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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품었던 당신들을 향한 '냉소', 미안합니다

 

'나비효과'라고 해야 할까?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지난 6일에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던 나, 9일에 있었던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을 잊지 못해 다시 청계광장을 찾았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나는 마음 속 한구석에 '냉소'를 담아두면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은, '밥'만 먹여준다면 '더불어'라는 단어도, 법이나 상식도 필요없다는 의미로 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명박'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대통령이었을까?

 

누군가의 변명대로 "이명박 외엔 대안이 없었을"까? 물론, 대선후보를 바라보는 관점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이명박'이 유일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느냐는 의문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마음 한구석에 '냉소'를 담아둔 이유가 됐다.

 

하지만, 6일에 처음 가본 그 촛불문화제 앞에서 '충격'을 느꼈다. 거기에는 '갈등'이 없었다. 지나친 친부유층 정책과 우리의 정서를 끊임없이 어치구니없게 건드리는 일로 일관했던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사람들은 그야말로 성숙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거기에는 갈등도 없었고, 폭력도 없었다. 연단에 오른 우리 이웃의 진심어린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했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써 집회를 말 그대로 '문화'로 승화하고 있었다.

 

 

 

10일 저녁 7시에 다시 열린 문화제에 참여한 나는 다시 한 번 '감동'을 느끼게 됐다. 변함없었다. 굳이 변화를 찾자면, 6일 당시보다 나이드신 분들의 참여가 더욱 늘었다는 것. 나이를 뛰어넘어 참가한 사람들은 '친구'가 되고 있었다.

 

나는, 그렇듯 '친구'가 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 속 한구석에 담아두었던 '냉소'에 대해 마음 속 깊이 용서를 빌었다. 이 글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들을 함부로 '냉소'의 눈으로 바라봤던 나를 용서해줬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촛불문화제'는 멈추지 않는다

 

'촛불문화제'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최 측이 강조했듯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15일에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따른 '새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정부 고시'가 있다. 이것이 통과되면 '재협상'이고 뭐고 모든 것이 물 건너간다. 그래서, 강조된 것이 바로 14일로 예정된 촛불문화제다.

 

17일에는 청소년을 주축으로 한 촛불문화제가 예정돼 있다. '5월 17일'은, 학생들 사이에서 '등교거부시위'라는 문자메시지가 나돈다는 이야기가 있어, 경찰이 수사에 나서고 교육당국에서 학생들의 집회 참여를 막기 위해 문자메시지 검열을 지시한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17일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14일 시위는 출퇴근의 문제로 참여를 장담할 수 없지만, 17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참여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가급적, 참가 청소년들의 부모님도 함께 참여해 아이들을 보호하며 뜻을 같이 모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에 대한 교육당국과 경찰의 대처는, 한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것 같다. '문자메시지 검열'이라는 수단을 교육감 명의로 지시함으로써 안그래도 희박한 학생 인권에 대한 그네들의 존중은 완전히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청소년 집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부모님'의 존재다. 그들은 '미성년자'다. 그들이 주도하는 집회라지만, 그들에게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다. 미성년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성인의 보호다. 부모님도 좋고, 20대 형과 누나, 오빠와 언니도 좋다.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해 보인다.

 

 

 

이 사진들에는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이들은 다름 아닌 우리의 미래이며, 성숙한 집회 문화 실천으로써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어른보다 나은 청소년'이다. 자유발언대에 오른 어느 남학생은 "학생들을 막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교사들이 있다면 막지 말라. 그것이 훌륭한 교사로 남는 길"이라는 준엄한 경고까지 남겨 어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어른들의 경솔한 정치적 선택에 의해 이들은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그 책임은 어른에게 있다. 그렇다면, 어른은 이들을 보호하고 함께 함으로써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20대 형'으로써, 17일 집회에 참여해 나도 그 생각을 실천할 생각이다. 교육당국의 어처구니 없는 대처에 대한 '보호벽'을, 단 한 사람의 성인이라도 더 참여함으로써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함없는 '자유발언자'들의 절절한 호소

 

10일 집회에서는, 신월동에 거주한다는 23세 여성 직장인의 '자유발언'이 가장 인상깊었다. 그에게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동생이 있어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이 더더욱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을 지지'했으며 여전히 완고한 아버지에 의해 가슴 속에 상처를 담아둔 것 같았다.

