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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읍내 다리 위에서 촛불이 타올랐다. 충북 음성군 금왕읍의 장날인 10일 저녁 8시경 지역주민 130명이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을 들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금왕성공회 나눔의 집 소진원 신부는 "내가 소 씨인데 종친회라도 해야 할 판"이라며 "우리 소 씨는 미국이나 호주 등 외국에서 수입되지 않은 토종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해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무슨 행사입니까?" 이곳을 지나던 40대 중후반의 남자가 묻는다.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젠데요."

"그래요. 그럼 당연히 함께해야지요." 

그는 촛불을 들고 맨앞에 섰다.

 

촛불문화제가 시작하자 이곳을 지나던 읍민들이 관심을 나타내며 함께 촛불을 들었다. 봄 농활을 나온 고려대학교 학생들도 속속 도착해 홍보물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첫 연사로 나선 정용기 음성농민회장은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제일중요한 것은 먹을거리고 국민들이 더 잘 안다"며 "새 정부 들어 국민여론 무시하고 쇠고기 협상을  타결시켜 뼈조차 수입하도록 밀어붙였다"고 비난했다. "반드시 재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문화 카톨릭농민회장은 이어 "쇠고기 협상 타결 이후에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다"며 "대부분의 국민들은 협상이 잘못됐고 미국산 쇠고기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잘못된 협상을 하는 고위직들은 어느 나라 각료냐?"고 따져 물었다.

 

 

정 회장은 "정운천 장관이 정부중앙청사 식당에 미국산 쇠고기 꼬리곰탕과 내장탕을 올리겠다고 한 것에 대해 공무원노조에서 공무원이 실험용 마루타냐고 반발했다"며 "대통령이 머슴이라고 했는데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머슴은 패서라도 말을 듣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발언도중 갑자기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자 참석자들이 '마이크 USA'라고 외쳐 웃음바다가 됐다.

 

자신을 학부모라고 밝힌 여성 참가자는 "아이들이 '2mb너나 쳐드세요'라고 하는데 혼내키자니 그렇고"라며 "학교에서 급식메뉴를 보내오는데 쇠고기 국이나 쇠고기 장조림 같은 메뉴 있으면 마음이 안 놓여 급식에서 아예 뺐으면 좋겠다"고 걱정했다.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지나는 차량에서 '투쟁'이라거나 '미국 쇠고기 반대' 등의 응원의 소리도 들려왔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신과 걱정은 촛불을 들지 않은 사람들도 같은 듯했다.

 

 

고려대학교에서 봄 농활을 나왔다는 한 남학생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부모님들의 등골을 빼는 등록금은 해결하지 않으면서 광우병 소를 먹이려 한다"며 "국민의 생명 위협하는 광우병 소 수입 중단하고 등록금 문제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을 평범한 노동자라고 밝힌 40대 중후반의 남자는 "서민을 섬기는 정부라고 말만했지 강부자 내각이 배고픈 사람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며 "난 전기쟁이인데 원자재 값이 올라 일이 없어 어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소를 키우는 친구가 있는데 소 값이 떨어져서 한숨만 내쉬고 있다"며 "서민의 목을 조이는 정부가 서민을 섬기겠다니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 정부는 미친 정부"라고 말했다.

 

자신을 주부라고 밝힌 40대 여성은 "우리는 제일 불쌍한 국민"이라고 전제하고 "아이들을 생각해 주부들이 제일먼저 위험성을 인식하고 미국 쇠고기 반대 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주부는 "인간광우병이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나서서 먹으라고 하나 것이 배운 사람들이 할 짓이냐"며 "촛불문화제가 있다는 소식에 세 아이와 함께 급하게 피켓을 만들어 왔다"며 홍보물을 들어 보였다.

 

행사 관계자들은 문화제가 끝날 무렵 "뒷정리 깨끗하게 하고 가자, 촛농 떨어진 거 없나 잘 살피자"고 말하며 서로를 보고 웃었다. 얼마 전 <조선일보>가 촛불문화제 현장에 떨어진 촛농 사진을 찍어 무질서한 집회인 것처럼 왜곡 보도한 것을 비웃는 듯했다.

 

한편 이날 행사를 준비한 음성학교급식연대 측은 주1회씩 정기적으로 촛불문화제를 열기로 했다.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우리는 미친 소를 먹을 수 없다'를 외치며 밤 9시경 평화롭게 행사를 마무리 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미국 소,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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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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