 정부에 대한 일반적 정보공개를 구할 권리라고 할 것이며…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핵심이 되는 기본권이라는 점에서 국민주권주의(제1조), 각 개인의 지식의 연마, 인격의 도야에는 가급적 많은 정보에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제10조) 및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제1항)와 관련이 있다 할 것이다." - 1992.2.25. 89헌가104, 판례집 4, 65, 93 등 다수

 

그런데, 정부는 '굳이 알 필요 있느냐' 식이다. 그리고는 시장만능주의에 따라 소비자인 국민이 "알아서 사먹든지 말든지"하면 될 문제라는 태도다. 하지만 이런 태도야말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건강권과 국가의 국민에 대한 보호의무를 저버리는 망발 수준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해둔다.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먹어라?

 

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시장논리'로 '정보공개 거부'를 한 번 따져보자. 소비자가 쇠고기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쇠고기 품질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미국산 쇠고기가 자유로울 수 있는지, 아니면 그저 싼 게 비지떡인지를 알아야 선택할 거 아닌가. 눈 가려놓고 무조건 상품의 '가격'만으로 '선택'하라는 시장이 사회주의 경제 말고 지구상 어느 곳에 존재할까?

 

어처구니없게도 이 정부는 철저한 시장경제를 주창한다. 그런데 공급과 무역에서만 시장의 개념을 강변하고, 소비의 측면에서는 근본적으로 시장주의를 무시한다. 시장은 시장참여자를 전제로 한다. 공급자와 소비자가 바로 그것이다.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소비자는 가격과 품질 등 여러 측면에서 접근 가능한 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결정'을 한 뒤 구매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을 진다. 이것이 바로 자유주의가 전제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전제하는, 자본주의 시장이 전제하는 인간관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쇠고기에 대한 '알 권리'조차 충족시켜주지 않으면서 사실상 선택을 강요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지극히 '반시장적'인 행위다.

 

그래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4월18일,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상대로 합의문 공개를 요구했다. 알 권리에 기초한 주권자로서의 기본권 행사이자 시장의 소비자로서 당연한 선택권의 행사였다.

 

그런데 합의문 공개가 거부됐다. 5월 2일 민변은 서울행정법원에 정 장관을 제소했다. 이런식의 수순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기에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헌법상 '알 권리'에 근거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제도는 예나 지금이나 그저 법전 속의 제도일 뿐이다.

 

거부 사유로 든 '자구 수정'이라는 핑계 또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통상관료들의 상습적 행위이자 '메뉴얼'이다. 지난해 4월 한미FTA가 타결된 직후에도 이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역시 정부는 처음에는 자구수정이라는 이유로, 그 다음에는 영문본 밖에 없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며 협상내용을 기정사실화해갔다. 심지어 50여 일이 지난 다음 비로소 협정문을 공개하고도 "최종본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협정문 서명 이전까지 일부 문안의 수정 가능성이 있다"(2007.5.25. 김종훈 수석대표)며 철저히 책임을 회피해 나간 전례가 있다.

 

뭐가 두려워 수입관련 정보공개 안 하는 건가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정보공개를 거부한 것이 올해만도 벌써 네 번째다. 이런 식으로 거부해 나가면서 시간을 끌고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어느 순간 쇠고기 협상 관련 회의록 등 협상성과를 판가름할 핵심문서들은 국가기밀로 묶어 일체의 접근을 불허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내용이 알려지면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 아니라 '국가기밀(?)'을 누출한 행위로 몰아부치며 마녀사냥을 일삼을 게 뻔하다. 언론의 '알 권리'가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닌 기자 자신들의 '일신전속적 알 권리'로 착각하고 있는 일부 언론기관은 순전히 '한미 관계'라는 이유만으로도 여기에 편승할 것이다.

 

이런 정부도 2일 광우병의 실상을 정확히 알리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산 쇠고기가 결코 불안하지 않다는 항변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두려운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면 검역조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고 협상내용을 공개하더라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을 것 아닌가.

 

 

아예 논란이 되고 있는 모든 부분을 공개하면 된다. 정부 내의 각종 검토보고서부터 협상회의록 등은 물론 과연 한미FTA의 선결조건이었는지 판별할 수 있는 관련 문건, 대통령의 지시사항, 대통령이 어떻게 먼저 알았는지 여부, 전 정권에서의 협상은 어느 정도 진행됐었는지 등의 관련 문서를 공개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분명 반(反)시장적인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이 문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도리어 '정치논리'라며 매도하기도 한다. 경제논리는 선(善)이요, 정치논리는 악(惡)이라는 편협한 이분법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과 관련된 대통령과 정부의 결단 자체가 곧 '정치행위'다. 여기에 대응하는 주권자의 기본권에 근거한 의사표현 또한 중요한 정치행위다. 보다 근본적으로 주권자의 정치적 선택, 수입쇠고기 등과 같은 중요 의제에 대한 의사의 '표현과 결정' 자체가 곧 정치다. 우리는 왕정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직결되고 국민의 건강권 그 자체이기에 경제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정치적 접근은 더욱 중요하다. 경제는 선이고 정치는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논쟁 자체를 봉쇄하려는 일종의 메카시즘적 분위기가 조성될 기미다. 쇠고기 검역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친미와 반미'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할 태세다. 굳이 덧붙이자면 일부 언론과 한나라당의 이런 방식의 문제제기야말로 가장 부정적인 의미의 '정치논쟁'이다.

 

차라리 '규제완화 정부'라고 말해라

 

차라리 이 정부는 '규제완화 정부'라고 말하는 게 낫다. 왜곡된 쇠고기 시장을 정상으로 돌리는 '친시장적 조치'라고 강변하는 편이 훨씬 어울린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식품관련 규제를 완전 철폐해라. 식품을 생산하는 농지에 대한 규제도, 대지에 대한 규제도, 토지에 대한 규제도 아예 철폐하라. 그리하여 더 이상 '강부자'라는 용어 자체를 없게 하라. 청와대 비서진이나 각료들이 이런 '규제'와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이 맘껏 일하게 하라.

 

다시 되돌아 와 이번 기회에 중국산이든 미국산이든 수입식품안전 업무에서 국가는 완전히 손을 떼라. 그리고 시장에 내맡겨라. 국민과 소비자와 시장을 믿고 시장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게 하라. 그렇다면 차라리 국민은 수입쇠고기와 관련된 정치적 의사결정 시장에서 가장 국익과 소비자의 이익에 어울리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정보는 공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공개가 정상이고 공개가 비정상인 '외눈박이 시대'가 되고 만다. 신민(臣民)이 아닌 주권자라면 국민은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


태그:#미국 쇠고기, #알권리, #정운천,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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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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