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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세라 워터스 |번역 : 최용준 |열린책들
 |작가 : 세라 워터스 |번역 : 최용준 |열린책들
ⓒ 오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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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이야기.  비밀스러워서 더 유혹적인 이야기. 바로 소설 '핑거 스미스'가 풍기는 느낌이다.  누군가 오래 전에 벽장 속에 숨겨둔 일기를 읽는 느낌.

Finger Smith는 '소매치기'를 뜻하는 영국 은어이다. 그 제목은 굴곡 많고 찐득한 인생사의 냄새를 풍긴다. 작가 역시 finger smith 라는 제목 못지 않게 여우 같은 술수를 부린다.

반전이란  대부분 마지막에 등장한다. 괜찮은 영화 속에선 보통 마지막에 2번의 반전을 겹쳐 놓는다. 이 작품은 그보다 더 영악하다. 겹겹이 쌀아 놓은 속임수에 독자들은 당황하면서도 마음을 사로잡힌다. 핑거 스미스는 바로 다름 아닌 작가 '세라 워터스'이다. 독자의 시선을 훔치는 핑거 스미스.

엉켜버린 운명에 맞서는 두 여인의 사랑 이야기. 한 여인은 대도시 런던의 더러운 뒷골목 소매치기. 다른 여인은 시골 대저택에서 부자 삼촌의 성애 소설을 읽어주고 관리하는 비서. 그들의 운명은 마치 비익조 전설과도 같다.

뒤바뀐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만날 수도, 날 수도 없었다. 두 마리 새가 날기 위해 서로의 자리를 되찾아 가는 질척한 운명 이야기가 소설 '핑거 스미스' 속에서 열정적으로 펼쳐진다.

이야기의 순서는 바르지 않다. 전체적으로는 연결된 내용이 부분으로 나뉘어 조각별로 펼쳐진다.  두 주인공 각각의 시선으로 나뉘어 서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 방식은 은밀함과 흥미를 두배로 증가시켜 독자들을 사로잡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두 주인공 '수'와 '모드'. 그들은 남자와 여자가 아니어서 더 비밀스럽고 여자와 여자라서 더 섬세하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야릇한 보랏빛의 부드러운 실크 드레스를 만지는 느낌이다. 여성스럽고도 견고한 플롯의 실크 드레스에, 통속적이지만 신비로운 보랏빛이 매혹적으로 잘 조화된다.

또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였기 때문에 숨겨졌던 일기의 오래된 책장 냄새 까지도 풍겨 21세기에 사는 독자들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영국이 어떤 나라인가. 세계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그 나라의 역사는 영국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전세계인의 주목을 계속 받을 것이다.

이처럼, 작가가 선택한 역사적 배경은 영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같은 먼 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을 보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된다.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작가 스스로 레즈비언 '역사' 소설이라고 칭하고 있음에도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대 배경만 19세기일 뿐이지 사건 자체는 시대 상황과 다분히 독립적이다.

이 소설에서 '역사'는 삼촌의 성애 소설에 집착하는 변태적 취미라든가 두 주인공의 기괴한 삶을 연출하는 교수형이나 정신병원 같은, 소설의 암울한 비밀스러움을 연출하기 위한 도구로만  쓰여진 느낌이다. 2중, 3중으로 쌓인 음모와 배신 그리고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이야기에 '역사'라는 옷을 입혀 다소 고급스러워 보이고 싶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책의 부록으로 실린 '작가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녀 스스로 19세기 센세이션 소설에 열중하였다고 이야기한다. 흥미를 위해 센세이션 소설의 전통을 살리면서 현대의 편견도 언급할 수 있는 (p715) 자신 만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얘기하는 그녀는 융통성 없는 원리주의자는 분명 아닌 듯 싶다.

그녀는 교묘하게, 통속성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대중성도 살리면서 편견을 해소하는 도구로도 이용한다. 그리하여 인기를 획득함과 동시에 '통속'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비판의 여지까지도 무마 시켜 버리는 마녀 같은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이러한 특성은 때로는 영악하게, 때로는 가련하게 운명에 맞서는 두 주인공의 삶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독자들 뿐만 아니라 평론계에서도 평가가 좋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2번이나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의 인기를 더욱더 실감하게 하며 이미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 드라마의 감상문을 인터넷에 올려놓고 있다.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거나 머리를 식히고 싶다면 이색적인 소설 <핑거 스미스>를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탈출구가 될 것 같다.

* 센세이션 소설 : 본능과 호기심을 자극하여 대중의 인기를 끄는 소설


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2006)


태그:#핑거스미스, #세라워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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