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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크리스탈워터스 마을 입구 즈음에 가게가 하나 있다. 외관이 삐까번쩍한 동네 구멍가게라고 생각했는데 들어가 보니 보통 구멍가게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물건들을 팔더라. 

 

이 동네 박력있는 아줌마 카이가 빚은 도자 잔, 12살 소년 터미가 만든 멕시코 전통문양 액세서리, 크리스탈워터스가 생긴 1987년에서부터 쭉 여기 살았다는 로빈이 쓴 책, 로렐이 마을 곳곳 사진 찍어 만든 크리스탈워터스 카드랑 책갈피, 스텔라가 만든 귀걸이랑 목걸이….

 

주로 이 동네, 혹은 동네 부근 사람들이 만든 물건들이 작은 가게를 탄탄하게 채우고 있다. 이거 신기하네 싶어 은근히 정을 두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그 가게 이제 5월 8일이면 영영 문 닫을 거라네. 이게 뭔 일이여.

 

구멍가게를 사수하라!

 

가게의 이름은 터커림바, 일주일에 4일, 목금토일마다 문을 열었었다.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이 자원 봉사를 나서 가게를 지켜왔었는데 이제 자원봉사자가 너무 부족하단다. 아니 그런다고 영영 문을 닫나. 이 형태로 운영된 지 5~6년이 된, 나름 전통 있는 공간인데다가 동네 사람들 자기가 만든 물건 팔 수 있는 장터이며 사람들 모여 서로 얘기도 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한 공간인데.

 

그래서 5월 8일 아침 10시, 뜻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터커림바를 사수하기 위해. 맥스와 우리 코스 참여자 5명도 이날만은 오전 수업을 빼먹더라도 이 모임에 참석해 구경하기로 결의했다. 그렇게 해서 둘러앉은 사람들이 모두 13명. 구경하러 온 우리 6명에 3명은 모임 참가하는 엄마 따라온 아이들.

 

논의는 한 시간 정도 지속됐고, 나는 또 50%는 못 알아들었다. 말을 왜들 그렇게 빨리 하고 그래. 어쨌든, 모인 사람들 누구 하나 터커림바가 영영 문을 닫길 원하지는 않는다. 논의는 그다지 길게 늘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목요일과 일요일에는 문을 닫고,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문을 열기로.

 

한 달에 한 번 일요일에 터커림바 주위에 이벤트를 열어 사람들을 끌어 모아 터커림바를 여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제안이 나오자 브렌단이 나섰다. 축구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브렌단은 이제 혼자 공 드리블하다 숲 속으로다가 골 넣지 않아도 된다. 브렌단 좋겠다?

 

이제 몇몇 자원봉사자들을 잘 배치만 하면 된다. 브렌단과 성천이, 알리샤와 나도 즉석에서 나섰다. 앞으로 남은 두 달 여 동안 금요일이나 토요일, 자원봉사 할 용의가 있다고. 그래서 엄청 환영받았다. 물론 나는 순수한 봉사에서 비껴나 약간의 흑심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나는 들떠있었다. 이거 좋은 기삿거리 되겠구만!

 

우리 구멍가게로 오세요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나는 바로 다음날인 5월 9일 금요일 터커림바에 배치되었다. 자원봉사를 할 사람이 없어서 그냥 이날은 문을 닫을까 하던 중에 브렌단과 내가 나선 것. 터커림바가 죽을 뻔했다가 다시 살아난 첫 날인 나름 유의미한 날이다.

 

자원봉사자는 자기가 원하면 약간의 돈을 벌 수도 있다. 자원봉사자가 음식을 자기 집에서 만들어 와서 적당한 가격에 팔면 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브렌단도 나도 신나서 어젯밤에 음식을 준비해왔다. 브렌단은 호박스프와 샐러드, 나는 사과 스콘. 나는 사실 빵을 내 손으로 구워본 건 처음인지라 이거 손님이 드시고 즉석에서 뱉으시는 거 아닌가 한 걱정했다.

