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원도 영월군, 550년 전 단종이 유배를 당했던 '청령포'의 화장실.
 강원도 영월군, 550년 전 단종이 유배를 당했던 '청령포'의 화장실.
ⓒ 최육상

관련사진보기


소년왕 단종이 궁궐에서 쫓겨나 유배 생활을 하던 곳

'욕심을 버리는 집.'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 주차장에서 눈길을 잡아 끈 화장실 안내 글귀입니다. 화장실을 가리켜 근심을 푸는 곳, '해우소(解憂所)'라 불렀던 조상들의 여유로움을 넘어서는 멋진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청령포'가 어디입니까. 소년왕 단종이 궁궐에서 쫓겨나 유배를 당했던 곳입니다. 단종은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절벽으로 갇힌 청령포에서 옴짝달싹 못하며 한을 삭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화장실이 '욕심을 버리는 집'이라니, 왕위에서 물러난 단종의 마음이 그러했을까요.

작은 아버지(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은 자신의 복위를 꾀하던 사육신의 처참한 죽음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17살의 나이에 유배를 당해 청령포에서 갇혀 지내던 단종은 4개월 후 시신을 옮기면 삼족을 멸하겠다는 세조의 엄명 아래 죽임을 당해 서강에 버려졌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영월의 호장(戶長) 엄홍도가 목숨을 걸고 몰래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묻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단종이 잠든 장릉에는 엄홍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이 함께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배를 이용해 청령포로 들어가니 단출한 가옥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도 청령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550년 전 단종의 유배생활이 얼마나 험난했을지는 충분이 예상하고도 남습니다. 더욱이 피 끓는 청춘의 나이에 부인(정순왕후)과 생이별을 했으니, 그 심정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청령포 한 자락에 자리한 수령 600백년 소나무 '관음송'. 단종의 유배생활을 모두 목격한 산 증인이다.
 청령포 한 자락에 자리한 수령 600백년 소나무 '관음송'. 단종의 유배생활을 모두 목격한 산 증인이다.
ⓒ 최육상

관련사진보기


'욕심을 버리는 집', 이 글귀가 꼭 걸려야 하는 곳은?

청령포 한 자락에는 수령 600백년이 넘는 소나무 '관음송(觀音松)'이 두 갈래로 갈라져 하늘로 치솟아 있습니다. 단종이 흘린 눈물과 통곡, 한을 모두 지켜 본 산증인이랍니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꼿꼿이 바로 서 있는 한 갈래는 단종의 곧은 마음을, 서울 쪽으로 기울어진 한 갈래는 남겨두고 온 부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배를 타고 청령포에서 나와 다시 한 번 '욕심을 버리는 집'에 들렀습니다. 단종과 세조가 권력을 놓고 벌였던 당시의 치열한 쟁탈전이 눈에 선합니다. 지나간 역사에서 권력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도대체 권력이 무엇이기에 피를 나눈 혈육도 무참하게 도륙을 하는지….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렸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역사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문득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정말 아쉬울 때와 그 아쉬움이 해소된 뒤 행동이 크게 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경계하며 지적하는 말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람이 있다면 '욕심을 버리는 집', 이 글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 계신 '청와대'에도 걸렸으면 합니다. 국민들에게 통사정을 해서 청와대에 들어가 놓고는, 임기를 채우는 동안 마음이 달라지지 않길 바라는 뜻입니다. 물론 나올 때의 마음 역시 다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강부자 내각, 고소영 라인, 부동산 정부 등 '욕심'으로 인해 숱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청와대는 버려야 할 욕심이 정말 많습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욕심, 재물과 부를 탐하는 욕심,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욕심, 부정과 비리를 범하는 욕심…. 청와대야 말로 '욕심'을 모두 버려야 생활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영월을 다녀오며 배운 것이 있다면 단종이 청령포에 남겨놓은 '욕심을 버리는 마음'일 겁니다.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욕심'을 버리고, 멀고 길게 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 강원도 영월의 '선돌'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욕심'을 버리고, 멀고 길게 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 최육상

관련사진보기



태그:#단종, #영월, #청령포, #장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