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기초 질서만 잘 지켜도 GDP가 1%는 올라갈 것"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이 있고나서 지방자치단체·경찰서·교도소 할 것 없이 관공서에서 국민을 계도하겠다며 앞다퉈 '기초질서 확립 캠페인'이란 걸 벌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리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월드컵을 응원하던 시민들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집회장소를 깨끗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며 성숙한 시민의식에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이명박 정부 들어 '기초 질서'가 잡혀야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하니 당황스러울 뿐이다.
"민주화가 와전되어 수용자 기강이 나태해졌다"?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기초 질서' 더 나아가 '법질서 확립'이 교통질서 잘 지키고, 거리에 침 안 뱉고, 담배꽁초 안 버리고… 뭐, 이 정도로 가벼운 수준이 아닌 건 분명하다. "떼 법 청산"을 들먹이며 집회·시위의 자유를 짓밟고 있고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옭죄는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당장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 문화제 조차 "불법"이라고 꼬투리를 잡고 있다.
최근 감옥에서도 대대적인 '기초 질서 확립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10일 법무부 장관이 전국교정기관장회의에서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취지는 "과거 민주화가 와전되면서 수용자들의 기강이 나태해졌으니 기본질서를 바로잡아 여러 사람이 편안할 수 있는 수용환경을 만들라"는 것이다.
재소자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돼 거의 하루 종일 갇혀 지내야 하는데다 행동을 제약하는 수많은 법규들이 있어 이를 어기면 엄한 징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기초질서'라 해서 또 다른 규율을 강제하고 있다. 감옥 안의 '기초 질서'란 알고 보면 재소자들을 옴짝 달짝 못하게 옭아매 놓고 군대식의 위계질서를 강제하는 걸 의미한다.
최근 안동교도소에서 그 문제점들이 속속 도출되고 있다. 안동교도소는 4월 셋째 주부터 '기초질서 확립기간'으로 돌입했다. '기초 질서'가 잡힐 때까지 무기한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안동교도소에는 오산 수청동 철거민 투쟁으로 구속된 정창윤씨와 소위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된 이진강씨가 수감돼 있다. 그런데 최근 두 사람은 모두 '기초 질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벌방에 갇히거나 형사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두 사람이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에 보낸 편지와 면회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당시 상황은 이렇다.
[이진강씨의 사례] 점검시간에 책 읽어서 '기초 질서' 위반
이진강씨는 그동안 양심수로서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규율을 다잡으며 생활해왔고 동료 재소자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교도소 간부들도 그를 '모범수'라고 칭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기초질서 확립기간'이 시작되고 나서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씨에게 처음에는 하루에 두 번 있는 점검시간에 정면을 응시한 채 부동자세로 앉아있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점검을 하는 목적은 인원을 파악하고 재소자들의 사고발생유무를 확인하는 데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런 식으로 '군대식 점호'를 강제할 규정도, 이유도 없다.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는 이씨는 그동안 점검시간이 되면 책상 앞에 바르게 앉아 독서를 하곤 했다. 이렇게 해도 전에는 문제삼지 않았다.
지난 4월 21일 저녁 8시경, 교도소의 모든 일과가 끝나고 재소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여러 명의 교도관들이 한꺼번에 이씨가 혼자 생활하는 거실에 들이닥쳐 방문을 열어젖혔다. "기초질서를 해치기 때문에 계도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이동 감찰반'이라고 했다. 안동교도소는 교도관들을 퇴근도 못 하게 붙잡아놓고 재소자들이 취침에 들 때까지 사동을 돌면서 '기초 질서'를 잘 지키는지 감시하라고 조를 편성해서 운용했던 것.
그들은 방안을 둘러보더니 책상 위에 노트가 몇 권 놓여있는 걸 보고 "책상 정리가 안 되었다"며 트집을 잡았다. 티셔츠를 입던 이씨에게 관복을 입으라고 지시했다.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는 관복을 입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런 규정을 듣도 보도 못한 이진강씨는 규정을 가져와보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감찰반장이란 사람이 대뜸 반말로 "그런 게 다 있어!"라고 한 마디 하고는 지시명령을 위반했다고 기록했다. 그들은 마치 동네 불량배처럼 이씨를 위협했다. 다음 날에도 또 그런 일이 또 반복되었다.
이씨는 교도소장 면담을 신청했다. "감찰반장이 규정에도 없는 명령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건 직권 남용이고, 반말과 폭언으로 인격을 침해했으니 징계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장 면담은 신청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이씨는 기초 질서를 세 번 위반했다 해서 징벌조치 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징벌 조사를 받으면서 이씨는 교도소 측이 터무니없이 사실을 조작해서 검찰에 고소까지 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교도관에게 욕설을 하고 베개를 집어 던지며 감찰반원들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한 건 자신이라고 했다. 교도소 측의 이런 조치는 이진강씨의 정당한 항의와 징계요구에 대한 보복이며 양심수들에 대한 '군기 잡기'라고 생각된다. 이진강씨는 4월 29일부터 5월8일까지 단식투쟁을 벌였다.
[정창윤씨 사례] 본드와 비닐 가지고 있다가 '징벌방'으로
정창윤씨는 지난 4월 22일 또 다시 징벌방에 갇혔다. 한 달 전 교도관의 소내 재소자 구타사건을 알려내기 위해 '부정 서신'을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10일간의 금치(징벌방 수용) 처분을 받은 지 한 달여 만에 또 다시 징벌을 받게 된 것이다.
정창윤씨가 징벌에서 풀려난 후 교도소 측은 정창윤씨가 '문제수'라도 되는 양 '개별처우'를 한다며 직원 2명과 경교대원 1명을 붙여 철저하게 감시했다. 그들은 운동이나 목욕, 세탁물 건조할 때라든지 심지어 종교집회를 갈 때조차 따라다니며 캠코더로 채증을 했다.
'기초 질서 확립'을 핑계로 하루에 한 번씩 검방(교도관들이 불시에 재소자들의 방을 검사하는 것)도 실시했다. 검방 도중 정씨의 방에서 목공용 작업 본드(환각성이 없는 흰색 접착제)와 작업용 비닐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동료 재소자가 출소하면서 본드는 벽지 바를 때, 작업용 비닐은 세탁물 담을 때 쓰라며 건네주고 간 것이었다. 그러나 교도소 측은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었다며 또 다시 20일간의 금치 명령(징벌방 수용)을 내렸다.
보안상 큰 문제가 없는 이런 물품들까지 광범위하게 금지시키고 있는 규정 자체가 문제다. 교도관들도 이전까지는 이런 물품들이 재소자들의 수형생활에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적발되어도 문제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정씨가 수감된 사동에서 검방을 통해 많은 부정물품(?)들이 회수되었는데 유독 그에게만 징벌이 떨어진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비단 안동교도소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기초질서 캠페인'은 교도소 당국이 재소자들의 인권을 더 한층 옥죄고 군사적인 위계질서를 강제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규정에는 없는 자의적인 명령과 징벌권을 남발하면서 소내 분위기를 공포분위기로 몰아가려 한다.
이진강·정창윤씨에 대한 고소와 징벌은 부당한 인권침해에 저항해온 양심수들의 기를 꺾어놓기 위한 보복조치라 할 수 있다. 재소자들의 인권을 말살하는 '기초 질서 캠페인'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안동교도소측에 위 내용에 대해 확인을 요청 했지만 "정식취재 요청서를 공문으로 보내주면 취재에 응할지 여부를 판단해 알려주겠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광열씨는 현재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기사가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