 

우리는 오전10시에 터커림바 문을 열어 오후 3시에 닫으면 된다(맥스는 관대하게 우리를 오늘 하루 일정에서 빼주기로 했다). 우리가 팔 품목은 여기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 우리가 가져온 음식, 커피와 차 종류, 음료. 몇 가지 커피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어제 사람들에게 스피드 강의를 들었는데 그게 진정 스피드 강의였던지라 커피는 레스토랑에서 일해 본 경력이 있는 브렌단에게 위임하기로 했다.  

 

활기차게 오전 10시에 터커림바 문을 연 브렌단과 나.  오후 3시까지 꼬박 5시간 동안 한 일을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차 마시기, 스트레칭, 서로 사진 찍어주기, 농담 따먹기, 돌아가며 점심 먹기. 가끔 손님 오면 팔기.

 

평일인 금요일인데다가, 터커림바가 계속 열리기로 다시 결정되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손님은 10명 안짝, 음식과 마실 것을 찾는 사람들. 터커림바에 대한 결정건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메일로 전송되었는데 이메일을 잘 확인 안 하는 사람도 있으니, 마을 곳곳에 공고를 붙이든지 사람들 우편함에 쪽지를 넣어놓든지 해야 될 것 같다.

 

어쨌든 몇 명뿐이지만 사람들 만나는 것도 즐겁고 물건 파는 것도 재밌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내 사과 스콘이 8개나 팔렸다는 사실. 그리고 한 명도 뱉지 않았다는 사실!

 

농기구도 사수하자

 

우리가 이번 주에 살린 것은 터커림바 뿐이 아니다. 몇몇 낡은 맥스의 농기구들도 살렸다. 월요일에 우리는 일단 맥스의 낡은 잔디깎기 기계를 손봤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맥스가 손보는 걸 구경했다. 맥스 말로는 20년 됐다는데 외양은 50년 정도는 들어 보이는 중후한 기계를 꼼꼼히 어디 풀 낀 거 돌 낀 거 없나 체크하고(물론 많이 껴있었다), 기름칠해주고 무뎌진 날은 기계 가져다가 날카롭게 다듬어주고.

 

날 세우는 기계 쓰는 김에 다른 기구들도 다 꺼내서 다듬어줬는데, 개중에는 손잡이가 없는 쇠스랑이나 삽들도 있다. 맥스가 나무 뽑아다가 얘들 손잡이 만들어 줄 거라고 해서 내가 잘못 들은 거겠거니 했는데 진짜 만들었다. 우리가.

 

목요일에 우구와 브렌단과 나는 맥스네 사무실에서 가까운 캐줄리나 숲으로 갔다. 캐줄리나는 어쩐지 소나무를 좀 닮은 호주 나무. 얄따랗지만 꼿꼿하게 자라는 캐줄리나를 어렵지 않게 톱으로 잘라 데려와서, 맥스의 키에 맞게 손잡이 길이를 조절해 자르고, 구멍 틈에 딱 맞게 끼워지도록 나무를 다듬어 끼우면 완성.

 

물론 그런 거 새로 사도 되겠지만 아직 쓸만한 애들 죽이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내 힘으로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과 보람을 돈 내가면서 뺏기기는 싫구만. 캐줄리나 고마워. 잔디긁개는 진짜 잘 쓸게. 맥스한테 잘 쓰라고 할게.

 

<크리스탈워터스에서 만난 꽃들>

 

저번 시리즈 생물들에 이어 이번에는 꽃들. 사람들 시리즈로는 다음 주에 돌아갈 예정이다. 크리스탈워터스에는 실로 많은 인간 외 동식물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꽃도. 종류도 다양하고 개중에는 지금껏 못 보던 희한한 것도 많아서 꽃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던 내 시선을 잡아끌 정도.

 

어떻게 대체 이렇게 생겼을까 생명의 신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것도 있다. 오늘은 약 두 달 동안 모이고 모인 꽃 사진 중 고르고 고른 다섯 점을 소개한다. 전편에도 말했지만 5년 지기 내 카메라는 접사를 시도할라치면 정신을 놓는다. 그러나 꽃은 나뿐만 아니라 딴 애들도 잡아끄는 매력적인 관심사, 알리샤와 성천이, 브렌단이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놓은 고로 든든하다. 그럼 사진 퍼레이드 나갑니다.

 

 


#크리스탈워터스#생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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