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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의 대한민국은 대통령 탄핵 서명으로 시작됐다. 대통령은 취임한 지 두 달을 겨우 넘겼다. 10대 고교생의 현실성 없는 제안에 무려 100만 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순식간에 불을 붙이고 나선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5월 3일 청계천에서는 또 한번의 경악할만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 자리였다. 여기에는 사복으로 갈아입지도 않은 중고생들이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교복 차림 그대로 촛불문화제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앞다투어 마이크를 잡으며 단상에 올라 자유발언을 하기까지 했다. 대놓고 대통령을 향해 욕설을 날리고, 일사분란하게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촛불문화제가 불법집회라는 선무방송이 나오자 마이크를 잡고 있던 한 남학생은 "정부의 잘못에 대해 학생들이 비판하는 것이 왜 불법이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중고생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정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6일 저녁 서울 여의도 공원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6일 저녁 서울 여의도 공원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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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들이 이처럼 능동적으로 촛불문화제에 대거 참석한 이유를 정부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의 "놀이문화가 부족해서" 라고 해석했다. 이를 거칠게 풀이해보면 '놀이문화가 부족한 청소년들이 한바탕 놀기 위해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놀이문화가 부족해서 (촛)불놀이를 해보자고 모인 것이 10대들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10대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지난 촛불문화제에서 보여준 10대들의 '미친소 너나 먹어' 정서와 반 이명박 구호는 단순한 광우병 쇠고기 파동에 원인이 있지 않다. 필자가 알기로는 이들의 반 이명박 정서는 좀 오래 되었다. 이들의 성향대로였다면 지난 대선에서 10대들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현재의 대통령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최소한 내가 지난해와 올해 만난(만나고 있는) 중고생들의 성향은 그렇다.

아이들은 어디서 듣고 왔는지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누가 대통령이 되면 초등학교부터 0교시 부활과 강제보충, 영어몰입교육을 하게 된다는 괴소문(?)이 대선 기간을 전후해 초등학생부터 고교생에 이르기까지 10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생산되고, 가공 확대,전파 되었다. 심지어는 그러한 소문들이 정말이냐고 물어오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를 고스란히 반영하듯 지금은 폐쇄된 이명박 대통령의 미니홈피에는 당시 이러한 규제를 하지 말아달라는 10대들의 항의성 글들이 하루에도 수백건씩 올라왔다. 바로 그들과 지난 3일 청계천에 모인 이들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초등 6학년이었던 이는 중학생이 됐고, 중학교 3학년이던 이는 고교생이 됐을 뿐이다. 이들에게 '이명박'은 대통령(후보)으로서 개인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사여탈을 좌우하는 기제로 작용했던 것 같다. 온갖 규제와 억압만이 자신들 주변에 함정처럼 깊게 파인 현실을 더욱 아프고 힘들게 하는! (그것이 4․15 학교자율화 조치로 정점을 이루게 된다).

그들을 움직이게 한 '두발 규제'와 '퓨전 급식'

그리고 정부와 기성세대들이 잘 모르는, 10대들을 억압하는 가장 큰 요소 가운데 두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두발 규제'와 '퓨전 급식'이다. 서울대는 못 가도 좋으니 당장의 두발 자유와 제대로 된 급식을 달라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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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에게 머리카락은 또다른 '자아'다. 정부나 기성세대들이 보기엔 코웃음조차 아까운 치기어린 일이겠지만 10대들에게 머리카락은 깎으면 또 자라나는 터럭이 아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10대를 거쳐갔거나 아직도 10대인 이들은 특히나 나이를 불문하고 눈물나도록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불어 닥친 억눌린 두발 자유를 향한 외침에서 10대들의 인권감수성은 놀라울 만큼 성장한다. 10대들이 온전하게 자신들만의 주제로 집회문화를 형성한 것도 두발자유화가 처음이었다. 두발에 대한 인권감수성의 성장을 통해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게 된 것 같다. 그들의 요구와 달리 현실에서 두발 자유는 도달할 수 없는 벽이었지만 그들은 지금도 각종 교육청 게시판과 인터넷을 이용해 두발 자유를 부르짖으며 싸우고 있다. 바로 이것이 10대들의 의식을 성장하게 한 동력이 되었다.

또 있다. 10대들이 왜 하필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이처럼 크게 반응하는(혹은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매일같이 쇠고기를 반찬 삼아 먹는 것도 아닐 테고, 끼니마다 쇠고기 반찬이 없으면 밥을 한 숟가락도 못 먹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10대들이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이처럼 크게 반응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그 광우병 쇠고기를 '강제로' 먹어야 하는 운명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퓨전급식'이라 부르는 불량한 학교 급식을 통해서 광우병 쇠고기를 먹고 얼마 못 살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현실적 불안감 때문이다.

10대들이 학교 급식에 대해 가지는 불만은 폭발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가 재충전되는 양상이다. 해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급식사고는 물론이고 정체 불명의 요리들이 먹을거리로 둔갑해 제공되는 퓨전급식 앞에 아이들은 충분히 분노하고 있다. 국이나 반찬에서 수세미 조각이 나오거나 벌레가 나오는 정도는 이제 상대할 것조차 안 된다.

바로 이런 먹을거리에 대한 위기의식, 자신들이 제대로 된 먹을거리조차 제공받지 못 한다는 의식의 공감,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 수입되면 자신들이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10대들에게 촛불을 밝혀 청계천으로 모여들게 했다. 밤 12시 강제야자까지 하려면 하루 두 끼나 먹어야 하는 퓨전급식에 광우병 걸린 미국산 쇠고기가 나온다면? 10대들이 광우병 쇠고기에 격렬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때문인지 10대들은 어른들보다 휠씬 자세하게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촛불 문화제를 체험한 10대들의 선택

공교롭게도 두발과 급식 문제는 10대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다. 어제까지 10대였다가 오늘부터 20대가 되면 '남의 일'이다. 20대가 되는 순간 머리카락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퓨전급식이야 안 먹으면 그만이니까. 두발과 급식은 10대들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절체절명의 무엇인 셈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기폭제가 되어 인터넷과 오프라인을 통해 핵폭발 한 것이 지난 촛불문화제였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소통 없는 일방적 교육정책들과, 광우병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이라는 손찌검이 울고 싶은 10대들의 뺨을 호되게 때려준 꼴이 된 것이다.

10대들은 촛불문화제에서 그들의 방식대로 울면서 자신을 드러내는데 성공했다. 기성세대가 보기엔 상스러운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무례함'으로 억압당해온 자신들을 표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나 10대들의 정치적 의식의 성장이라고 하는 판단까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어야 할 것 같다. 촛불문화제에서 보여준 그들의 모습이 10대들의 '모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이번 촛불문화제를 계기로 10대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무대를 마련하는 방법을 제대로 학습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이 4~5년 후 투표권을 가진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할 것인가에 관한 것도 이들이 지금, 오늘의 상황에서 배우고 체험한 내용과 앞으로 좀 더 겪게 될 것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측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


태그:#광우병, #촛불문화제, #이명박탄핵, #두발규제, #학교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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