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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의 정원에서 나는 아이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감자, 콩, 브로콜리, 상추.
▲ 아름답지 아니한가 맥스의 정원에서 나는 아이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감자, 콩, 브로콜리, 상추.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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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콩·브로콜리·오이·감자·무·파·당근·시금치·바질·파슬리·청경채…. 그렇게 넓지는 않은 맥스의 정원에는 이런저런 채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걸 우리 다섯이 부지런히 먹고 맥스랑 트루디도 열심히 먹고 저번에는 마을 사람들 식사모임에 채소 제공까지 했는데도 늘 풍성해서 달팽이도 와서 몰래몰래 먹고 있다(물론 그러다 맥스한테 들키면 '짜부러'진다).

물론 채소를 잘 먹는 우리는 동시에 채소를 잘 먹이고도 있다. 그래야 잘 자라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채소의 먹이가 될까? 다른 곳에서도 그렇겠지만 이 곳 크리스탈워터스, 정확히 말하면 맥스네 채소의 먹이도 간단하다. '물과 비료'. 

물은 어디에서 오는가? 크리스탈워터스의 '물 삼국지'

우리가 쓰는 물은 어디에서 오는가? 서울 우리 집에서 이 질문을 받았더라면 나는, '춘천에서부터 긴 파이프랑 탱크들을 거쳐 오든, 어디 다른 곳에서 오든 알게 뭔가' 하고 기나긴 상념에 빠졌겠지만, 이 곳에서는 비교적 쉽게 대답할 수 있다. 크리스탈워터스 경계에 흐르는 두 줄기의 강에서도 오고, 하늘에서도 오고 저수지에서도 온다.

크리스탈워터스의 '물 삼국지'

 
▲ 크리스탈워터스의 물 삼국지 
ⓒ 정성천, Hugo Oliveira,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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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강물] 우리가 소풍을 가기도 했던 강

크리스탈워터스에는 고도가 높은 곳을 중심으로 물탱크가 6개 설치되어 있다. 강물은 펌프질되어 물탱크로 올라가 저장되었다가 파이프를 따라 각 가정으로 내려간다. 한 가구당 하루 제한 강물 용량은 1000ℓ다(참고로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변기 물 한 번 내리는 데 10~15ℓ 든단다. 절수형을 쓰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특별한 정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 강물은 주로 정원 일에나 설거지, 샤워나 변기 물로 쓰인다.

[둘, 빗물] 공주는 이슬을 먹고 나는 빗물을 먹는다

하늘에서도 온다. 비다. (이번에는 진짜 비다. #비가 아니라) 크리스탈워터스에는 각 가정에 빗물탱크 하나씩 설치하라는 것이 아예 마을 규칙에 박혀있다. 우기 때면 아주 그냥 하늘에서 쏟아 붓는다는 빗물은 집 지붕에 둘러 나있는 홈에 떨어져서 탱크로 흘러간다. 깨끗한 빗물은 주로 먹는 물로 쓰인다.

빗물탱크, 요거 아주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나는 평소에 물 아끼는 것을 즐겨 해서, 설거지도 쫄쫄 흐르는 물에 하고 목욕도 번개같이 하려 애쓴다. 공중 화장실에서 남들 세수하는데 비누칠하면서 물 틀어놓고 있는 거나, 이 닦으면서 물 틀어놓고 있는 것을 못 참는다. 친구라면 옆에 서서 재깍재깍 기계적으로 물을 잠가주겠지만 모르는 사람일 때는 당장 가서 잠가주고픈 욕망을 참느라 괴롭다. 그러고 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고뇌를 할라치면 그냥 하지 왜 꼭 화장실 가서 세면대에 물 틀어놓고 고뇌하는지 진심으로 모르겠다. 

그런 내게 빗물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흡사 다른 세계에 눈 뜬 듯한 환희와 감동으로 다가왔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호주에서는 빗물 탱크가 이미 보편화된 지역도 있고, 탱크 설치할 돈을 지원해주고 있는 주도 있다. 도시에서는 오염을 걱정해 빗물을 먹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변기물이나 씻고 닦는 데는 쓸 수 있겠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우리나라도 2001년부터 일정 크기 이상의 체육 시설에는 빗물 이용 시설 설치를 해야 하는 걸로 법이 만들어졌다고 하네.

[셋, 저수지물] 주로 경치와 쉼터 제공을 맡는 저수지

크리스탈워터스에 있는 17개의 인공저수지의 물은 큰 저수지들은 불이 났을 때 등 비상시에나 쓰인단다.



