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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예술가 이제하의 제3회 개인전이 전남 고흥 남만에서 열린다
▲ 말과 함께 있는 여인들 전방위 예술가 이제하의 제3회 개인전이 전남 고흥 남만에서 열린다
ⓒ 이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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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은 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림에서의 구도, 색채 및 주제 형상화 과정이 그 형식만 다르게 나타날 뿐이지 글쓰기와 아주 닮아 있다고 본다. 나는 외형적 사회의식보다는 개인의 무의식 세계, 그들의 꿈과 악몽에 관심이 많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그에게 닿으면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된다. 연금술사가 따로 없다. 그는 소설을 쓰듯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듯 소설을 쓴다. 시를 쓰듯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르듯 시를 쓴다. 세상에. 천민자본주의 시대에 이런 순수한 전방위적 예술가가 있다니. 

그는 시와 소설, 그림과 음악은 쌍둥이라 여기고 있다. 이는 곧 시와 소설, 그림과 음악이 따로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예술의 집에서 저마다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즉, 시, 소설, 그림, 음악이 하나가 되어야 진정한 예술의 찬란한 빛이 난다는 것이다. 

전방위 예술가 이제하가 바로 그다. 그렇다고 이제하에게 단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물질이 정신세계보다 앞서는 것만 같은 이 세상살이에서 그의 이러한 예술세계는 그에게 가난을 멍에처럼 짊어지게 만들었다. 이는 사회의식보다는 그의 예술세계가 개인의 무의식 세계에 포옥 빠진 탓이기도 하다.

시인 황학주의 집 남만
▲ '남만' 시인 황학주의 집 남만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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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황학주의 집 '남만'은 고흥바닷가가 코앞에 펼쳐져 있다
▲ 고흥 바닷가에 있는 시인의 집 시인 황학주의 집 '남만'은 고흥바닷가가 코앞에 펼쳐져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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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한 번 아홉 평짜리 아파트 / 둥지로 돌아가면, 여섯 살 잽이 / 눈이 보얀 딸년이/ 작가와 화가가 되겠다고 그런다 // 애비 하는 짓을 제깐엔 요량으로 때려잡아 / 담배값 몇 푼 때문에 좌충우돌 / 날품 노릇인 줄도 모르고 // 조각과에서 4년 양화과에서 1년 / 5년을 다녔으나 졸업장도 없고 / 만든 것도 없고 쥐뿔도 없고 / 수화(樹話)선생(화가 김환기의 호) 얼굴이나 한 번 보고 나오려고 / 대학에 간 것도 모르고//

만화를 좋아하는 딸년이 / 속편만화를 그려놓고 / 작가와 화가와 만화가가 되겠다고 그런다 // 좋은 스승 하나만 보이면 / 지금이라도 다 때려치우고 / 보따리 싸려는 줄도 모르고 / 제깐엔 애비 짓을 요량으로 때려잡아 // 임금다운 임금 / 한 놈만 나타나면 / 기꺼이 꿇어 엎뎌 / 노예가 되려는 줄도 모르고 // 눈이 보오얀 딸년이” -이제하, ‘회화에 대하여’모두

‘전방위 예술가’로 불리는 작가 이제하(70)의 제3회 개인전이 10일(토)부터 18일(일)까지 전남 고흥 바닷가 황학주 시인의 집 ‘남만’에서 열린다. ‘남만’(南蠻)은 소설가 김훈이 와서 보고 붙인 옥호로, 남쪽의 야만스럽고 원시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피스프렌드가 주최하는 이번 개인전에는 작가 이제하가 15년 만에 발표하는 20점의 그림들이 전시된다. 다도해 풍경, 말과 함께 있는 여인들, 말이 있는 실내풍경, 물가에 앉은 두 여인, 바닷가의 집 등이 그것. 특히 이번 전시작품은 단 한 편도 이 세상에 발표를 하지 않은 유화라는 점이 눈에 띈다. 