 

그 상처는,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많은 시민들로부터 비롯된 감동과 맞물려 그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여러 생각이 그의 가슴 속에 자리잡았을 것이다. 그 눈물을 지켜본 사람들의 "괜찮아. 울지마"라는 반응, 그러면서 이어진 박수. 이것이 바로 '각본 없는 드라마'는 아닐까. 이 눈물은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의 생존에 위협을 느낀 시민으로서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항거'다.

 

이렇듯 진심어린 눈물로 공감을 얻는 이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재치만점의 '자유발언'으로써 참여 시민들을 웃게 만들며 공감을 얻어간다. 열심히 준비한 노래와 율동으로써 흥을 돋구기도 한다. 분노를, 그리고 울분을, 이렇게 멋지게 승화할 수 있는 국민이 세계 어디에 또 있을까?

 

이렇듯 멋진 촛불문화제를 인상깊게 본 것인지, 취재진들이 주로 몰렸던 무대 근처에는 어느 외국인이 카메라를 들고 시민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필름에 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급적 세계 곳곳, 널리 알려줬으면 좋겠다.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집회 문화이며, 분노의 아름다운 승화다.

 

그래도 '정부 고시'를 통과시키겠다면?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15일로 예정된 '정부 고시'를 포기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부터 우리는 '이명박'이라는 정치인, 그리고 그 주변 인물을 주의깊게 살펴왔다. 포기할 사람들로 보이는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을 방송에 보도했다는 이유로 시사프로그램을 형사고발까지 하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다. '색깔론'으로써,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언론까지 동원해 문화제를 '빨갱이 시위'로 묘사하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부 고시'를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정말로 그런 선택을 한다면 이렇듯 아름답게 분노를 승화시키고 있는 우리 시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정부고시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방영을 기다리고 있는 <PD수첩>의 후속보도도 시민들의 선택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고시'를 강행하면서 끊임없이 '색깔론'으로 이 촛불문화제를 깎아내리려 한다면?

 

확실한 것 하나는, '분노'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누누히 강조하는 것이다. <PD수첩> 후속 보도와 '정부 고시' 강행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촛불문화제의 분수령으로 추측되는 지점은, 17일 학생 집회다.

 

시점 상으로도 청소년들에게만 모든 것을 맡기기엔 민감한 시점이다. 교육당국의 인권탄압도 절정에 이른 현실이다. 17일 학생 집회는, '보호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집회다. 부모님과 형·누나, 오빠와 언니가 함께 참여해 촛불을 들어야 한다.

 

나는 선언한다, 끝까지 함께 할 것을

 

불행히도, 그리고 죄스럽게도 출퇴근 문제로 모든 집회에 참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집회에 참여할 것을 선언한다. '출퇴근 문제'라는 죄스러운 마음은, 더 치열한 고민과 집념을 담은 글로써 대신하고자 한다. 모처럼 피어난 시민들의 연대의식에 깊은 감동과 동의를 표하면서, 한 사람의 미약한 힘이지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아니, 그래야만 하며 그러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내 가방 속에는 양초가 늘 들어있다. 집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날이라 하더라도, 그 양초를 볼 때마다 많은 것을 느낀다. 이 양초 하나하나에 켜져 모였을 촛불 하나하나의 의미를 떠올리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잊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느꼈고, 또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배움의 의미를 잊지 않는다면, 내 개인도 더 많은 성숙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촛불 하나하나에 담긴 그 분노와 울분, 그리고 아름답게 승화하려던 그 성숙한 매너, 앞으로도 절대로 국민을 무시하지 않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1.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 해당 기사의 이미지들은 디카로 촬영한 이미지입니다. 막상 화질이 좋지 않아 개인적으로도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광우병 쇠고기#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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