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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주말마다 제주의 시골 마을을 찾아 탐방을 떠나는 것은 최근 제게 찾아온 큰 기쁨입니다. 시골 정서가 흠뻑 묻어나는 사투리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저는 그 분들의 일부가 됩니다. 이젠 이런 일들이 익숙해져서 처음 뵙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제겐 금방 '삼촌'이 되어버립니다.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가까운 이웃 어른을 모두 삼촌이라 부릅니다.

 

제겐 아내와 두 아이가 있습니다. 딸 진주는 초등학교 1학년이고 아들 우진이는 우리 나이로 다섯 살입니다.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이면 시골 탐방 길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진주와 우진이는 아빠와 함께 시골로 나들이하는 것을 무척 즐겁게 생각합니다. 주말에 가끔 만나는 제주의 자연이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놀이터입니다.

 

 

 

 

요즘은 제주의 들판에 고사리가 많이 나오는 철입니다. 풀이 자라는 들판에 가면 어디에서든지 고사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나이가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우진이도 이젠 연한 고사리를 가려서 꺾을 수 있습니다. 자연은 체험을 통해 학습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란 사실을 우리 아이들을 통해 실감하고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우리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라는 마을을 탐방했습니다. 토산리는 설촌 역사가 1000년이 넘는 마을인데, 4·3사건 당시 마을의 남자들이 거의 모두 학살을 당해서 한 세대가 사라져 버린 마을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겪은 아픈 이야기들을 너무도 현실감 있게 전해 들었습니다.

 

그날 탐방에서 우리 아이들은 평소보다도 더 재미있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마을을 탐방하던 중 토산봉이라는 오름을 오르고 그 중턱에서 고사리를 캤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경쟁이나 하듯 땀을 흘리며 고사리를 캐고 있었는데, 풀 속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습니다. 자세히 보니 까투리 한 마리가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주위에서 꽤 오랫동안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을 텐데 까투리는 도망가지 않고 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까투리의 강한 모성애가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조용히 알을 품고 있던 까투리는 우리가 다가가자 두려움을 참을 수 없었는지,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디론가 급히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까투리가 떠난 자리에 꿩 알 열다섯 개와 까투리의 깃털이 남아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알을 품고 있던 까투리의 따뜻한 체온과 자신이 남기고 간 알들에 대한 걱정도 함께 남아있었겠지요.

 

 

"이 알들을 집에 가지고 갈 거예요?"

진주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이 알들을 남기고간 엄마 꿩이 알들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겠니? 아빠가 예전에 시청 앞에서 진주를 잃어버렸을 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좀 있으면 엄마 꿩이 돌아 올 테니 우리가 자리를 비켜주자."

 

이렇게 대답하고 고사리 꺾기를 마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온 알들이 다시 엄마를 만나서 행복하게 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물도 제 자식 아끼는 마음이 지극한데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어린이날이 되니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무엇을 선물할 것인지 고민하고 계실 것입니다. 다른 선물들도 좋지만 자녀에게 "앞으로 네가 자라갈 세상을 조금 더 잘 지켜주마"라는 약속을 선물하시면 어떨지 제안을 드려봅니다.

 

부모님들의 약속 가운데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직접 노력하는 일과 더불어, 돈이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는 사람들을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격리시키는 일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경제 성장률을 높이는 일이라면 대규모 환경 재앙이 예상되더라도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사람이 정권을 잡도록 만들고, 유권자들이 '뉴타운'에 눈이 멀어 선거 기간에 성추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드리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낳아 놓은 알이 부화될 수 있도록, 두려운 상황에서도 조용히 알을 품고 있던 꿩의 모성애보다 더 강하게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사람들이 아닙니까? 자녀들의 앞날이 정말로 걱정이 되신다면, 그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직접 나서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아이들이 자연과 반갑게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살고 싶습니다.


태그:#진주와 우진이, #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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