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형수님, 오늘 저녁에 같이 밥 먹어요. 어머니 모시고 그쪽으로 갈게요."

 

막내 시동생 전화를 받았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형제들이 모이곤 한다. 여기저기 전화를 넣어 약속을 정하는 일은 언제나 막내 시동생이 도맡는다.  

 

"오늘은 집 사람이 쏜대요."

 

내심 머릿수대로 밥값을 계산해 보는 내 얼굴이 보이듯 시동생이 말했다. 식당은 우리 집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있는 곳이었다. 주변과 식당 안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마치 식물원에 온 것 같았고, 한적한 시골 풍경을 느끼게 했다.

 

어머니는 평소에 잘 드시지 않던 된장 삼겹살도 드시고 양배추 찜도 맛있다고 음식마다 칭찬하신다. 그리고 오늘은 무슨 일들로 이렇게들 모였는지도 물으셨다.

 

"어버이날 가까워서 얼굴 좀 보려고 모였지, 저녁도 같이 먹구. 그리구 이 사람 새 직장도 다니게 돼서 겸사겸사 이렇게 만나자고 했어요. 따로 시간 낼 수 있나 뭐. 참, 어무니 카네이션두 준비해야겠네."

"아, 꽃 같은 거 사오들 말어!"

 

막내 시동생 말끝에 카네이션 얘기가 나오자 어머니가 냉큼 말하셨다. 그동안 받은 카네이션 꽃값만 해도 엄청날 텐데 뭔 꽃을 또 사오느냐고 말이다. 딸이나 아들에게 받는 꽃 말고도 손자, 손녀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 받는 꽃을 얼추 생각하면, 꽃 대신 차라리 용돈으로 받고 싶으신 마음이 그대로 읽혔다.

 

쑥이 올라오는 초봄에 동네 산밭을 언제 갈까, 벼르고 있었던 건 내심 어머니께 쑥 개떡을 해드리고 싶어서였다. 날짜를 봐 가며 어느 하루 날을 잡고 산에 오르는 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이왕에 나선 걸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뒤에서 작은 애가 우산을 들고 내 뒤를 따라오는 거였다.

 

"엄마 혼자 어떻게 산엘 가려구 그래? 마음이 놓여야 말이지."

 

겁이 많은 애가 엄마 걱정은 더 한다. 부녀자 폭행 사건이 나오는 뉴스도 못 들었냐고 하면서 따라온 녀석은, 쑥을 뜯는 내내 띄엄띄엄 내리는 비에 우산을 폈다 접었다를 반복했다. 할머니 쑥 개떡을 해드릴 거라 하니 쑥이 많은 곳을 찾아 나를 부르기도 했다.

 

"지난번 시골 갈 때는 쑥을 못 캤어. 쑥 개떡을 한 번 해먹어야 하는데…."

 

구십 넘은 어머니는 어쩜 내 맘을 훤하게 알고 계신 것처럼 말씀하실까? 나는 쑥 개떡 해드리겠다고 당장에 나오려는 말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께 말했다.

 

"엄니, 집에 한번 들를게요."

 

이거면 될까?  캐온 쑥이 아무래도 적을 것 같다. 그래도 해보자.
이거면 될까? 캐온 쑥이 아무래도 적을 것 같다. 그래도 해보자. ⓒ 한미숙

 삶아서 얼린 쑥이 상온에서 풀어지고 있다.
삶아서 얼린 쑥이 상온에서 풀어지고 있다. ⓒ 한미숙
 불린쌀과 삶은 쑥을 방아간에 가서 찧어왔다. 반죽을 해놓으니 두 덩어리 나온다.
불린쌀과 삶은 쑥을 방아간에 가서 찧어왔다. 반죽을 해놓으니 두 덩어리 나온다. ⓒ 한미숙

 조금씩 떼어 동글동글 먹기 좋고 손에 집기도 좋게.
조금씩 떼어 동글동글 먹기 좋고 손에 집기도 좋게. ⓒ 한미숙

 연녹의 쑥반죽이 익으면 진한 쑥빛으로 물든다.
연녹의 쑥반죽이 익으면 진한 쑥빛으로 물든다. ⓒ 한미숙
 조심조심 떼어서 서로 붙지않게 참기름에 발라놓는다.
조심조심 떼어서 서로 붙지않게 참기름에 발라놓는다. ⓒ 한미숙
 시어머니 선물, 쑥개떡!
시어머니 선물, 쑥개떡! ⓒ 한미숙
 엄니, 며느리 정성만 크게 봐주세요! ^^*
엄니, 며느리 정성만 크게 봐주세요! ^^* ⓒ 한미숙

쑥을 캐온 날, 삶아서 냉동실에 얼려놓고 잠시 잊고 있었다. 동서가 한턱 낸 밥을 먹던 그날 밤에 쌀을 씻어 불렸다. 다음날, 불린 쌀과 해동시킨 쑥을 방앗간에 가서 2천원을 주고 빻았다. 익반죽도 필요 없이 찬물에 반죽하고 적당한 크기로 모양을 만들었다.

 

찜통도 없이 둥글넓적한 냄비에 삼발이를 올려 쪄낸 쑥 개떡. 참기름을 발라가며 켜켜이 그릇에 담아놓으니 꽤 그럴싸하다. 쑥 냄새가 진하고 향긋한 쑥 개떡은 소금으로만 간간하게 맛을 내어 먹을수록 변함없이 한결같은 우리네 모든 어버이 마음만 같다. 

 

쑥 개떡과 같이 드릴 흰 봉투엔 만원짜리 다섯 장을 넣었다. 드릴 때마다 다음엔 꼭 더 드려야지 하는 데도 그게 잘 안 된다. 그래도 나는 안다. 봉투 속에 있는 내용보다 엄니는 며느리 정성을 더 크게 보신다는 걸.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 송고합니다.


#쑥개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