그런 고로 맥스네 집의 채소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은 바로 뭐? 강물. 강물은 마을 꼭대기 탱크를 거쳐 맥스네 집으로 온다. 그게 정원에 와서 스프링클러로 분수처럼 퍼져나가기도 하고 쪼그만 호스를 통해 '쫄쫄쫄' 흐르기도 하고…. 

영리한 시스템. 각 채소화단에는 얇은 호스가 4줄씩  있고, 호스에 30cm간격으로 난 쪼그만 구멍을 따라 채소를 심는다. 호스에 물을 연결하면 구멍을 통해 각각 채소로 물이 나온다.
▲ 쪼끄만 호스를 통해 쫄쫄쫄 흐르는 물 영리한 시스템. 각 채소화단에는 얇은 호스가 4줄씩 있고, 호스에 30cm간격으로 난 쪼그만 구멍을 따라 채소를 심는다. 호스에 물을 연결하면 구멍을 통해 각각 채소로 물이 나온다.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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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접 호스를 잡고 물을 줄 때도 있는데 이건 약간의 인내심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한 식물당 5초 정도 물을 주고 다음 식물로 넘어가고 하는데 숫자 세고 넘어가고 숫자 세고 넘어가고 하는 단조로운 작업을 이삼십 분간 한다.

물론 이걸 명상과 생각의 시간으로 삼는다면 평화롭겠지만, 나는 아직 물줄 애들이 많이 남았는데 딴 애들은 이미 자기 맡은 일들 끝내고 쉬는 분위기라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저번에 우구 물주는 거 보니까 우구는 경지에 이른 거 같다. '옴 마니 반메 훔' 염불 외면서 하더라.   

비료는 어디에서 오는가? 음식물 쓰레기를 사수하라!

비료는 사기도 하지만 만들기도 한다. 맥스의 윗정원에 있는 비료 함에서 비료는 숙성된다. 우리가 만드는 비료의 재료는 대충 이런 것이다. 닭똥, 음식물 쓰레기, 잡초 뽑아낸 것들. 영양분을 고려해 요리를 하듯 재료들을 잘 배합해 비료를 만들면 사실 사지 않아도 된단다.

음식물 쓰레기. '음식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지만 '쓰레기'랑 결합되면 순식간에 이미지가 달라진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항상 기분 나쁘게 축축한데다가 냄새가 나서, 쓰레기 중에서도 제일 다루기를 꺼렸었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은 쓰레기 모으는 날에 봉투 들고 짧은 거리 걸어 쓰레기통에 담는 것뿐이었지만, 그 후에 어떻게 될 건지는 내가 알 바 아니었지만 그랬다.

여기에선 다른 재료들과 배합되어 소중한 비료가 된다.
▲ 쓰레기 중 쓰레기인 줄 알았던 음식물 쓰레기 여기에선 다른 재료들과 배합되어 소중한 비료가 된다.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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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음식물 쓰레기는 그렇게, 냄새 풀풀 풍기다가 봉지에 넣어져서 트럭에 실려 먼 길 떠나 결국에는 쓰레기 산에 추가되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에서는 귀중한 비료 자원으로 쓰인다. 맥스는 가끔 도시로 나갔을 때 음식점에서 음식물 쓰레기 넘쳐나는 봉지 마구 버리는 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었단다. 얻어오고 싶어가지고(다행히 잘 참은 듯 싶다). 먼 여정을 떠날 필요 없이 바로 뒷마당에서, 음식물 쓰레기는 다시 음식이 된다.

음식물 쓰레기와 우리 귀여운 닭들이 눈 닭똥, 여기저기에서 뽑은 잡초 등이 차곡차곡 쌓이면 그 안에서 벌레와 미생물들이 열심히 분해를 한다. 3개월 쯤 기다려주면 폭신폭신한 비료가 된다. 그럼 그걸 우리가 열심히 삽질해서 채소한테 갖다 바친다.

우구와 알리샤 노동 중. 쉽게 보이지만 누적 시간이 길어지면 결코 쉽지 않다. 난 저번에 비료 옮기느라 한 시간 동안 저렇게 삽질했었는데 보람은 있었지만 외롭고 팔 아팠다.
▲ 열심히 삽질 우구와 알리샤 노동 중. 쉽게 보이지만 누적 시간이 길어지면 결코 쉽지 않다. 난 저번에 비료 옮기느라 한 시간 동안 저렇게 삽질했었는데 보람은 있었지만 외롭고 팔 아팠다.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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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풍을 가기도 했던 강에서 온 물과, 우리가 보살피는 닭이 눈 똥이랑 우리 음식물 쓰레기랑 우리가 뽑은 잡초 등이 이루어낸 비료로 채소는 열심히 쑥쑥 커서 우리를 먹여 살린다. 먹고 우리가 똥을 누면 그건 또 탱크에 차곡차곡 쌓여 '자알' 숙성되어 나무들의 비료가 되어줄 거다(똥의 여정에 대해서는 3편에 언급한 바 있다).