고흥 바닷가에 의자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 남만 고흥 바닷가에 의자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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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황색 톤의 그림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 다도해 풍경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황색 톤의 그림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 이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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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작품에서는 제2회 개인전 때 선보였던 청색 톤의 그림들이 사라지고, 황색 톤의 따뜻하고 포근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작가 이제하가 예전의 차겁고 무거웠던 세계를 훌훌 벗어던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의 내면세계를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그림에 담고, 인간과 자연의 만남을 실내라는 사적 공간에 담아내는 작가 이제하의 독특한 그림 세계. 그래서일까. 그는 한국화단과도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이는 시류나 유행에 결코 어울리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적인 그림세계를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작가의 깊은 뜻에서 비롯된 듯하다.  

이번 전시작품의 독특함은‘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거부와 일상적 생활을 깨뜨리는 단독자의 야성과 관능이 한데 어우러진 그림들이라는 데 있다. 말과 여인들, 다도해가 배경을 이루고 있는 작가의 황토빛 작품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세상을 만나게 된다.  

이번 전시회는 작가 이제하가 칠순을 맞아 다도해가 눈앞에 펼쳐지는 고흥 바닷가 황학주 시인의 집 ‘남만’에서  지인들을 초대해 여는 하우스 전시회 형식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게다가 전시회 첫날에는 바닷가로 울려퍼지는 판소리와 키타소리는 물론 작가의 자작곡 ‘모란동백’도 들을 수 있다. 

이제하의 독특한 그림들
▲ 말이 있는 실내 풍경 이제하의 독특한 그림들
ⓒ 이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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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하는 한국화단과도 담을 쌓고 지낸다
▲ 물가에 앉은 두 여인 이제하는 한국화단과도 담을 쌓고 지낸다
ⓒ 이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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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하의 독특한 그림들
▲ 바닷가의 집 이제하의 독특한 그림들
ⓒ 이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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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예술가 이제하는 “개인의 무의식 세계, 그들의 꿈과 악몽, 이들은 합리적 사고로 해명이 안 되는 세계인만큼 자연히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라며 “내 그림과 소설이 스토리가 아닌 이미지 위주인 것은 이 때문이며 나는 독자와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상상력에 더 많은 여지를 남기고 싶은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번 전시회의 장소를 제공한 시인 황학주는 “이제하 선생은 시, 소설, 음악, 그림 등 장르를 무차별적으로 넘나드는 뛰어난 우리 시대 예술가의 표상”이라며 “선생의 전방위적 예술세계는 자연, 그것도 새나 나무나 수풀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울창한 숲 같은 것이 아니라 벌겋게 묻어나는 황토와 시든 잡초가 반점처럼 얼룩진 황폐한 들판이 전부인 그 자연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황 시인은  “선생의 예술세계는 시나 소설, 음악, 그림 모두 가난의 의지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일견 깨끗하고 겸허해 보이기는 하지만 속은 텅 빈 채 아무 것도 없는 것을 가난이라고 한다면 일제 말기부터 시작된 선생의 가난은 한마디로 벌거벗은 자연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혔다.

이제하는 가난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있다
▲ 작가 이제하 이제하는 가난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있다
ⓒ 이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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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예술가’로 불리는 작가 이제하는 1937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58년 <현대문학>에 시가, <신태양>에 소설이, 196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입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초식(草食)> <기차, 기선, 바다, 하늘> <용(龍)> 등이, 소설선집으로 <유자약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등이, 장편소설 <열망>(원제 광화사) <소녀 유자> <진눈깨비 결혼> 등이 있다. 시집으로는  <저 어둠 속 등빛들을 느끼듯이> <빈 들판> 등이 있으며, 여러 권의 산문집과 콩트집, 화집, 영화칼럼집이 있다.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받음.

이번 전시회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10일(토) 서울 강남터미널 고흥행 아침 9시30분 차를 타면 차표가 준비되어 있다. 승용차로는 호남고속도로 광주까지 가서 화순-벌교-고흥(도화면 구암리)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태그:#이제하, #황학주, #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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