3월에 우리가 심었는데 이제 어엿하게 자랐다. 중간에 풍성한 애들이 브로콜리, 곧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꽃이 필거다.
▲ 물 먹고 비료 먹고 쑥쑥 큰 채소 3월에 우리가 심었는데 이제 어엿하게 자랐다. 중간에 풍성한 애들이 브로콜리, 곧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꽃이 필거다.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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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 있는 것들과 내가 고리고리 연결되어 서로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다 남 같지가 않다. 모든 것을 고리 짓는 순환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 살아있으면 살아 있는 대로, 죽으면 또 죽는 대로 땅으로 돌아가 분해되어 다른 애들 양식이 되어주겠지. 그때까지 양식을 많이 먹어두자. 결론이 이상하게 나서 다시 마무리한다. 진짜 최종 결론은, '다들 고마워.'

<특별판> 크리스탈워터스에서 만난 생물들


오늘은 크리스탈워터스에서 만난 사람들 대신으로 생물들이 나선다. 크리스탈워터스에서는 실로 많은 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캥거루는 첫 편에서 소개한 대로 말할 나위 없음이다. 처음에는 캥거루를 길에서 보면 탄성을 지르며 사진기를 꺼냈는데 이제는 그냥 동네 개를 보듯 무감각하다(사실 크리스탈워터스에서는 개와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것이 규칙이기 때문에 개를 보기가 더 힘들다). 나중에 캥거루는 따로 특별판을 마련하든지 하고, 다른 생물들을 소개한다.

 
▲ 도마뱀이 많다 
ⓒ Alicia Marvin,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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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마'뱀'인지 알 것 같은 생김새. 저번에 우리 소파 뒤에서 죽어있어 알리샤와 나를 경끼하게 만들었던 도마뱀은 오른쪽 도마뱀만하다.

 
▲ 거미들도 많다 
ⓒ BrendanFearn,AliciaMar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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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은 브렌단이 자기 방에서 찍은 사진인데 거미가 어쩐지 꼭 독을 품고 있을 것만 같이 생겼다. 하지만 브렌단은 아직도 멀쩡하니 별 일은 없었나보다. 오른쪽 사진은 내 손에 달라붙어있던 거미. 거미도 귀여울 수 있구나 깨닫게 해줬던 거미.

 
▲ 애벌레들도 많다 
ⓒ Alicia Mar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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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서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귀엽구만.

 
▲ 새도 많다 
ⓒ BrendanFearn,AliciaMar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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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알록달록한 새는 새장에 갇혀있는 것만 봤는데 여기에서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니 신기하다. 애들이 친근해서 먹이를 주면 저렇게 다가온다. 남자애들 집에서는 성천이가 오후마다 새 몇 마리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니 이제는 새들이 먼저 와서 밥 달라고 지저귄다. 휘파람을 불어 주의를 끌고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면 멋지게 날아와 받아먹는데 배를 다 채우면 우리가 휘파람을 숨차도록 불든 빵 부스러기를 애타게 던지든 말든 안중에도 없다.   

 
▲ 뱀도 많다 
ⓒ Alicia Marvin,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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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우리 옆집의 앤네 집 바닥 틈에서 휴식을 취하는 뱀. 앤네는 기니피그를 키웠을 때는 뱀이 나타나면 식겁해서 쫓아냈는데 기니피그 기르기를 청산하고 난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뱀을 마주할 수 있단다. 오른쪽은 심심찮게 발견되는 뱀허물, 배경은 알리샤.

 
▲ 얘는 포섬. 
ⓒ Alicia Mar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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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네 천장에서 살고 있다.

그밖에 지금껏 단 한 번도 못 봤지만 코알라도 있고, 역시 단 한 번도 못 봤지만 강에는 물너구리도 산댄다. 물너구리는, 소리를 죽이고 강에 접근해서 몇 시간이고 고요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잠수하는 머리와 등 부분을 볼 수도 있단다(그 말을 들으니 안 봐도 될 것 같았다). 사슴과 토끼도 두세 번 봤는데 안개 낀 아침이었는데다가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내 5년 지기 카메라로는 잡기가 힘들었다. 내 5년 지기 카메라는 피사체가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우면 정신을 잃는다. 부디 다음에는 적당한 거리에서 출몰해주길….


태그:#크리스탈워터스, #생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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